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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 삭발까지 했는데…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결국 ‘외면’
향후 3년 결정하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의료급여 폐지 아닌 ‘개선’ 결정
박능후 장관 ‘대통령 공약은 생계급여가 핵심, 의료급여는 아냐’ 돌연 모르쇠
 
등록일 [ 2020년08월10일 21시32분 ]
 
 

1597061683_64245.jpg10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의 주최로 6명의 장애인들이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삭발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추경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대의원이 삭발을 하고 머리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라고 적힌 띠를 두르고 있다. 사진 이가연
 

정부가 ‘부양의무자기준을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파기하고 돌연 약속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 회의를 앞두고 삭발 투쟁까지 나섰던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이러한 정부 행태에 강하게 분노하고 있다.

 

10일, 중생보위 회의가 열리는 세종시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 앞에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등의 주최로 6명의 장애인들이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삭발투쟁을 하며 절박함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아래 제2차 종합계획)에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포함하지 않고 약속을 파기한 데 이어 약속 자체를 부인했다.

 

이번 중생보위 회의에서는 지난 기준중위소득 결정에 이어 내년부터 3년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계획을 정하는 제2차 종합계획(2021~2023)을 논의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여부가 반영되는 제2차 종합계획을 중심으로 논의했지만, 정부는 결국 폐지 대신 ‘개선’ 조치를 결정했다. 복지부는 같은 날 중생보위 회의가 끝난 뒤 보도자료를 통해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도 지속 추진한다”면서 “2022년 1월부터 기초연금 수급 노인이 포함된 부양의무자 가구는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부양비 및 수급권자의 소득과 재산 반영 기준을 개선해 13만 4000가구를 추가적으로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확대한다”라고 전했다.

 

생계급여에 있어서도 부양의무자 기준은 완전히 폐지되지 않았다. 정부는 제2차 종합계획을 통해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다고 크게 강조했지만, 고소득·고재산(연 소득 1억 원 또는 부동산 9억 원 초과)을 가진 부양의무자에 대해서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계속 적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7월 14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그린뉴딜 종합계획’과 동일하다.

 

중생보위 공익위원으로 참여한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이번 결과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박 위원은 “회의에서 제2차 종합계획에 ‘3년 동안 의료급여에서의 폐지 방안도 검토한다’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대신 ‘제3차 종합계획까지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 방안을 검토하는 등 취약계층 의료보장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는 의견을 부대의견으로 담았다”라고 전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중생보위 회의를 마친 뒤 열린 브리핑에서 시민단체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제2차 종합계획을 시행하는 기간 동안 3차에 담을 내용을 미리 검토할 것이라는 부대의견을 달았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제2차 종합계획에 정확히 명시하는 것이 아닌 의견을 덧붙이는 것에 불과해,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비난을 무마하고자 하는 구색 맞추기일 뿐이다.

 

게다가 박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은 의료급여에서의 폐지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며 그동안의 약속을 돌연 부인했다. 박 장관은 “대통령께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철폐하겠다는 것은 생계급여에 초점이 있는 말이었으며, 의료급여를 말한 건 아니었다”라며 “사실 장애인들의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이 공약사항이었으며, 직접 부양의무 조건을 폐지하겠다는 것은 언급한 적이 없었다”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정부가 수차례 한 약속을 한순간에 번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당선 전 공약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의 폐지를 공언했으며, 당선된 뒤에도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임기 내 폐지를 국정과제로 삼았다. 게다가 박 장관은 지난 2017년 8월 25일, 광화문 농성장에 직접 찾아가 제2차 종합계획에 생계급여·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의 계획을 담겠다고 약속하고, 지난 7월 3일에 제59차 중생보위 회의가 열렸던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도 2년 안에 완전 폐지하겠다고 재차 약속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번 중생보위 회의에서 의료급여에서의 폐지를 반영하지 않는 데다가, 정부가 약속했던 내용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까지 보인 것이다. 1,842일간의 광화문 농성을 통해 얻어낸 약속이었는데, 결국 정부가 약속을 파기하면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제3차 종합계획만을 바라보며 이제 또다시 3년을 기다려야 한다.

