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일 토요일 오전,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화로 전해졌다. 1981년 26세부터 장애인거주시설에서 35년을 살다 2017년에 탈시설하여 대구의 장애인자립주택에서 생활하던 최현창 님이 10차선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포크레인과 추돌하여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 64세였다. 탈시설하여 자립생활을 한 시간은 4년 남짓이었다.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충격적인 그의 죽음에 비통함을 느끼는 것이 사치로 느껴질 만큼 보내드리는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필자는 고(故) 최현창 님의 장례를 총괄한 활동가로서, 장례를 치르며 느낀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를 개선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기고한다. 문제를 바꿔나가는 것이 고인과 함께 지역에서 함께 살아온 동료로서, 장애인인권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로서의 책무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 최현창 씨.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 발급받지 못한 사망진단서 원본
비보를 듣고 활동가들은 고인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모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실 구석 침대 위에 고인은 천에 가려진 채 주검이 되어 있었다. 경찰은 고인과 활동가들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간단한 조사를 했다. 경찰 입장에서는 장애인자립주택이 어떤 곳인지, 뭘 하는 곳인지 정확히 모르니 계속 질문을 되풀이했고 우리는 거듭 관계를 설명해야 했다. 간단한 조사가 끝난 후 경찰은 우리가 가족이 아니니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할 거라며 사본을 한 장 건네주었고, 월요일에 구청과 통화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명함을 건넨 뒤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고인의 빈소를 마련하기 위해 병원 장례식장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많은 병원에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빈소를 마련한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어렵다는 답을 주었다. 고인이 가는 길 동료들이라도 많이 만나고 떠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접근성이 좋은 종합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하고자 했다. 몇 군데 전화를 돌리던 중 가까스로 모 종합병원 장례식장에서 빈소 마련이 가능하다는 답을 듣고 시신을 이송하였다.
고인은 기초생활수급자였고, 무연고자로 시설에서 탈시설한 분이었다. 대구시가 장애인자립주택에 입주자로 심의 선정하여 입주하신 분이었다. 장애인거주시설은 시설수급자증명서를 제출하면 무연고자인 경우 시설에서 사망진단서 발급이 가능하지만 장애인자립주택은 그러하지 못했다. 우리는 사망진단서 사본을 들고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몇 번에 걸쳐 ‘월요일에 사망진단서 원본, 검사지휘서 원본을 대구시립화장터에 제출할 수 있다’고 확답하고서야 빈소를 마련할 수 있었다. 만약 월요일까지 화장터에 정당한 사유 없이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면, 한 달간 화장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든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거듭하며 말이다.
- 주말, 공휴일이면 죽음도 피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장례식장 사무실 측에 수차례 약속하였지만, 변수라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기에 구청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장애인 담당부서가 관련 업무 지원을 해줄 뿐, 무연고자 사망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휴일이라는 이유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모든 행정은 월요일에 재개하니 오전에 최대한 일찍 오라는 말만 반복하여 듣게 되었다. 우리는 정보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관련 절차를 확인하고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인이 생활했던 거주시설에 무연고자인지를 확인했고, 무연고자의 장례를 주관하기 위해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확인하여 작성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월요일이 되어야 진행할 수 있었다. 고인의 장례는 삼일장을 예정하고 있었고 월요일 오전에는 서류가 신청되어 조치되어야만 발인과 유골 안장이 가능했다. 그렇게 비통함 속에 장례식이 진행되며 주말 동안 우리는 몇 차례 서류와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을 챙겨야만 했다.
고 최현창 씨의 장례식장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 무연고자라 했으나 무연고자가 아닌 사람들
뜬눈으로 맞이한 월요일 오전 아침. 8시가 조금 지나 구청 무연고자 사망 업무 담당자를 찾아갔다. 주말 동안 조금이라도 내용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담당자는 업무를 확인하고 파악하는데 1시간가량의 시간을 속절없이 보냈다. 담당자에게 탈시설 당시 무연고자로 정보를 인계받은 점을 알려주고 연고자 조회부터 빨리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확인절차를 거치며 변수에 뒀던 상황이 일어났다. 고인에게 형제가 있었던 것이다. 탈시설 절차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행정적, 법적 장치는 없었다. 발달장애인인 그가 생전에 연고자 조회를 위해 제적등본, 가족관계증명, 혼인관계증명 등의 서류를 발급해볼 일도 없었다. 개인정보가 담긴 사항이라 지원 단체가 발급받는 것도 논란의 소지가 많은 일이었다.
연고자가 확인되었기에 즉시 장례일정을 조정하고 연고자와 협의를 준비했다. 그러나 연고자와 연락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연락처를 알려 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경찰(사고사인 경우 경찰이 연고자에게 연락하고, 병사 또는 자연사는 구청이 연고자에게 연락한다)이 연고자에게 시신인도 의사를 확인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 경찰에서 연고자의 시신인도 의사 포기를 확인하고 구청으로 무연고 시신 업무를 이관한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인의 발인은 가까스로 예정했던 8월 4일 화요일에 진행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 고인의 돈으로 고인의 장례조차 치를 수 없다
생전 고인은 자립주택에서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1인 1실’의 환경에서 생활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에 불만을 자주 표현했었다. 그래서 그는 대구시에서 지원받은 자립생활정착금과 생계급여를 아껴 국민임대아파트를 신청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었다. 그렇게 4년 만에 1900여만 원을 모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자립주택 동료, 활동가, 활동지원사, 단체 회원들이 참석했다. 장례식장은 장애인 접근성이 가능하지만 크지 않은 빈소였고, 장례용품도 기본형으로 간소하게 준비했음에도 장례비가 700만 원 가까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모은 예금을 쓸 수 없었다.
여러 방면으로 장례비용 집행에 대한 조항을 확인하여 봤지만 무연고 기초생활수급 사망자는 장제급여 또는 개인예금에서 80만 원을 쓰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비용도 집행할 수 없었다. 결국 사회적 관계가 여러 방면으로 맺어진 고인은 지인과 단체의 뜻으로 돈을 모아 장례를 치룰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80만 원 한도에서 장례를 치룰 수밖에 없다. 또는 생전에 민법에 기초하여 장례비용을 집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고인의 장례를 치르며 ‘탈시설’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였던 고인의 마지막 길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현행 제도와 법률, 행정 시스템의 한계를 되짚어볼 수 있었다. 대구에서는 법률가들과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현재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모임을 준비 중이다.
지역사회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갈망했던 고 최현창 님을 기억하며 탈시설 장애인의 마지막 길이 조금이라도 가벼울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공론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고 최현창 씨가 살던 장애인자립주택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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