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 사회에선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이슈가 뜨겁게 타올랐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상징되는 여성을 향한 극단적 폭력의 문제가 사회 각계에서 제기됐고, 박근혜 퇴진 투쟁 와중에서 터져나오는 여성 혐오적 발언에 대한 논쟁도 뜨거웠다.
그에 못지 않게 장애계에서도 장애여성의 권리를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됐다.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담론을 확장하기 위한 논의가 꾸준히 전개됐고, 모성권 보장을 위한 지원체계 요구, 장애여성 대상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도 두드러졌다.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생명의 가치를 선택하는 국가에 저항하는 단초"
장애, 인권, 여성, 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2015년부터 조직한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은 올해 새롭게 '성과 재생산 포럼'을 통해 장애여성 재생산권 논의의 새로운 활로를 열고자 했다.
그동안 낙태를 둘러싼 논쟁은 '태아의 생명권'을 이유로 낙태에 반대하는 진영과 '여성의 임신출산 선택권'을 내세우며 낙태금지법에 저항하는 여성운동 간의 충돌로 그려졌다. 그러나 이 프레임 안에서는 어떤 생명에 대해서는 임신과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어떤 생명에 대해서는 사실상 낙태를 종용하는 '국가'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었다. 즉, 우생학적 이유로 낙태를 종용받는 장애인과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문제는 열외로 취급되어 온 것이다. '성과 재생산 포럼'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기존의 낙태 논쟁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국가가 '정상성'을 규정하고 선택하는 사회에서, '비정상성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장애 여성은 재생산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했다. 이는 비단 장애 여성뿐만이 아니라 성소수자, 청소년, 이주민, 비혼인 등에게도 유효한 비판이다. 국가는 '생명 존중'을 이유로 여성의 낙태를 처벌하고 있다. 한국 역시 모자보건법을 통해 여성의 낙태를 통제한다. 그러나 포럼에 참석한 이들은 "과연 국가가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입 모아 제기했다. 여전히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사람의 낙태를 예외적 허용 사유로 제시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장애 여성에겐 임신과 출산 이후 더욱 절실한 지원, 그러나 정부는 뒷짐만
지난 4월 진행된 장애인 모∙부성권 보장 요구 기자회견 모습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보호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장애 여성이 아이를 낳아도 모성권을 제대로 보장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장애 여성은 임신 소식을 알리면서부터 축하 대신 '낳을 거냐'라는 이야기를 듣고, 접근성이 거의 없는 병원을 힘겹게 이용해야 한다. 장애 여성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활동보조 시간을 추가로 받을 수 있긴 하지만, 산전·후를 모두 포함에 6개월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한 달에 80시간이 최대이다. 나머지 시간은 고스란히 자신의 '활동'을 위해 배정받은 활동보조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활동보조 시간도 한계가 있어, 아이 돌보는 데 시간을 다 써버리고 나면 장애 여성의 '개인적 삶'은 통째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지적장애나 정신장애가 있는 여성의 경우는 신체 장애 여성과 다른 어려움을 마주한다.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 여성이 자녀를 양육할 때 애로사항 중 ‘양육 관련 정보 부족’은 지적장애가 15.3%로 다른 장애 유형(지체 1.4%, 뇌병변 0.0%, 시각 3.4%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0년 발간한 ‘장애 여성 유형별 임신, 출산 육아 매뉴얼 개발’ 연구보고서에는 아이의 성장에 따라 우유의 양이나 기저귀의 크기를 자연스레 늘려가야 하는데, 지적장애 여성의 경우에는 처음 접한 정보대로만 따르게 되어 지속적인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양육은 스트레스 강도가 매우 높은 과정이다. 이로 인해 정신적 장애가 없던 산모들도 '산후 우울증' 등에 시달리게 된다. 하물며 임신 이전부터 정신질환이 있던 산모라면, 양육 과정에서의 지원은 더욱 절실하다.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는 상담 서비스(심리, 정서)였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양육으로 인해 좀처럼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정신장애 여성이 집에서 상담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는 없다.
'저출산'에 대한 우려로 각종 정책을 펼치고 있으면서 정작 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해서는 정책적 고민을 하지 않고 있는 정부를 비판하며, 장애 여성들은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는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8조에서는 "누구든지 장애인의 임신, 출산, 양육 등 모·부성권에 있어 장애를 이유로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분명이 제시하고 있다. '법을 준수하라'는 장애 여성들의 목소리에 정부는 얼마나 귀를 기울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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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대상 성폭행 사건 판결부터 보도까지, "이게 최선입니까?"
지난 5월, 지적장애 아동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판결한 재판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중 한 참가자가 손피켓을 들고 있다.
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은, 2016년에도 계속되었다. 특히 지난 5월, 지적장애를 가진 청소년이 성인 남성들에게 성적 착취를 당한 사건을 '피해자가 만 13세가 넘어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피의자들로부터 숙식을 제공받았으므로 이는 자발적 성매매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법원 판결을 둘러싸고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특히 장애계는 법원의 이러한 판결이 '지적장애인의 장애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당시 법원 판결 비판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지적장애인은 판단력, 대처력, 미래에 대한 예측이 지적장애인이 아닌 사람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라며 "(법원의 판결은) 지적장애인과 지적장애가 아닌 사람 사이의 무형의 위력 관계를 법원이 놓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사회적 압력에 반응한 탓인지 항소심부터는 가해 남성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장애 여성 성폭력 사건에 관한 문제는 법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부분 국민이 이 사건을 접하는 경로는 바로 언론 기사인데, 장애 여성 대상 성폭력에 대한 보도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지난 11월 진행된 '장애와 성폭력, 이게 최선입니까?' 토론회에서는 언론의 선정적 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 여성 대상 성폭력 사건을 보도한 기사 제목을 분석한 결과,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 강화 △장애에 대한 편견 강화 △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극단적 표현 △가해자 언어로 사건 구성 △가해자의 비인격화 △가해행위 축소 △취약한 위치의 가해자에 대한 편견 강화 등의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기사 내용에서도, 지적장애 여성을 '유인'한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거나 여성의 무력함을 극대화하는 삽화 등을 사용함으로써 '지적장애 여성은 취약한 존재'라는 인식 강화에 일조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가 2014년에 공동으로 출간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이를 제대로 숙지하여 보도의 공익성과 윤리성을 지향하는 경우는 손에 꼽힌다. 이에 대해 김광일 노컷뉴스 기자는 "온라인 뉴스 대부분이 트래픽과 광고수익에 연동되어 있다 보니, 자극적 기사 양산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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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여성 이슈에 관한 논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장애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적 소수자 정체성을 갖고 있는 그들은, 가부장/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인지하고 확보하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다. 2016년에는 페미니즘 이슈가 대중화되었다. 물론, 여전히 페미니즘의 '갈 길'은 멀지만, 2017년에는 페미니즘의 지형이 더욱 넓고 깊어져 그 주류 담론에 장애 여성의 권리에 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 물꼬가 트이길 기대해본다.
비마이너 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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