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원 밖, 다섯 번의 하루
‘자립욕구’ 조사해 자립지원 대상 선별하는 인천시·강화군
색동원 거주인들 직접 만나보니…
자립욕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24일 오전 11시, 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색동원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색동원 문 앞에서 색동원 거주인인 현준 씨와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김소영
‘색동원’이라고 적힌 유리문이 열렸다. 거주인들을 만나기 위해 시설 안으로 들어가는 활동가들과 잠시 시설 밖으로 나서는 거주인들이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고 인사를 건넨다. 안으로 향하는 발걸음과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 웃음소리와 목소리가 출입문 앞에서 교차한다.
색동원 밖, 다섯 번의 하루
지난 24일 오전, 색동원 거주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인천센터)의 낮활동 프로그램에 동행했다.
오전 11시쯤 색동원에 도착한 활동가들은 인천센터가 지원하고 있는 남성 거주인 4명을 만났다. 활동가들과 자신을 태우러 온 봉고차를 보고 두 엄지를 치켜세우는 현준 씨(가명), 무표정한 얼굴로 차에 오르는 수환 씨(가명)와 종우 씨(가명), 활동가의 손을 잡으며 반가움을 표하는 용현 씨(가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색동원은 거주인들을 대상으로 시설장에 의한 성폭력과 시설 종사자들의 폭행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인천 강화군의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이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장애인 17명은 현재 전국의 쉼터와 장애인거주시설, 병원 등에 흩어져 생활하고 있다.
남성 장애인 10명은 폭행이 일어났던 색동원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 색동원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는 시설에 남아 있는 10명의 남성 장애인들이 시설 밖의 일상과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낮활동 프로그램을 인천시에 제안했고, 이에 따라 지난 7월 초부터 총 5회에 걸친 낮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은 네 번째 낮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지난 6월 15일 색동원에서 탈시설한 진만 씨(가명)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일행은 근처 식당에서 돈가스와 피자로 점심을 먹은 뒤 진만 씨의 집으로 향했다. 진만 씨는 침실과 거실, 부엌, 베란다가 있는 집 안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침실 탁자 위에는 지난 5월 서울 노들장애인야학을 견학했을 때 공대위 활동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진만 씨의 침실 탁자 위 모습. 십자가와 공대위 활동가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야구 응원봉 등이 놓여 있다. 사진 김소영
지하철 개찰구에서 활동가의 지원을 받으며 교통카드를 찍고 있는 용현 씨. 사진 김소영
진만 씨의 집을 나온 일행은 인천의 쇼핑몰 스퀘어원으로 향하기 위해 인근 지하철역을 찾았다. 교통카드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일부 거주인은 카드를 단말기에 대는 대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처럼 세워 찍으려 했다. 활동가의 지원을 받아 모든 거주인들은 직접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지나 열차에 올랐다.
역을 나설 때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기도 했다. 거주인들은 활동가의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계단 위에 올랐다. 반면 에스컬레이터가 낯선 수환 씨는 발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쇼핑몰을 둘러본 뒤에는 카페에 들러 음료를 마셨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종우 씨는 카페에 진열된 떡과 빙수 모형을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활동가들은 카페에 동료들을 남겨둔 채 종우 씨를 데리고 그가 좋아하는 먹거리가 가득한 편의점을 찾았다. 종우 씨는 과자와 초콜릿 등을 한가득 골라 계산한 뒤, 다시 카페로 돌아가 동료 거주인들과 활동가들에게 직접 나눠주기도 했다.
음료를 다 마신 뒤에는 다른 거주인들도 함께 편의점을 찾았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직접 골랐다. 이미 마음에 드는 간식을 충분히 산 종우 씨는 더 이상 물건을 담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과자를 고르고 있는 거주인들. 사진 김소영
시설 밖에서의 하루를 보낸 뒤, 색동원으로 돌아가는 길. 용현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 “용현 님, 아까 인천센터 활동가들 만나는 금요일이 기다려졌다고 했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드셨어요? 뭐가 좋으세요?”
용현 “바람 쐬고 햇볕 받는 거. 그런 게 좋아요. 바깥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거가 제일 재밌어요.”
활동가 “우리 보고 싶어서 기다려진 건 아니에요?”
용현 “좀 그런 것도 있고. (웃음)”
용현 씨는 “시설에 나와 혼자 살고 싶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가, 같은 질문을 다시 받자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어느새 다시 색동원에 다다랐다. 오후 5시 20분, 차에서 내린 4명의 거주인들은 다시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진만 씨의 집에 가는 길, 거리에 핀 능소화를 바라보고 있는 용현 씨. 사진 김소영
‘자립욕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1회차부터 4회차까지 한 달간 진행된 모든 낮활동 프로그램에 함께하며 거주인들을 조력한 신현정 인천센터 활동가는 5회차 낮활동 프로그램만으로 거주인들에게 큰 변화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신 활동가는 “식사량이 늘어나는 등 달라진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낮활동 프로그램의 영향 때문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며 “자립과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더 충분한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색동원 사건의 가해 혐의를 받은 시설장이 구속된 이후, 인천시와 강화군은 색동원에 대한 시설폐쇄 절차에 착수하고 거주인들의 자립을 추진했다. 그리고 3월, 자립에 앞서 자립욕구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남성 거주인 5명과 여성 거주인 8명이 자립대상자로 분류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지역사회에 자립한 사람은 전체 거주인 33명 가운데 자립대상자로 분류된 남성 장애인 5명뿐이다.
현재 자립욕구조사는 ‘자립의사’와 ‘자립능력’을 확인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자립의사나 자립서비스에 대한 관심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자립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설계돼 있다. 평균 13.6년 동안 시설에서 생활한 색동원 거주인들에게 시설 밖의 삶을 경험할 기회도 충분히 주지 않은 채 자립의사와 능력부터 평가하는 셈이다.
2016년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침해 사건 당시 거주인들의 탈시설을 요구하며 지역사회 자립을 이끌었던 전근배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외래교수는 “시설에서 살고 싶은지,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거나 확인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시설에 계속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먼저 살아볼 기회를 제공하도록 인천시가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며 “자립의사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행정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설에 계속 남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에게도 6개월이든 1년이든 지역사회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며 시설 생활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활동지원서비스 등 실제 생활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가 자립의사를 확인하기보다 먼저 지역사회에서 살아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면, 현장에서 거주인들을 지원한 활동가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충분한 지원체계라고 강조했다.
낮활동 프로그램을 지원한 또 다른 조력인인 전종순 인천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활동가는 “색동원 거주인들의 자립을 위해서는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도 “다만 자립을 활동지원사의 역량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정부와 지자체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평생교육센터 등을 확충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 예산 확대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혼자 살고 싶다”고 말했다가, 다시 “모르겠다”고 답했던 용현 씨는 인권침해가 발생했던 인천 장애인거주시설 해바라기에서 색동원으로 전원된 뒤 지금까지 시설에서 살아왔다. 오랜 시간 시설에서 생활해 온 이에게 “시설을 나와 혼자 살고 싶으냐”는 질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자립욕구’와 ‘자립능력’을 판단하는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볼 시간과 기회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