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가 피성년후견인의 수어통역을 제한한 ‘수어통역 등에 관한 예규(아래 수어통역 예규)’가 개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일 대법원은 청각장애인이 소송에 참여하거나 재판을 방청할 때 필요한 수어통역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의 ‘수어통역 예규’를 제정했다. 수어통역 내규에는 모든 소송절차의 당사자·증인·감정인 등에 수어통역을 제공하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수어통역 등의 절차와 방법, 수어통역인 후보자의 선정 및 교육, 지정 등의 구체적 내용도 담고 있다. 이에 그동안 미비했던 사법·행정절차에서의 장애인 조력의 구체적 방안 마련에 장애계는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수어통역 등에 대한 예규’ 제6조 ‘결격사유’에 ‘수어통역인 후보자 명단’에 등재해서 안 되는 사람으로 피성년후견인을 첫 번째로 제시했다. 그 아래에는 후보자 명단에서 삭제해야 할 대상으로 ‘심신상의 장애로 수어통역인으로서의 직무집행을 할 수 없다고 인정될 때’라고 명시하고 있다. 법원 종합법률정보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수어통역 내규 제6조 ‘결격사유’에서 ‘수어통역인 후보자 명단’에 등재해서 안 되는 사람으로 피성년후견인을 첫 번째로 제시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후견인을 둔 사람은 수어통역인으로 일할 수 없고, 이미 수어통역인으로 일하고 있더라도 후견인이 선임되는 순간 그 자격을 잃게 된다는 의미다.
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아래 연구소)는 4일 성명을 통해 “(해당 조항은)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 등 불가피하게 후견인이 필요한 사람 내지 일시적인 사유로 후견인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법원의 수어통역인이 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한다”며 즉각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 수어통역 예규 제6조에서 ‘심신상의 장애로 수어통역인으로서의 직무집행을 할 수 없다고 인정될 때’ 수어통역 후보자 명단에서 삭제하도록 규정하고 있기에 더욱 불필요하다는 게 연구소의 주장이다. 연구소는 “후견인이 선임된 모든 사람이 실제로 업무수행을 할 수 없는지조차 불분명하고 일률적으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성년후견인 결격조항은 개별법에서도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공무원법 제33조’ 등 300여 개의 개별법에서 결격조항을 명시하고 있어 피성년후견인이 공무원 또는 사회복지사가 될 수 없고, 각종 자격 취득도 할 수 없다. 또한 이미 직업이 있거나 자격이 있더라도 피성년후견인이 되면 직업을 잃거나 자격을 박탈당했다.
따라서 피성년후견인 결격조항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는 국내외적으로 높다. 우리나라의 피성년후견인 법률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는 지난해 6월 피성년후견인에 대한 결격조항을 일괄 폐지하는 법률이 통과됐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7월 법제처와 법무부가 ‘피성년후견인 선고 여부’가 아닌 ‘직무수행 능력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방식으로 결격조항을 정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연구소는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수어통역 예규가 오히려 피성년후견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는 국내외적 흐름에도 반하는 것으로 즉각 개정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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