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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하는’ 예순네 살의 투사, 박명애
[기획] 2018년 4월 19일 오체투지, 그날을 말하다④
박명애 대구 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
 
등록일 [ 2018년06월14일 19시33분 ]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언제나 투쟁에 참여할 때도 내가 먼저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나는 세상에 늦게 나왔잖아요. 애린(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애린 활동가)은 어린 나이 때부터 했는데 나는 쉰세 살부터 운동을 시작했어요. 모르고 살아온 것이 후배들한테 미안해요. 좀더 일찍 눈 뜨고 해야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방 안에서 착하게만 살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 허송세월이 아까워 가열차게 하고 있기도 하고,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안 알리면 누가 알려주겠나,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요. 가열차게 할 수 있을 때 해야 돼요. 요번에 내가 오체투지 한다는 거 대구에선 몰랐어요. 서울 올라와서 이야기했어요. 내 의지 다지는 것도 있었고, 많이 못 갈 것 같아서 걱정했거든요.

 

집에선 그렇게 앉아서 화장실도 가고 마루도 가지만, 사람들 앞에서 내 모습 진짜 보여주기 싫었어요. 복지부는 활동보조 이만치는 욕심지는거다, 그런 생각 갖고 있잖아요. 그러나 전혀 괜찮지 않고 힘들다는 것. 지금 65세가 노인으로 가는 것1)도 분노스럽고. 나는 장애인 맞잖아요. 내가 (장애가 있는 몸을) 안 보여주고 싶어 그렇지. 그 전날에 박능후 복지부 장관을 만났어요. 복지부 장관 만났을 때 65세 요양보험 넘어가는 거 이야기하면서 난 요양보험으로 살아갈 수 없다, 오체투지로 보여주겠다고 이야기했어요.

 

1528973491_41666.jpg지난 4월 19일 오체투지하는 도중 활동가와 대화하는 박명애 대표
 

자기는 원치 않은데 시설 들어가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나오는 분들이 65세 되면 활동보조조차도 제대로 못 받는 거잖아요. 나도 내년에 65세 되는데 요양으로 넘어가면 이도 저도 아닌 거예요. 내 아들이 88년생, 딸은 90년생이에요. 성년이면 돈 벌고 그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자녀가 성인 되면 이만큼 돈 벌어서 도와줄 거라고 수급비도 깎아요. 그러면 그들이 그 돈, 그 시간 할애해서 장애인 엄마 돌봐주어야 하는데 애들이 어떻게 나를 돌봐주고 그래요. 65세 넘어가는 거, 진짜 내가 당사자이기도 하고 또 싸울 수 있는 분들은 싸워야지요. 다른 분들 몫까지 싸워야 해요.

 

난 이제야 활동보조 몇 시간 써야 하는지 알겠어요. 지금 한 달에 292시간 받는 데 모자라요. 내가 아침에 나갈 준비하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저녁 먹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하루에 10~12시간은 써야 해. 주말 되면 집에 있으니 집에서 써야 하고. 시간 부족해서 활동보조인한테 ‘오늘 하루 쉬세요’ 하면 불편함이 너무 커요. 지금은 딸내미랑 둘이 사는데 딸도 불편해하고. 딸 내보내고 혼자 되면 활동보조 시간 더 늘어나테니 그때 제대로 시간 받아 살려 했는데 요양으로 넘긴다니, 지금 난 위기의 순간이에요. 이제야 혼자 살 수 있겠다고 자신 붙는데. 처음엔 활동보조 쓰는 것도 낯설어했어요. 이제야 제대로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양 넘어간다니깐 이건 정말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요양병원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자기네들이 왜 그런 잣대를 만들었나. 이건 말이 안 돼요.

 

1528973602_95120.jpg박명애 대표 ⓒ최인기
 

- 기어가기 투쟁은 내 운동은 내가 한다, 당당함을 위해 하는 거예요

 

저는 제 몸 드러내는 거 싫어해서 몸에 붙는 옷도 싫어해요. 언제나 헐렁한 옷 좋아하고. 그런데 오체투지하는 날은 일부러 흰 바지 입고 갔어요. 내 몸을 당당하게 나타내는 일이라 생각해서. 나는 언제나 투쟁장 가지 않는 듯이 꾸미고 가요.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요.

 

내가 오른쪽 어깨는 올라가고, 몸이 많이 안 발라요. 내 몸이 그런 것을 어릴 때 누가 이야기해준 것도 아니고 열세 살쯤에 사진 찍어서 보니깐 내 몸이 정말 그렇게 앉아있는 거예요. 정말 충격이었고 그 모습이 싫어서 사진 찍는 것도 싫어했어요. 투쟁하면서 그런 게 많이 없어졌는데도 맨몸으로 땅에 내려서 간다는 게, 내가 뭔가 모자른 것은 아닌데, 내 자존심의 거긴가, 그게 아니에요. 바르지 못한 몸이 내가 보기에도 안 좋아요. 허리가, 갈비뼈 있는 데가 굽어서 많이 돌출되고 그래요. 나뿐만 아니라 그런 모습 안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 많을 거예요.

