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당신처럼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고향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려고 고속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였다. ‘휠체어 장애인 이용 안내문’이 저절로 열리기에 읽어 내려갔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이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닌가 싶어 눈에 힘을 주고 한 번 더 읽었다. 그것이 그토록 당당하게 ‘공지’될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내 생각이 틀렸다. 버스회사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단어 하나까지 애써 고른 흔적이 역력했다. 모욕감 같은 것이 훅 끼쳐왔다.
그 순간 바로 옆에 걸린 또 다른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버스를 경험하세요. 첨단 안전장치 설치, 독립 공간 제공, 전 좌석 개별 모니터, 영화, 드라마 등 제공.’ 지난해 12월부터 운행하기 시작한 프리미엄 버스 광고였다. 그 적나라한 대비 앞에 나는 조금 멍해졌다. 두 개의 공지가 선명하게 일깨운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버스’와 ‘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는 버스’는 하나의 버스이며, 그것이 바로 내가 타게 될 그 버스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휠체어 탄 누군가를 플랫폼에 남겨두고 혼자만 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사람의 기분이 되었다.
2001년 처음 노들장애인야학의 문을 두드렸던 나는 살면서 장애인을 거의 본 적 없는 평범한 비장애인이었다. 교사인 나는 방황하던 대학 졸업반이었고, 또래인 야학 학생들은 초등학교는커녕 변변한 외출도 해본 적 없는 중증장애인들이었다. 장애인이 차별받는 세상이란 저 멀리 따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일주일에 한번쯤 ‘봉사’하러 다녀오면 되는 줄 알았으나, 내 생각이 틀렸다. 학생들은 지나가듯 말했다. “나도 대학 가고 싶어, 나도 연애하고 싶어, 나도 돈 벌고 싶어.” 거기엔 모두 ‘너처럼’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한가한 소리를 일순간 팽팽하게 당기는 말. 저항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밧줄 같은 말. 그것은 주술처럼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그 말의 힘을 아는 사람들이 쉽게 연결하기 어려운 것들을 연결해 ‘장애인의 이동권’이라는 불가능한 권리를 발명하고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 같은 낯선 문장을 개발했다.
이동권 투쟁의 성과로 2005년 이동권을 인권의 관점으로 명시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되었고, 부족하나마 대중교통의 현실은 개선되어 왔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전국의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통틀어 휠체어 승강설비를 갖춘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지역 사이를 이동할 방법은 없다. 2014년 장애인들은 정부와 버스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국가에는 책임이 없고 버스회사만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버스회사는 억울하다며 항소했고, 장애인들은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항소했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인 지난 26일, 귀성객으로 붐비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의 시외버스 이동권 확보를 위한 버스 타기 행사가 있었다. 승차권을 꼭 쥐고서도 버스에 탈 수 없는 장애인들을 플랫폼에 남겨두고 비장애인 승객들이 줄지어 버스에 올랐다. 장애인들은 “다음 명절에는 우리도 함께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외치며 떠나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천천히 출발하는 버스 안 승객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자신이 탄 버스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 자리의 주인에 대해 생각해주기를, 이편에서 던진 ‘당신처럼’의 밧줄을 함께 당겨주기를, 그리하여 그들이 조금 더 불편해지기를 바랐다. 세상은 딱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
원문보기(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0616.html#csidx611e8bf1ab7e45ca6fc85e75c98cf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