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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8년, 수급도 못 받은 채 “아무것도 못 하고 멈춰 있었다”
칠전팔기 끝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된 하상윤 씨 이야기
 
등록일 [ 2017년03월30일 16시18분 ]
 
 

탈시설 후 8년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수급자가 되지 못했던 하상윤 씨.
하상윤 씨(뇌병변 1급, 45)씨는 2009년 6월, 7명의 동료들과 석암 베데스다 요양원(아래 석암 요양원)에서 나왔다. 별다른 거처가 없어서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했다. 시설에서 나와 자유를 얻었으나, 지독한 가난도 함께 따라왔다. 부양가족(부모)이 있다는 이유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상윤 씨는 결국 지난 17일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게 됐다. 부족하나마 자립의 요건 중 하나인 안정적인 소득을 탈시설한 지 8년 만에 겨우 갖춘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는 제도,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무관심을 뚫고 일궈낸 쾌거였다.
 

“발전이 없는 곳” 시설에서 나왔지만, 무일푼 신세
 
상윤 씨는 10세에 장애인 거주시설에 들어가 37세에 거리로 나왔다. 삼육재활원과 주몽재활원을 전전하다가 20세 무렵에 석암 요양원으로 입소해 청년기 대부분을 보냈다. 그에게 시설은 “그다지 사람이 발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오로지 먹고, 자는 것밖에 허용되지 않았던 시설보다는 차라리 마로니에 공원에서 한대 잠을 자는 것이 백배 나았다는 것이다.
 
당시 무일푼이었던 상윤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신청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부양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아버지는 당시 70대에 별다른 소득원은 없었으나 주택 2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2014년까지는 상윤 씨 명의로 된 LPG 차량이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연금도 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상윤 씨의 시설에 꼬박꼬박 생활비를 낼 수는 있어도, 그 돈을 상윤 씨에게 직접 줄 수는 없다며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지난 8년간 상윤 씨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천 원 한 장 쓰기 무서웠던 가난, “나만 아무것도 못 하고 멈춰 있었다”
 
국가와 가족으로부터 일체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지난 8년간 상윤 씨는 민간단체 후원금 15만 원가량으로 한 달을 버텼다. 가끔 일하기도 했으나 중증장애인이 안정적으로 일할 곳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 활동으로 1년간 월 40만 원, 종로구청에서 제공한 장애인 일자리로 1년간 월 30만 원을 받았다. 현수막 공장에서 6개월간 월 60만 원을 받기도 했으나 역시 생활비를 충당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2014년부터는 상윤 씨 명의의 차량이 처분돼 장애인연금 22만 원(부가급여 2만 원 포함)을 받게 되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엔 여전히 부족했다.
 
매달 활동지원 자부담 2만 원, 휴대전화 요금 3만 원, 건강보험료 3만 원 등이 고정적으로 나갔다. 돈이 없어서 건강보험료가 20개월 동안 밀렸더니, 60만 원을 내라는 추심서가 날라오기도 했다. 식사는 쌀 20kg 한 포대(3만 원)에 김치와 오징어채, 깻잎 등 반찬 3만 원, 총 6만 원으로 해결했다. 그가 다니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학생들에게 끼니 당 1000원, 2000원짜리 급식을 제공했지만, 그는 천 원 한 장 쓰기도 힘들었다.
 
상윤 씨를 지원해온 조사랑 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는 “상윤 씨는 양말도 구멍 난 채로 신고 옷도 제대로 사 입지 못했다. 석암 요양원에서 나온 동료들이 모임을 해도 돈을 내야 하기에 참가를 피하기도 했다.”며 지난 시간을 설명했다.
 
상윤 씨와 함께 시설에서 나왔던 대부분의 동료들은 곧장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받아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또 다른 이들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며 자립생활 운동을 한다. 돈 때문에 집도 없고 애인과 결혼도 생각할 수 없었던 상윤 씨는 “부럽고 솔직히 샘도 난다. 나만 아무것도 못 하고 멈춰 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마로니에 노숙으로 얻은 자립생활 권리… 돈 없으면 누릴 수 없나 
 
주거도 불안정했다. 상윤 씨는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을 위한 임시주거주택인 평원재에서 4년, 서울시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서 4년을 살았다. 다른 동료들은 평원재에서 1~2년을 머물다가 임대아파트 등 안정된 주거공간을 마련해 떠났다. 반면, 그는 최대한 버틸 수 있는 한 평원재에서 살아야 했다. 민간재단이 운영하는 평원재는 사정을 이야기하면 거주 기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서울시 등 공공이 운영하는 장애인자립생활주택은 거주 기간이 최대 7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그는 ‘7년이 카운트되는 그 시작점’을 최대한 미뤄야 했다.
 
