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장애인을 옥죄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기준, 거주시설을 설명하며, 밧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강혜민
31년 만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지 1년째 되는 날인 7월 1일, 전국 장애인활동가 1,000여 명이 모여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촉구했다. 1일 오후 3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서울지방조달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가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규탄하고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을 예고하며 잠수교로 행진했다.
- 예산 중심 ‘가짜’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의 삶 못 바꿔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에 새롭게 도입된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이하 종합조사)’로 활동지원서비스 급여량을 판정한 결과, 갱신대상자 19.52%가 시간이 하락했다. 활동지원 갱신자 5명 중 1명이 활동지원시간이 삭감된 것이다. 이 중 월 30~150시간이 삭감된 사람은 6.6%에 이른다. 이에 대한 대책은 현재 산정특례제도밖에 없다. 이는 3년간 기존 시간을 보존해주는 제도로 1번밖에 쓸 수 없다. 복지부는 3년 이후의 대책은 없으며 현재의 ‘이의신청 제도를 활용하라’고 제시했다.
종합조사표에 대한 장애계의 문제제기로 이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해 10월에 구성된 ‘고시개정전문위원회(아래 고시위원회)’에서 활동한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9개월 동안 고시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장애인 중심으로 맞춰진 욕구, 필요한 서비스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들어주지 않았다. 정보 하나 제대로 주지 않고 예산에 맞춰 짜놓은 대안만을 강요했다”며 “고시위원 임기가 끝났지만 종합조사에 대한 내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전국에서 1000여 명의 장애인활동가들이 서울지방조달청 앞으로 집결했다. 사진 강혜민
이동지원 대책도 마찬가지다. 올해 10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에 따라 특별교통수단, 주차표시 등 새로운 장애인이동지원서비스 기준이 도입된다. 그러나 현행 보행상 장애인 수의 5% 내외 추가 확대만을 고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장연은 “특별교통수단과 장애인주차표지 이용 시 휠체어이용자와 비휠체어이용자에 대한 욕구 반영 대책이 없고,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통한 서비스를 명시하지도 않으며, 예산 반영이 보장되지 않았다”며 “이러한 준비 없는 시행은 예산을 낭비하고, 장애유형별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 복지공약 1호,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약속도 지켜지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부 계획에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계획은 없다. 현재 주거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이뤄졌으며,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는 단계적 완화만 이뤄졌다.
지난해 9월 복지부는 ‘제2차 기초생활 종합계획’에 생계급여에 대해서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하겠다고 했다. 의료급여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단계적 완화를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은 오는 3일 열리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 회의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중생보위는 매년 정하는 기본중위소득뿐 아니라 부양의부자기준 폐지가 제2차 종합계획에 담길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자리다”라며 “이번에 제2차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로드맵이 담기느냐에 따라 문재인정부의 공약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자신이 뱉었던 복지공약 1호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준중위소득과 제2차 종합계획이 결정된다는 소식에 여러 언론은 예산 구멍을 걱정했다. 그러나 얼마 전 정부는 재정기획회의에서 기업을 살리기 위한 재정 300조 원을 쏟겠다고 결정했다”며 “그런데 가난한 이들을 위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5조 원 정도도 만들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그리 어려운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장애인 존엄과 권리 해치는 장애인거주시설, 하루 빨리 사라져야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를 계기로 집단수용의 위험성이 드러났다. 코로나19에서 가장 처음으로 희생된 사람은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에 장기간 수용돼 있던 정신장애인이었으며, 그곳에서는 감염률 98%라는 무서운 수치를 보였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정부는 청도대남병원의 감염자의 원인이 ‘장애’라고 보았다. 얼마 전 처음으로 ‘장애인 감염병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여기에서도 장애인은 ‘장애’ 때문에 감염병에 취약하다고 하고 있다”며 “장애인을 취약하게 만드는 환경적 요인이 있고, 우리는 그 원인을 잘 알고 있는데, 정부는 장애 때문이라고 한다. 청도대남병원 희생자들은 진작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었으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며 감염병에 걸리지 않거나 돌아가시지 않아도 됐을 분들이다. 여전히 3만여 명의 장애인들이 의지와 상관없이 시설에 방치돼 존엄한 인간이 아니라 손상된 몸으로써만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시설은 감염병의 위험만 있지 않다. 지난 4월에는 합천 정신병원에서 장애인이 폭행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장애인들이 거주시설에서 폭행과 학대를 당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국가차원의 장애인탈시설로드맵 제시와 집단수용의 패러다임을 바꿀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 등 법제 마련과 예산 반영을 요구했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재난, 장애인 권리 주체로 바라보라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을 권리주체로 보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통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5일 페이스북에 “일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라는 제목의 달아 장애등급제 폐지의 의미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장애인들은 정부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미화 전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한국사회에서는 가장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장애인’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인식하지 못 하고 있다”며 “여전히 정부는 최중증장애인마저 24시간 활동지원을 보장하지 않고, 종합조사표에서 하루 최대 활동지원 16시간에 해당하는 1구간은 아무도 받지 못했다. 장애인을 여전히 시혜적이고 동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부가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미화 전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앞으로 장애인을 권리 주체로 바라보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장애인거주시설 폐쇄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장애인에게 이 사회는 재난이었습니다. 한 명씩 불타 죽고, 자살해서 죽고, 또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감옥 같은 수용시설에서 평생을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우리는 장애인을 ‘권리 주체’로 봐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산 중심으로 장애인의 삶을 재단하지 말고, 집구석과 시설에서 지내면서 스스로 탓하며 살아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와 거주시설 폐쇄를 위해 끝까지 투쟁합시다.”
이날 서울지방조달청에서 결의대회를 마친 장애인활동가들은 오랜 시간 집과 장애인수용시설에서 ‘잠수 타며’ 숨죽이며 살아왔던 장애인의 삶에 대한 의미을 담아 잠수교를 향해 행진했다.
1일 오후 3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서울지방조달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가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규탄하고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을 예고했다. 사진 강혜민 참가자들이 사회적 죽음을 당한 장애인을 향한 추모의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국에서 1000여 명의 장애인활동가들이 서울지방조달청 앞으로 집결했다. 사람들이 장애인을 옥죄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기준, 거주시설을 의미하는 밧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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