 

내가 길 때 옆에 국립고궁박물관인가, 있는데 그 글자가 아무리 가도 계속 보여. 없어지지 않는 거야. 우리에겐 너무너무 먼 길이었어요. 아스팔트 갈라진 곳은 정말 가기 힘들었고, 하얀 차선 그려놓은 곳이 매끄럽더라구요. 그 하얀 부분만 찾아가면서 기었어요. 정말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억울함이 많이 들었고 옆에 동지들 불편한 거 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사는데 ‘예산 없다’는 정부 이야기에 휘말리는 게 너무 분노스럽고.

 

누워서 못 움직이시는 분들 보면서, 명호(인천 민들레야학 정명호 활동가)나 그런 분들은 많이 힘들잖아요. 내 마음이 그들 마음이고 그들이 내 마음이고. 하기 전엔 마음이 복잡했는데 바닥에 붙은 몸이나 마찬가지인 내 작은 키로, 팔에 의지하면서 가는 그 길이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쉬고 가고 쉬고 가고 해도 정말 청와대 앞까지 가고 싶었어요. 내 혼자만 살아갈 세상 아니고, 내가 있는 대로 내놓고 세상하고 부딪혀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 날은 내 몸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대구에서도 한 10년 전에 기어가기 투쟁한 적 있어요. 대구시청 가까이 있는 2·28공원이라고, 지금보다 젊었으니 힘이 많이는 안 들었어요. 그런데 그 전에 서울 동지들이 한강대교 기었거든요.2) 한강 바람이 얼마나 찼을까. ‘서울 동지들도 했는데 나도 못 하겠나’ 생각했는데 이건 빨리 많이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내 운동을 내가 한다, 당당함을 위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고 나니 마음이 당당해졌어요. 그래도 후배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또 해야 하는 일들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정부가 제발 자기 생각대로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528973587_73892.jpg사람들과 함께 오체투지하는 박명애 대표(제일 오른쪽) ⓒ최인기
 

- 내 할 일 한 것 같아 마음 시원했어요.

 

그날 몸은 힘들었는데 마음은 정말 시원했어요. 밤까지 게보린도 사주고 파스도 사주던데 근육통보다 내가 할 일 한 것 같아서 속이 시원해요. 지금 우리는 복지부나 정부에서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거에 대해 보여주기 투쟁을 한 거잖아요. 너희들 몰라서 그랬냐. 그러면 봐라. 내 몸이 이렇게 절박한데 너네가 안 하고 있다. 그걸 보여주는데 내가 주저 않고 했다는 게 속이 시원해요. 다 우리 동지들 덕분이에요.
 
그날 저녁에 근육통이 되게 심했어요. 몸이 삐뚤어져 있으니 힘이 고루 배분되지 않고 힘 있는 쪽에만 쏠린 거예요. 파스 많이 붙이고 그랬죠. 엉덩이 아파서 많이 누워있고. 제 엉덩이가 짝짝이에요. 오른쪽 엉덩이만 많이 아파서 며칠 동안 고생했어요. 시멘트 바닥이라 엉덩이 밑에 방석 하나 받치고 하라는데, 움직일 때마다 방석 땡겨서 앉을 순 없잖아요. 안 받치고 했더니 엉덩이가 많이 아팠어요. 제가 왼발을 땅에 짚고 앉아서 몸을 끄니 발등에도 빵구가 났고. 서울에 바지랑 양말 버리고 왔죠.

 

이번에 집행부에서 기획도 잘했어요. 내가 힘이 좋아서 좀더 빨리 가면 좋았을 텐데 그게 미안해요. 우리가 싸워야지 남들이 싸워줄 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안 되겠다고 많이 생각했어요. 휠체어 탄 사람들도 기다리느라 고생하고, 다 같이 해서 좋아요. 비장애인 활동가들, 우리 동지들, 옆에 있어서 그게 힘이 됐어요. 외롭지 않아요.

 

* 각주

1) 현재 장애인활동지원법에 따르면, 기존 활동지원 이용자는 만 65세가 되면 자동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로 전환되면서 서비스양이 대폭 감소한다. 복지부로부터 독거 등 개인 생활환경에 따른 추가급여가 지급되면 활동지원서비스의 경우, 하루 최대 13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으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하루 최대 4시간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박명애 대표는 내년이면 만 65세다.

 

2) 2006년 4월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소속 장애인 활동가 50여 명이 활동보조제도화를 요구하며 서울 한강대교를 6시간 동안 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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