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 보건복지부가 시도로 보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유형 대비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 관련 유의사항 안내 및 협조요청’ 공문 내용. 서울시 공문 갈무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 19)로 복지행정이 사실상 올스톱된 가운데, 탈시설을 앞둔 장애인들의 복지서비스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도란도란(서울시 관악구 소재)은 장애인거주시설이지만 지난 2009년 설립 당시부터 탈시설 지원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쉼터, 체험홈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당시에는 쉼터 설립 근거가 없어 장애인거주시설로 설립되었다. 현재 거주인은 10명으로, 이른바 염전노예 피해자, 학대 피해자로 대부분 지적장애인이다.
지난해 12월 18일 거주인 10명 중 8명이 SH서울주택도시공사(아래 SH) 전세 임대주택 지원대상자로 선정되어 탈시설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대면심사로 인한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복지행정이 중단되면서 활동지원 신청, 재심사, 이의신청, 주택 마련 등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3월 말까지 SH 전세 임대주택 계약을 완료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일부 거주인은 활동지원 없이 자립을 시작해야 했고, 나머지 거주인도 활동지원 없이 자립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도란도란에서 탈시설-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는 “겨우 잡은 자립생활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자립 시작했는데 코로나19로 활동지원 시간 못 받아
도란도란에서 지냈던 장 아무개 씨는 지난 3월 1일 자립을 시작했다. 시설에서 나오기 전인 2월 25일경 활동지원을 신청했지만 2월 27일, 신규신청을 할 수 없다는 주민센터의 연락을 받았다. 관악구청에서 오는 3월 23일까지 신규 신청을 받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3월 중순 자립을 계획하고 있던 이 아무개 씨도 같은 이유로 활동지원을 신청할 수 없었다.
지난 2월 6일 자립을 시작한 발달장애인 채 아무개 씨는 심사 당시 조력자 없이 국민연금공단(아래 연금공단) 심사를 받았다. ‘장애인활동지원 등급외’가 나와 이의신청을 해야 하는데, 주민센터에서는 3월 23일 이후에나 이의신청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채 씨는 현재 혼자서 지내고 있다. 고혈압약을 복용 중인 그는 탈시설 후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지원은 고스란히 도란도란 사회복지사가 맡아서 할 수밖에 없다.
강자영 도란도란 사회복지사는 “주민센터에 겨우 읍소해서 기초생활수급자이고 신청 단계에 있던 장 씨만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채 씨는 혼자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로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더 강화돼야 할 시점에 이들의 서비스 공백이 길어져 너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 복지부는 8일, 구청은 20일 이후… 공문 해석 제각각 신청인만 불편
활동지원 신청부터 선정까지는 읍·면·동, 시·군·구, 연금공단 등 3개 기관, 6번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한 기관이라도 업무 공백이 있다면 그만큼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날짜는 늦춰진다.
지난 2월 27일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는 17개 시·도에 ‘코로나19 유형 대비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 관련 유의사항 안내 및 협조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의 골자는 ‘종합조사를 3월 8일까지 잠정 유예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종합조사를 의뢰하라’는 것이다. 단, ‘긴급할 경우에만 긴급활동지원 대상자가 되는 경우 긴급활동지원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공문의 해석과 적용은 기관마다 제각각이었다. 연금공단 관악지사에서는 2월 신청자를 위주로 업무 재개를 해야 해서 신규 신청은 8일보다 늦춰 받아달라고 관악구청 측에 전달했다. 관악구청은 관할 주민센터에 수급자격심사위원회가 열리는 20일(금) 이후부터 신규 신청을 받도록 했고, 결과적으로 23일(월)부터 신규 신청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관악구 서림동주민센터와 보라매동주민센터는 3월 23일 이후에나 활동지원 신청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던 것이다.
관악구청 측은 “긴급한 상황일 경우에는 신규 신청을 받으라고 전달했다”며 “반드시 23일 이후에 신청을 받으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부분이 문제가 되자 관악구청 측은 지난 5일, ‘3월 8일 이후부터 신규 신청을 받도록’ 주민센터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업무가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2월 신청자와 그동안 처리되지 않은 심사업무 등으로 신규·이의신청·재심사 등의 업무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 9일, 김치환 도란도란 사회복지사가 활동지원 신규 신청을 하자, 주민센터 담당자는 ‘평소대로라면 4월 1일부터 서비스가 가능하지만, 코로나19로 3월 23일 이후 심사하라는 지침을 받아 서비스 시행은 언제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SH가 도란도란 거주인에게 보낸 안내문. 계약 체결기한을 3월 31일로 명시하고 있다. 사진 안내문 캡처
- SH, 코로나19 긴급상황이지만 임대 주택 계약 연장 계획 없어
이처럼 활동지원 신청에 공백이 생길 가능성은 큰데, 주택 계약 기한이 돌아오고 있어 사회복지사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SH 전세 임대주택 계약 기한은 3월 31일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주택을 마련해 계약까지 마치는 일은 여의치 않다. 현재 8명 중 7명은 SH 임대가 가능한 주택을 찾지도 못했다.
김치환 사회복지사는 “집을 계약할 때는 우선 장애인 당사자가 집을 보고 계약한 후, 부모·후견인의 확인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이처럼 시설에 살지 않았던 사람이나 비장애인의 주택 마련과는 다른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는데, 코로나19로 이 과정이 더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사회복지사는 서울시에 SH 전세 임대주택 계약 마감 연장이 필요하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서울시에서는 SH 담당자와 협의하겠다고 회신했지만, 이후 답변은 없었다.
SH 측에 확인한 결과, 계약 연장은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최광락 SH 전세주택부 부장은 “이미 2019년 12월에 정리되어야 했던 사업인데, 주택기금이 모자라 부득이하게 올해까지 넘겨, 3개월이나 계약 기한을 더 두었던 것으로 더 이상의 기한연장은 힘들다”며 “(탈시설 장애인의) 사정은 이해가 되지만 현재 연장을 원하는 세대가 많은지 수요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고, 현시점에서 계약 연장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치환 사회복지사는 지난 8일 서울시 주택정책과에 긴급 민원을 넣었다. 김 사회복지사는 “활동지원 신청은 계속 뒤로 밀리고 있고,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고 하는데 전셋집을 구하고 계약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왜 유예가 될 수 없는지 모르겠다”며 “관악구 코로나19 확진자 동선도 거주시설 인근과 겹쳐 불안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설에 오랫동안 살았던 분들이 마음 편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조속히 방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허현덕기자
기사 링크 :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4446&thread=04r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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