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확산세로 돌아섰다. 앞으로 제2의 유행이 점쳐지는 가운데, 코로나19에서 장애인이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3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장애인 종합대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자들은 “코로나19로 케이(K)방역에 대한 언론의 극찬이 이어지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방역 대책에서 빗겨가고 있다”며 제2차 유행이 오기 전에 정부가 구체적인 감염병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3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코로나19 장애인 종합대책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 코로나19 방역에서 배제된 장애인들
- 재난 상황 불평등 코로나19로 더 심화
발제를 맡은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정책국장은 코로나19가 장애인에게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기본적인 불평등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장애인보건의료센터, 장애친화건강검진 기관 지정 등 사업과 인프라 구축은 초기 시범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전 정책국장은 “올해 3월 정부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지만, 감염취약계층은 ‘만 12세 이하의 어린이 및 만65세 이상의 노인’, ‘임신부 및 기저질환자’로 국한되었다”며 “장애인의 기본적인 건강상태와 가구환경, 생활 특성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 정책국장은 대구·경북 지역 장애인들은 △코로나19 관련 정보접근의 어려움 △장애인 상황 고려하지 않은 마스크 공급 및 방역 지원 △검진체계에서의 장애 접근성 부족 △건강한 중산층 비장애 성인 중심의 자가격리 시스템 △장애 상황 고려하지 않은 신장장애인 등 고위험군에 대한 분류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지원대책 부재 △기존 의료 자원 한계와 의료 할당으로 인한 의료 공백 등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때 정부가 내린 장애인 지침은 상황별 대응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전 정책국장은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별도의 지원 지침이나, 병원에 입원할 경우 의료인력이 참고할 수 있는 매뉴얼조차도 수립되어 있지 않다”며 “특히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의 대책은 각 기관 중심의 관리대책이었다”고 비판했다.
- 돌봄 공백에 신음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들
코로나19로 장애인복지관과 주간보호시설 등 지역사회서비스 기관도 휴업하면서 그나마 있던 사회적 지원체계·돌봄 체계가 무너졌다. 그중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공백은 크게 다가왔다. 학령기 아동도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봄 책임이 고스란히 가족에게 맡겨졌다. 장기간 이어진 돌봄 공백으로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부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최용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국장은 “코로나19가 지역으로 퍼질 때 운영되었던 것은 활동지원서비스뿐이었다”며 “복지관과 주간보호센터는 긴급지원을 할 수 있다는 지침이 있었지만 음식 지원, 안부 전화 등의 지원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돌봄공백을 메꾸겠다고 긴급활동지원서비스 월 120시간을 제공했지만, 활동지원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무시한 생색내기용에 불과했다”며 “장애인가족지원센터, 발달장애인지원센터, 행동발달증진센터 등은 코로나19에서 발달장애인의 자가격리와 확진 상황에 어떠한 지원과 능동적 노력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 코로나19로 드러난 시설수용 정책의 민낯
국내 코로나19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시설이나 병원 등에서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은 거주인의 98%가 감염되기도 했다. WHO는 유럽 국가에서도 코로나19의 사망자의 절반이 장기 시설 거주자라고 밝혔다. 감염병 상황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설수용 정책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오히려 ‘코호트 격리’ 조치로 시설 거주인을 코로나19 방역의 사각지대로 몰아넣었다. 전근배 정책실장은 “코호트 조치로 집단 수용에서 나타나는 ‘집단성’, ‘격리성’, ‘권력 불평등성’, ‘비선택성’이 더욱 강화되었다”며 “경기도, 대구시 등에서는 집단 감염과 지역사회 확산 방지를 명목으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시설장 재량으로 ‘예방적 코호트 격리’를 공식 권고했고, 경북은 도내 사회복지시설 573곳을 ‘위험구역’으로 설정하고 2주간 강제 코호트 격리를 시행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는 “시설 내 방역 또는 감염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나 정부의 모니터링도 없이 행해지는 선언적 코호트 조치는 방역에 전혀 도음이 되지 않았다”며 “코로나19에서의 집단감염과 집단사망을 계기로 정부는 시설정책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시설정책의 완전히 폐기와 탈시설정책의 수립을 제시했다.
# 감염병 상황에서 장애인 종합대책 어떻게 마련할까
- 공적지원체계 중심으로 논의해야
토론회에서는 공적지원체계에서 장애인 감염병 지원 대책의 힌트를 얻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지난 3월 2일부터 대구시사회서비스원에서는 긴급돌봄서비스 지원단을 운영해 긴급돌봄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봄 인력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장애인거주시설 740명, 노숙인시설 19명, 장애인활동지원기관 65명, 쉼터 5명, 지역아동센터 20명, 의료기관 8곳(2,477명), 돌봄공백 상태의 개인 179명, 긴급돌봄수당 158명 등을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증장애인 코로나19 확진자가 서울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정신건강센터, 서울의료원 등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사례도 언급됐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공적지원체계는 언뜻 너무 당연한 주장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한국은 공공의료병상 수가 10%로 OECD 국가 중에서도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며 “그동안 보건의료정책이 시장성과 효율성의 논리였다면 이제는 공공성의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장애인이 우선 대상자 되는 종합대책 기대
무엇보다 장애유형에 맞는 감염병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그동안 정부는 감염병 상황 시 장애유형별 매뉴얼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조차 묵살해왔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는 지난 2016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감염병 상황에서 장애유형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일명 ‘메르스 소송’은 5년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그동안 매뉴얼을 만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 한 번도 재판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 법원에서 ‘장애인 관련 매누얼을 만드는 것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라’라고 강제조정까지 했지만, 복지부는 조정에 불복했다. 여전히 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박미애 장추련 활동가는 “메르스 소송 당시 정부에 요구한 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처음 장애인당사자가 문제제기했을 때, 법원이 강제조정을 했을 때 두 차례나 장애인 감염병 매뉴얼 제작 요구를 무시했다”며 “장애인단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겪었던 장애인 지원의 어려움, 그에 따른 구체적 매뉴얼을 정부에 제시했다. 정부는 가장 어려운 사람의 지원책 마련을 더 이상 미루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에 권병기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과장은 “매뉴얼 초안은 이미 만들어놓은 상태로 곧 공개될 예정”이라며 “국가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현장에서 문제제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전근배 정책국장은 “대구시도 코로나19 제2차 유행을 대비해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장애인 확진자가 나올 때를 대비해 △공공병원과 노인전문병원을 포함한 두 곳을 마련 △장애인 돌봄 체계 구축 △생활지원 인력 제공 △신장장애인 대책 마련 등의 구체적인 지원 내용을 담고 이에 대한 책임주체 등을 명시하고 있다”며 “그동안 최선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던 장애인이 우선 대상자가 되는 종합대책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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