 

1597061695_26873.jpg권은춘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충북장차연) 대표가 삭발을 하기 전, 단발머리를 하고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1597061705_84514.jpg권은춘 충북장차연 대표가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1597061743_42218.jpg권은춘 충북장차연 대표가 삭발을 마치고 머리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라고 적힌 띠를 두르고 있다. 사진 이가연

 

-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한다고 약속했는데… “가난한 사람은 그냥 죽으라는 거냐” 

 

이번 중생보위 회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를 뚫고 회의가 열리는 세종시 복지부 건물 앞에서 삭발투쟁을 벌였다. 지난 7일, 이형숙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 적폐 폐지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이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며 삭발한 데에 이어 이날은 6명의 장애인들이 릴레이 삭발투쟁을 이어나갔다.

 

삭발투쟁에 함께한 6명의 장애인 중 유일한 장애여성인 권은춘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단발머리는 이발기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짧아졌다. 중증 뇌병변장애인인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며 하루하루를 가슴 졸이고 있었다. 자녀들이 부양의무자로서 평생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호소문을 통해 “부양의무자 기준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제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치매에 걸린 어머니마저 당신이 죄가 많아 이렇게 제가 태어났다고 한다. 평생 장애인 자식을 돌봐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얼마나 크고 무거우면, 치매에 걸린 가운데 이런 말씀을 잊지 못하는지 마음이 저려온다. 중증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는 아플 자격도 없는 것인가”라며 문 대통령의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또다른 삭발투쟁 동참자 김성엽 가치이룸장애인자립생활센터 국장은 “머리를 깎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누구보다 서민을 잘 아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서 저 또한 문재인 대통령을 찍었는데, 부양의무자기준에서 의료급여를 빼겠다고 한다”라며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한다고 약속했는데 이러는 것은) 사기다. 가난한 사람은 그냥 죽어도 되는 거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1597061766_81058.jpg삭발을 마친 여섯 명의 참가자들. 왼쪽부터 왼쪽부터 권달주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서기현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사, 안재성 무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김성엽 가치이룸장애인자립생활센터 국장, 추경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대의원, 권은춘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사진 이가연

 

- 수급 받으려면 가족 단절 증명해야… ‘문재인 케어’는 병원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삭발투쟁 결의대회에 참여한 사람들도 동료의 삭발을 바라보며, 부양의무자기준의 제도를 비판하고 완전 폐지를 정부에 촉구했다. 

 

부양의무자기준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족과의 단절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가족을 피해서 지내고 있는 20대 거리홈리스와 함께 주민센터로 수급신청을 하러 갔지만, 가족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고 증명하는 ‘가족관계 해체사유서’를 써야 했다”라며 “백지와 같은 양식에 (직원이) 있는 그대로 다 쓰라고 하자, 그분은 어릴 때부터 겪은 피해를 소상히 적어야 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20년 동안 가장 두드러진 도약은 권리를 명시한 것이라고 하는데, 수급 신청 과정에서 권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며 현 부양의무자기준 제도를 비판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고 해도 큰 걸림돌이 된다. 최강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조직실장은 20년 전 탈시설을 계획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90년대 당시 저는 우동민 열사와 같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시설에서 너무 나가고 싶어서 함께 계획도 세웠지만, 부양의무자기준에 걸려버렸다. 차라리 부모가 없는 게 나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라며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양의무자기준이 발목을 잡고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수급을 받기 위해 가족을 아예 호적에서 파서 단절을 증명해야 하고, 상속을 포기하고 오로지 혼자 살아야 한다”면서 여전히 가족에게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분노했다.

 

한편, 제2차 종합계획 발표에 공동행동은 즉각 성명서를 내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을 파기한 정부를 규탄했다. 공동행동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완화’는 완전히 다르다”면서 “완화에만 그친다면 어떤 수준에서든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가 존속되며, 본인이 아닌 가족의 재산과 소득에 따라 수급권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짚었다. 이어 의료급여에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 “현재 의료급여는 다른 급여에 비해 유난히 정체된 상태”라며 “정부는 의료급여가 필요한 빈곤층을 영원히 버려둘 셈인가. ‘문재인 케어’는 병원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죽어가는 빈곤층에게는 한발자국도 다가오지 않았다”라고 비판하며 앞으로 부양의무자기준의 완전 폐지를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을 밝혔다.

 

1597061775_66285.jpg10일, 중생보위 회의가 열리는 세종시 복지부 앞에서 공동행동 등의 주최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삭발투쟁 결의대회가 개최했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기사원문 : https://beminor.com/detail.php?number=14973&thread=04r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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