돌이켜보면 장애인자립생활주택은 상윤 씨 등 석암 거주인들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농성하며 얻어낸 성과였다. 그들의 투쟁으로 2009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립생활주택 확대와 장애인전환서비스센터 설치를 약속했다. 이는 2013년에 서울시가 탈시설 5개년 계획 등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수립하는 토대가 됐다. 서울시의 탈시설 정책은 더디지만 조금씩 확대되어갔다. 그러나 상윤 씨는 좀처럼 그 지원 대상자가 되기 힘들었다. 이유는 ‘경제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립생활주택 입주자 심사 시, 서울시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에선 가족의 부양비나 기초생활보장 수급비 등 개인의 경제적 능력을 따진다. 그러나 시설에서 갓 나온 장애인이 수급자가 되지 않는 한 경제적 능력이 있을 리 없다. 애초에 심사 조건 자체가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다. 상윤 씨가 자립생활주택 입주를 주저했던 이유엔 이러한 심사 조건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며 살아온 지난 8년간 상윤 씨가 모은 돈은 500만 원 남짓. 오직 자립생활을 위한 집 보증금 목적으로 모은 돈이다. 서울 집값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그에겐 미래를 희망할 수 있는 씨앗이다. 만약 8년 전, 바로 수급자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2009년 6월 장애인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 마련을 촉구하며 석암 요양원에서 이삿짐을 챙겨 마로니에 공원으로 나온 하상윤 씨. ⓒ노들장애인야학

가족 관계 단절, 부양의무 기피 증명해도 너무나 높은 수급의 벽
 
물론 상윤 씨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을 가능성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예외로 가족과 관계를 끊거나, 가족이 부양을 기피하고 있다고 지자체가 판단하면 수급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가족이 있는 일부 동료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수급을 받곤 했다.
 
상윤 씨도 수급자가 될 수 있게 아버지께 가족 관계를 단절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는 둘의 관계가 더는 회복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치닫는 계기가 됐다. 급기야 아버지도 아들을 보길 더는 원치 않았고, 한동안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상윤 씨도 가족과의 연락을 아예 끊었다.
 

상윤 씨는 가족으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수급권자가 되게 해달라고 평원재가 있는 종로구청 등 지자체에 호소했다. 종로구청은 아버지에게 상윤 씨를 부양하고 있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부양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잘 살고 있다가 가출했다”라고 답변했다. 구청은 이를 근거로 아버지의 부양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상윤 씨는 여전히 어떤 부양도 받지 못하고 있었기에 수급자가 되기 위해 가족관계 단절, 부양 기피를 증명하는 서류를 수없이 지자체에 제출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가족 때문에 안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자꾸 신청하느냐’의 구청 공무원의 신경질적인 반응뿐이었다.
 

칠전팔기 끝에 얻은 수급자격, 해피엔딩이기엔 찝찝한
 
상윤 씨는 현재 거주지인 강북구에서 4번의 신청 끝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게 됐다. 종로구청에 신청한 것까지 합하면 몇 번을 시도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3월 초 상윤 씨와 함께 강북구 생활보장과를 찾아갔던 조성남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인권침해가 싫어서 시설에서 나온 상윤 씨에게 시설로 들어가지 않으면 부양비를 내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태도는 부양 기피임을 설득했다. 게다가 언젠가 자립생활주택에서 나오게 되면 그의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점도 이야기했다.”면서 “수급자격은 구청과 담판을 벌여 얻게 된 것”이라고 지난한 과정을 설명했다.
 
덕분에 상윤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비 생계급여 49만 5879원에 수급자에게 주는 장애인연금 28만 4010원(부과급여 8만 원 포함)을 받게 됐다. 건강보험 대신 의료급여를 받게 된 것도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다. 그는 첫 수급비로 “그동안 밀린 공과금을 처리했고 애인에게 선물도 사줬다. 그동안 많이 얻어먹었던 동료들에게도 한턱 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8년이 지나서야 상윤 씨는 다른 동료들과 같은 시작점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윤 씨는 수급자가 되어서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라고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건 성급한 결말일 듯하다. 지난 8년간 국가가 상윤 씨에게 남긴 피해를 그저 덮고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강북구에서 인정한 수급자격을 종로구에서는 왜 인정하지 않았을까. 그는 가족과 왜 부양 문제로 싸워야 했을까. 그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을 때 수급을 받기 위한 기나긴 투쟁은 왜 혼자만의 몫이었나. ‘탈시설 의지가 있는’ 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칠전팔기 끝에 얻어낸 수급권이지만 찝찝함이 남는 이유다.

 

갈홍식 기자 redspirits@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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