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5일 사회보장위원에 장애인복지 희생자 합동 분향소가 차려졌다. 우비를 입은 한 활동가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인다. 사진 박승원
2019.7.31. 관악구 한부모 가정 탈북민 어머니와 장애인 아들 아사(餓死)
2019.8.20. 관악구 50대 장애여성 고독사(孤獨死)
2019.9.1. 강서구 80대 노모와 50대 중증장애인 아들 피살
폭우가 쏟아지던 5일 오후 4시, 서울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 앞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얼굴 없는 영정 사진 앞에는 하얀 국화가 놓였다.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죽음을 애도했다.
최근 가난과 장애로 인한 ‘사회적 죽음’에 관한 보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5일,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 농성장이 있는 사회보장위원회(국민연금공단 충정로사옥) 앞에 합동분향소를 차리고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를 가졌다.
두 영정 사진 가운데 ‘빈곤 정책의 실패로 가난을 피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사진 박승원
지난 8월 중순, 언론을 통해 관악구 탈북 모자 사망 사건이 전해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아무개 씨는 10년 전인 2009년 홀로 북한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생활했지만, 아르바이트로 인한 소득 발생으로 8개월 후 수급이 끊겼다. 그는 올해 1월경 남편과 이혼하고서는 홀로 아이를 키워왔다. 여섯 살 난 아이에게는 뇌전증장애(간질)가 있었다. 장애를 이유로 유치원 입학을 거절당하면서 아이를 집에서 양육해야 했던 한 씨는 취직도 할 수 없었다.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한 씨는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러 주민센터에 갔지만, 이혼서류 외에 ‘이혼확인서’를 받아오라는 답을 받고 수급 신청을 포기했다.
며칠 후, 관악구에서 또다시 한 장애여성이 고독사한 사건이 보도됐다. 정아무개 씨는 15년 전쯤 가정폭력으로 남편과 이혼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 살아왔다. 당뇨합병증으로 2016년에는 다리 한쪽을 절단했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월 60시간 이용하던 정 씨는 1년 전 중개기관을 변경한다며 이용기관에 서비스 중단을 통보했다. 그러나 이후 서비스를 이용한 흔적이 없었음에도 주민센터 등 어떠한 기관도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정 씨의 죽음은 ‘악취가 난다’는 주민 신고로 2주가량이 지나서야 겨우 발견됐다. 무연고자로 장례도 못 치를 뻔했던 정 씨는 다행히도 십여 년간 연락이 끊겼던 먼 친척과 연락이 닿아 화장 당일(31일) 간단한 장례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비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인 9월 1일 새벽 4시, 강서구 임대아파트에서 올봄부터 치매증세를 보인 노모 구 아무개(88세) 씨와 중증지체장애인 큰아들 심 아무개(53세) 씨가 집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작은아들은 3일 한강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작은아들은 오랜 시간 노모와 형을 돌보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모는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받고 있었으나 서비스 시간이 하루 두세 시간밖에 되지 않았고, 큰아들도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하루에 고작 5시간밖에 이용할 수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둘은 기초생활수급자이기도 했다. 따라서 나머지 시간의 돌봄은 작은아들의 몫이었다. 그는 올해 이 때문에 일도 그만둔 상태였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사회보장위원회 1층 로비에 들어가 분향소를 차리려고 했으나 관리인과 경찰에게 저지당해 바깥에서 추모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박승원
- “알맹이 없는 장애복지가 이들을 죽였다” 장애계 분노
장애계는 이들 죽음이 ‘허울뿐인 장애인 복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2012년 광화문역에서 농성할 때가 생각난다. 부양의무제 폐지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늘어가는 영정 사진을 광화문 지하역사에 모셨다”라면서 “2017년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농성장을 찾아와 ‘더는 이런 허황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면서 장애계와 정부가 함께 논의하는 민관협의체를 꾸렸지만 지금까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회장은 “그 때문에 2019년에도 우리는 그때와 다름없이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에서 농성하며 또다시 분향소를 차렸다”면서 “언제까지 장애와 가난이 있다는 이유로 죽을 수밖에 없어야 하나. 박능후 장관은 이 자리에 나와서 지키지 못한 약속에 관해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라고 외쳤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이들 죽음이 왜 제도적 죽음인지 조목조목 따졌다. 김 사무국장은 아사로 추정되는 탈북민 모자 죽음이 올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년이 되었음에도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수준 등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김 사무국장은 “500여 쪽에 이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지침에도 ‘이혼 확인서’라는 서류는 없다. 이는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아니라 임의서류다. 그럼에도 주민센터에서 이혼확인서를 요구한 이유는 이혼한 전 배우자가 자녀의 부양의무자(1촌 혈족)가 되는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과 수급 신청 시 의무서류 외에도 임의서류를 요구하는 주민센터의 관행 때문”이라고 꼬집으며 “수급 신청 제도를 훨씬 단순화해서 복지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강서구 모자 피살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보도된 내용 중 하나는 이들이 기초생활수급, 노인장기요양서비스, 활동지원서비스 등 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서비스는 다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최대한의 국가 복지지원’에도 여전히 가족 부담을 덜기에는 역부족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다.
이에 대해 김 사무국장은 “정부는 큰형에게는 24시간 활동지원을 보장하지 않고, 노모에게는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할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마음이 답답하고 슬프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은아들이 사망 전, 가족(노모와 큰아들)과 함께 살았던 사실을 복지부와 강서구청이 알았다면 이들 가족은 부정수급자가 되었을 것”이라면서 “부정수급자로 명명하고 기본적인 권리를 거둬가려는 정부 눈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제대로 보였을까 싶다”라고 꼬집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노모와 큰아들은 기초생활수급자였으나 작은아들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 사무국장은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나라 만들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벌어진 이 죽음에 대해 응당 책임지고 답해야 한다. 오늘 이 자리는 슬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할 수 있는 분노의 마음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라고 투쟁 의지를 다졌다.
한편, 이들은 사회보장위원회 1층 로비에 들어가 분향소를 차리려고 했으나 경찰에게 저지당해 바깥에서 추모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사회보장위원회 1층 로비에 들어가 분향소를 차리려고 했으나 관리인과 경찰에게 저지당해 바깥에서 추모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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