서울시, 시설 늘려 인권증진?… 장애계 “탈시설 역행하는 기만정책”
중증 뇌병변·중복 장애인 돌봄 위해 시설 더 설치한다?
장애계 “탈시설 지원 빼놓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실효성 없어”
CCTV, 인권담당자 등 시설 구조 외면한 조치 내놓은 서울시
전장연 “장애인 기만 정책… 시설수용의 고급화·견고화일 뿐”

서울시가 지난 23일 배포한 보도자료 일부. “서울시, 장애인 삶의 질 향상 위해 돌봄시설 확충하고 인권증진 도모한다”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서울시가 지난 23일 ‘서울시, 장애인 삶의 질 향상 위해 돌봄시설 확충하고 인권증진 도모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주요 내용은 장애인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시설 확충과 제도개선을 통해 보다 나은 거주시설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계는 이를 두고 ‘탈시설권리를 거스르는 기만적 정책’이라며 강하게 규탄했다.
중증 뇌병변·중복 장애인 돌봄 위해 시설 더 설치한다?
서울시는 보도자료에서 은평구 은평의마을 부지 내에 중증 뇌병변·중복 장애인 거주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은평의마을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되는 대규모 성인 남성 노숙인시설이다. 은평의마을 안에는 장애인거주시설인 평화로운집이 있고, 그 안에만 110명의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결국 대형 시설 안에 또 다른 시설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보도자료에는 거주시설 종사자의 발언도 인용됐다. 해당 종사자는 “현재 의료체계에서는 뇌병변장애인을 돌볼 수 있는 의료·돌봄시설 및 간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부·지자체의 인프라 확충 및 돌봄인력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보도자료 어디에서도 뇌병변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영철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은 “서울시는 뇌병변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는 들은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오 회장은 “서울시의 지침은 뇌병변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서울특별시 뇌병변장애인 지원 조례」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며 “장애인의 자립생활이란 지역사회에 살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보장받으며 존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뇌병변장애인 지원 정책에 시설이 포함될 여지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서울시가 말하는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와 전문적 케어는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16일 진행된 기자설명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일부 장애인단체에서 탈시설이 마치 굉장한 해법인 것처럼 과도하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서울시’ 캡처
“탈시설 지원 빼놓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실효성 없어”
서울시는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은 즉시 폐쇄하고 동시에 운영법인을 집중 지도·점검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어 경미한 인권침해 발생시에는 시설장 인건비 삭감 및 추가 보조금 지원 제한 등을 적용한다고 했다.
서울시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시행 방침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2530 장애인 일상활력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기자설명회에서 해당 제도를 직접 언급한 바 있다(관련 기사: 장애인들 “오세훈표 ‘아주 보통의 하루’? ‘아주 차별적 하루’에 불과”)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시행만 할 것이 아니라 시설 즉시 폐쇄 후 즉각적인 탈시설 지원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탈시설 지원 없이 거주인들이 계속 시설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예산 투입은 불가피하다”며 “탈시설 지원이 병행되지 않는 한 시설 폐쇄 조치는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에 추가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더라도 거주인들이 다른 시설로 전원되면 그 시설에 다시 예산이 투입될 뿐”이라며 “결국 시설 중심의 예산 구조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CCTV, 인권담당자 등 시설 구조 외면한 조치 또다시 내놓은 서울시
또한 인권침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거실·복도·식당·치료실 등 공용공간에 CCTV(폐쇄회로텔레비전) 설치·운영을 확대하며, 거주시설별로 인권예방활동 및 학대신고를 전담하는 인권담당자도 지정·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담당자란 명칭만 없을 뿐, 이미 실질적인 인권 담당 체계는 존재한다. 2017년부터 장애인복지법 제60조의4 제4항에 따라 시설 운영자는 ‘인권지킴이단’을 두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시설 내 인권침해 사건이 잇따르면서, 인권지킴이단 제도는 설치 이후에도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장애인거주시설이 준수해야 하는 지침인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에 따르면 변호사·인권전문가·지역주민 등으로 외부 단원을 50% 이상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외부 단원마저도 시설 관계자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최근 성폭력·폭행 등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한 인천 강화군 색동원도 인권지킴이단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강화군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색동원 인권지킴이단의 구성원은 ‘외부 단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권전문가 자격으로 외부 단원에 참여해 단장까지 맡은 인물은 과거 색동원에서 사회재활교사로 근무했으며, 다수의 시설 종사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 다른 외부 단원으로 간사를 맡은 인물 역시 이전에 다른 시설에서 실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정하 활동가는 “인권지킴이단은 내부 직원이 단원의 절반을 차지하고, 관련 서류 역시 담당 직원이 보관하도록 되어 있어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구조”라며 “실질적으로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인권담당자라면 시설과 이해관계가 없는 인권단체 인사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장연 “장애인 기만 정책… 시설수용의 고급화·견고화일 뿐”
서울시는 2024년 시작한 장애인 거주시설 환경개선 사업을 언급하며 중증 뇌병변·지적 장애인 거주시설 4개소를 가정형으로 리모델링했으며, 시설 방문 가족들이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3곳에 조성했다고 했다.
이어 장애인의 고령화 추세에 맞춰 시설 2개소에 대해 고령 장애인을 대상으로 간호·조리 등 인력 채용, 격리보호실·의료용 전동침대 구비 등 고령화 맞춤 환경개선 등을 지원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4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장애인을 기만하는 정책”이라고 성토했다.
전장연은 “1~2인실이 되면 수용이 수용이 아닌 게 되나. 게스트하우스를 만들면 시설의 폐쇄성이 사라지나. 시설의 본질은 건물의 인테리어가 아니라, 삶의 결정권을 박탈하는 구조”라며 “이것이 어떻게 ‘인권증진’인가. 이는 시설수용의 고급화이자 견고화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CCTV 확대, 인권담당자 제도까지 꺼내 들었다. 이 조합은 익숙하다”며 “참사가 터지면 강력 대책을 말하지만, 그 대책의 핵심은 늘 시설을 유지한 채 관리·감시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설은 계속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꼬집었다.
전장연은 “지금 필요한 것은 ‘시설을 더 안전하게 운영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피해생존자가 시설로 등 떠밀리지 않도록 하는 자립지원, 그리고 시설 체제 자체를 끝내는 탈시설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9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