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무정차로 장애인 수십 명 서울역에 고립 < 장애일반 < 기사본문 - 비마이너
전장연 전원 승차했는데 “모두 하차하라”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정차와 운행중단
시민과 함께 열차에 갇힌 장애인들
전장연이 1호선 멈춰 세운 건 영등포역 9분뿐
서울교통공사가 1호선 서울역 무정차 통과를 결정하면서 장애인 수십 명이 서울역에 2시간가량 고립되는 일이 벌어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4일 오전 8시, 1호선 서울역 6-1 승강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5차 출근길 지하철 탑승투쟁을 벌인다고 전했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과 권리법안(장애인권리보장법, 교통약자이동권보장법,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지원특별법,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정부에 요구 중이다.
이날 오전 10시 국회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다음 해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이 예정돼 있었다. 서울역에 모인 전장연 활동가 150여 명은 노량진역에서 9호선을 갈아타고 11시경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해 이 대통령 연설시간에 맞춰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었다.
서울역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하민지
- 08:04 서울역 6-1 승강장. 65차 출근길 지하철 탑승시위 전 장애인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 09:01 연착시도 없이 승차를 시작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남영역과 용산역은 무정차 통과할 거라고 안내방송했다.
- 09:03 휠체어 이용자 52명 포함 150여 명 전원 승차하고 열차가 출발하길 기다렸다.
- 09:04 서울교통공사가 “이번 열차는 서울역까지만 운행하는 열차이니 모두 하차하라”고 안내방송했다. 승객들이 화를 내며 하차했다. 서울교통공사는 갑자기 왜 서울역까지 운행하는 것으로 변경했는지 알리지 않았다.
- 09:26 승객 전원 하차 후 서울역 상·하행 모두 무정차 통과가 시작됐다. 1시간 20분간 열차는 서울역에 서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재명 국회연설 있다고 전장연이 국회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건가”라고 추측했다.
- 10:48 열차가 멈춰 섰다. 서울역에 고립된 전장연 활동가 전원이 승차했다. 승차를 시작한 지 약 2시간 만이었다. 서울역에서 노량진역까지는 남영역과 용산역 등 2개 역을 지난다.
- 10:53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우리 열차, 영등포역까지 무정차 통과한다”고 안내방송했다. 이번에도 이유는 알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럼 노량진역 지나는 거잖아”, “영등포역 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나?”라며 우왕좌왕했다.
- 10:54 용산역에 도착했다. 한국철도공사는 문을 열지 않았다. 승객들이 내려야 한다고, 어떻게 좀 해보라며 정보과 형사를 향해 화를 냈다. 형사는 “나도 112에 전화 중이에요”라고 대답했다.
- 11:03 노량진역을 지나쳐 신길역에 도착했다. 한국철도공사는 문을 열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 다 같이 갇힌 거야?”라고 말했다. 열차는 계속 정차상태였다.
영등포역에서 하차하는 사람들. 사진 하민지
- 11:30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전원 하차했다. 텅 빈 열차가 떠났다.
- 11:36 노량진역 방향 열차 탑승을 시작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열차 출입문을 막고 한국철도공사를 향해 “왜 무정차 해서 우리를 여기(영등포역)까지 데리고 왔는지 설명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 11:45 박경석 대표가 점거를 풀고 전원 승차했다. 한국철도공사가 “우리 열차, 운행하지 않는다. 모두 내려달라”고 안내방송했다. 승차한 인원들은 내리지 않고 기다렸다.
- 12:05 노량진역 방향 열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 12:24 서울역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반 만에 노량진역에 도착했다.
서울교통공사와 한국철도공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정차와 열차운행 중단으로 활동가들은 오후 1시가 돼서야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많은 언론이 보도한 것과 달리 전장연이 1호선에서 열차를 멈춰 세운 건 오전 11시 36분, 영등포역에서 약 9분뿐이었다. 같은 시각, 4호선 동작역 부근에서는 열차출발을 고의로 지연하는 연착시위가 일어났다고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서비스 지원인원을 확대하고 장애인 일자리를 대폭 확충해 자립과 사회참여의 토대를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장애인 관련 예산 언급은 이것뿐이다.
한 활동가가 “예산 없이 권리 없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다음 해 예산안 중 고용노동부의 장애인 관련 예산 60%가 공공기금이나 은행 예치금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장연은 근로지원인 2만 명까지 증원,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예산 신규편성 등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반영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장애인콜택시 운전원 인건비 지원, 최중증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지원,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운영비, 장애인 자립지원 시범사업 확대 등의 예산도 반영하지 않은 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오는 5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공청회를 시작으로 종합정책질의와 부처별 심사를 거친 뒤 17일에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다음 해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은 다음 달 2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