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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희생자’ 송국현 사망 6주기에 폭로된 종합조사표의 기만성
장애등급제에서 종합조사표로 껍데기만 바뀌어
최대시간 받는 사람, 전국에 한 명도 없어… 다섯의 한 명은 ‘시간 삭감’
 
등록일 [ 2020년04월18일 12시17분 ]
 
 

‘장애등급제 희생자’ 고 송국현 씨의 6주기를 맞아, 장애계가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도입된 종합조사표의 기만성을 폭로했다.

 

17일 오전 11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진행된 ‘종합조사 고시개정전문위원회(아래 고시개정위원회)’에서 정부가 내놓은 자료를 공개하며 문제점을 낱낱이 알렸다. 이들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해 장애인의 욕구를 반영한 종합조사표 개정을 강력히 촉구했다.

 

1587180127_89551.jpg‘장애등급제 희생자’ 고 송국현 씨의 6주기인 17일 오전 11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도입된 종합조사표의 기만성을 폭로했다. 사진 강혜민
 

- ‘장애 3급’ 이유로 활동지원 이용 못 한 중증장애인의 죽음

 

고 송국현 씨는 2013년 10월, 24년 만에 장애인거주시설 꽃동네를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52세였다. 그는 오른쪽 팔과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었으나, 중복장애 3급(뇌병변장애 5급, 언어장애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지원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신청은 1, 2급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등급재심사도 받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2014년 4월 10일, 활동지원사 없는 일상을 더는 지속하기 어려웠던 고인은 장애계와 함께 긴급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에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사흘 뒤인 13일, 집에 홀로 있던 사이 화재가 발생했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 걸을 수 없던 그는 누워있던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전신 3도의 화상을 입고, 17일 새벽에 사망했다. 세월호 참사 다음 날이었다.

 

이후 장애계의 투쟁으로 활동지원 신청 자격은 3급으로 확대되었고, 2019년 7월에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었다. 장애계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한 이유는 고인처럼 장애등급에 막혀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현재, 장애인은 필요한 만큼 필요한 서비스를 받고 있을까? 

 

등급제 폐지 후, 활동지원 조사표는 기존의 인정조사표에서 ‘장애인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아래 종합조사표)’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장애계는 종합조사표를 ‘조작표’라고 부른다.

 

- 하루 16.16시간 받는 사람, 전국에 한 명도 없어… 다섯의 한 명은 ‘시간 삭감’

 

종합조사표는 총 15구간으로 이뤄져 있으며, 가장 높은 점수에 해당하는 1구간을 받으면 하루 16시간가량을 받을 수 있다. 가장 낮은 15구간은 하루 2시간꼴이다.

 

당시 종합조사표가 공개되었을 때, 보건복지부는 “1일 최대 급여량을 14.7시간에서 16.16시간으로 늘렸다”며 이를 자랑스럽게 홍보했다. 그러나 당시 장애계는 “종합조사표 구조상 1구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최대 시간을 받으려면 사지마비최중증장애인이 발달·정신장애와 시각장애까지 있어야 하고 사회생활도 하는 등 종합조사표의 모든 문항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계의 문제제기는 최근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2월 25일에 열린 고시개정위원회 3차 회의에서 복지부가 ‘1구간 해당자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고시개정위원회는 지난해 9월, 종합조사표에 대한 장애계의 강력한 문제제기로 꾸려진 민관기구이다.

 

1587180323_88298.jpg종합조사에 의한 활동지원 구간 분포. 1구간 해당자는 없다(빨간색). 전체 인원 중 종합조사 1~10구간에 속하는 이들은 10%도 채 되지 않으며, 상당수가 11~13구간에 밀집해있다(노란색). 경증장애인 1275명 중 89%가량은 14~15구간과 구간 외에 집중되어 있다(파란색). 표 종합조사 고시개정전문위원회 3차 회의 자료.
 

당시 3차 회의 자료에서 복지부는 2019년 7월~11월에 종합조사표를 통해 활동지원을 받은 2만 4,918명(성인 1만 9,284명, 아동 5,634명)에 대한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의 활동지원 급여량을 살펴보면, 1~10구간을 다 합쳤을 때 총비율은 9.65%로 10%로도 채 되지 않는다. 2구간에는 고작 18명(0.07%) 밖에 없었는데 이들 모두 지체·뇌병변장애인이었다. 3구간도 132명(0.53%)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 구간은 13구간으로 6912명(27.74%)이었으며 그다음이 14구간 6316명(25.35%), 12구간 3262명(13.09%)이었다.  

 

조사 대상자 중 경증장애인은 1,275명(5.12%)에 불과했으며, 이중 절반 가까운 553명(43.47%)이 ‘구간 외’ 판정을 받았다. 기존 인정조사표에서는 활동지원 이용자였으나 종합조사표로 넘어오면서 활동지원에서 탈락한 것이다. 이러한 ‘구간 외’는 월 45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보전받을 수 있다. 그다음으로 경증장애인이 가장 많이 있는 구간은 월 90시간을 받을 수 있는 14구간으로 379명(29.73%)이었다. 즉, 경증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 수급자’로 통계에는 잡히지만, 상당수 이용 시간이 하루 1.5~3시간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활동지원 이용자는 3년마다 수급 자격을 재심사받아야 한다. 이번 조사자 중 절반(50.87%)이 이러한 갱신조사를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갱신조사를 받은 중증장애인 중 다섯에 한 명꼴로 기존보다 활동지원 시간이 삭감됐다. 이들(2473명)은 산정특례로 다음 갱신 기간(3년)까지는 삭감된 시간을 보전받지만 이후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 “현재 종합조사표, 송국현 살아있어도 필요한 만큼 받을 수 없어”

 

고시개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부 자료는 ‘종합조사표는 조작표에 불과하다’는 장애계의 목소리를 증명한 자료”라면서 “필요한 만큼 활동지원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분노했다.

 

1587180153_28397.jpg고시개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종합조사표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 대표는 “만약 송국현이 살아있다면 ‘경증장애인 1275명’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받을 수 있었을까”라면서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아니라 하루에 한두 시간 주고도 ‘활동지원 줬다’고 생색내는 게 이 종합조사표다”라고 규탄했다.

 

이어 더 큰 문제는 기존 활동지원 이용자 중 시간이 삭감당한 ‘19.52%’라고 지적했다. 기존 이용자의 경우, 3년간은 삭감된 시간을 보전받을 수 있지만 3년 이후에는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규 이용자의 경우엔 ‘애초에 시간이 삭감당한 채’ 활동지원 시간을 받는 것이지만 보전은 받을 수 없는, 불공정함을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기존 이용자는 왜 보전해주느냐, 이거 털고 가야 한다’고 정부가 공공연하게 이야기할까 봐 두렵다”면서 “‘두렵다’고 하는 건 아직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논의 과정에서 복지부가 전문가의 입을 빌려 이런 말을 떠들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폭로했다.

 

그는 “7월 1일까지 고시개정위원회는 종합조사표를 어떻게 변경할지 입장을 내놔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서 “장애등급제 폐지가 우리의 목숨줄을 겨누는 칼날이 될지, 아니면 경증장애인 천여 명 더 포함시켰다고 자랑하는 정부의 정치적 선전물로 전락할지는 우리의 투쟁에 달렸다”면서 오는 20일에 진행되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장애계가 힘을 모아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4차 고시개정위원회 회의는 오는 29일이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기사원문 : https://beminor.com/detail.php?number=14579&thread=04r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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