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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농성장과의 ‘뜨거운 안녕’-농성장 마지막 날의 표정들
5일 끝으로 중단되는 광화문 농성장, 다양한 감정 일렁이는 하루의 모습
“투쟁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지만, 우리의 승리는 세상의 모든 일상을 바꿀 것입니다”
 
등록일 [ 2017년09월05일 22시47분 ]
 
 

1842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졌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광화문 농성장(아래 광화문 농성장)의 마지막 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꼭 열 살 생일을 맞이하는 날이다. 유례없이 많은 사람이 농성장의 마지막 날을 함께했다. 농성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표정을 만날 수 있었다. 기쁨과 슬픔, 성취감과 아쉬움이 한 공간에서 일렁였다. 이 격동의 하루, 광화문 농성장의 표정을 전한다.

 

오전 11:30 박원순 서울시장 방문

 

박원순 서울시장이 광화문 농성장을 찾았다. 영정사진 앞에서 잠시 묵념한 후, 사람들과 마주 섰다. 광화문 공동행동은 “서울시의 협조 덕분에 5년까지 올 수 있었다. 감사드린다"라며 편지와 꽃을 선물했다. 박 시장은 격려와 함께 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일도 투쟁 없이 이뤄지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록 시장이지만, 이건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요. 학생 때 감옥에서 독일 철학자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 책에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거기 이르는 과정은 투쟁이다'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저도 여러분의 동지로서 함께 하겠습니다.”

광화문 농성장 마지막날에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 ⓒ정택용

 

농성장 한 쪽 벽 역할을 해온 구조물을 해체하고 있는 모습.

 

오후 12:00 농성장 한쪽 각목 구조물 해체 시작

 

농성장 경계 역할을 했던 구조물 해체가 시작됐다. 이미 농성장 안에 있던 짐은 모두 빼둔 상태다. 올해 초 각목을 연결하며 박았던 나사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한다. 각목을 분리하고, 철제 구조물도 해제했다. 그새 먼지가 소복하게 앉았다. 구조물 해체는 40분가량 소요됐다.

 

“와, 이거 만드느라 일주일간 여기로 출근했었는데 철거하는 건 순식간이네. 하하” 철거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철거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 문애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농성장에 도착했다. 구조물이 철거된 자리, 어제까지 분명 벽이었던 곳이 휑한 자리를 바라보며 문 씨는 “아, 진짜 이상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상하다, 이상해요. 이게 없어지니까 이제 진짜 실감이 나네...어쩐지 집에서 쫓겨나는 기분이에요.” 말을 하던 중 코끝이 빨개진다.

 

“이따가 예쁘게 사진 찍어야 한다”라며 양유진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파티용 플라스틱 풍선을 탁자 위에 올렸다. 1, 8, 4, 2 숫자 네 개와 꽃 모양, 별 모양 풍선이다.

 1842일. 농성장의 숫자는 이제 1842에서 중단된다. 풍선을 한참 불고 있는 사람들 등 뒤로 지나가던 한 시민이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며 허리를 숙이고 지나간다. 다시 바삐 걸음을 옮기는 그의 등을 향해 활동가들이 힘차게 소리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월호 농성장에서 자원활동을 해왔다는 한 시민이 농성장을 찾았다. “축하드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그는 세월호 농성 초반, 광화문 농성장 신세를 많이 졌다고 말하며 웃었다. “2014년 7월 14일에, 부모님들 다섯 분이 여기서 노숙 단식 농성을 시작하셨어요. 그런데 그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뙤약볕 아래 계속 계시면 지치시잖아요. 그러면 여기 와서 쉬고 가시고. 당시 서명 받을 때 필요한 물품들, 전단지, 스티커, 노란 리본 이런 거 전부 여기 맡기고 다녔어요. 쓰레기 분리수거도 여기서 하고요, 되게 뻔뻔하게. 하하. 그런데도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늘 도와주셨어요. 저녁마다 문화제도 했었는데, 사람 4명 와있고 막 그랬거든요. 근데 그때도 늘 전장연에서 많이 와주시고, 언제나 함께 해주시고. 정말 감사하죠. 제일 힘들 때 도와주신 것이.”

 

오후 2:00 농성장에서의 마지막 사진

 

아직 남아있는 농성장 앞에 포토존이 마련되었다. 좁은 통로를 막지 않으면서도 농성장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을 청테이프로 표시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적어도 한 번은 농성장을 지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혼자서도 찍고, ‘사수단위’에서 온 사람들이 다 같이도 찍는다.

 

충북 옥천에서 올라온 이영미 씨는 지난해 여름, 야간사수 날 농성장의 추위를 기억한다. “그때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바닥에서 물이 막 올라오는 것처럼 습했어요. 지하인 데다가 습하니까 어찌나 춥던지, 같이 야간사수하던 다른 활동가랑 한여름에 난방기구 찾아서 켜고 잤어요.”

 

지역에서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오가는 교통비, 식비 등 재정적 부담뿐만 아니라 이동 시간으로 인해 꼬박 하루, 길면 이틀까지 업무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담 때문에 나가떨어지는 단위는 없었다. 농성장은 전국의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사수'하고 있는 공동의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이 씨는 말했다. “우리가 다 같이 사수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부담은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었어요. 서울 단위 분들이 ‘지역에서 농성장 지키러 오고 고생한다'하지만, 저희는 또 서울 단위가 지역보다 더 자주 농성장 지키느라 고생한다고 생각하죠.”

 

발달장애인 세 명과 그들의 어머니 세 명도 농성장을 기억하기 위해 아침에 울산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 두 시가 훌쩍 넘어 있는 시각이었지만 점심도 잊은 채 농성장부터 들렀다. “(장애 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 수용시설) 완전 폐지가 아니라서 아쉽지만, 그래도 반 정도의 승리는 있었으니까요.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 그저 부모니까 형제니까 책임이 있다고 부담만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꼭 좀 (3대 적폐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농성장을 향한 메시지에 무엇을 쓸지 몰라 고민하는 아들에게 그는 “장애인 수용시설 없애주세요, 라고 쓰면 되겠다"라고 말한다.

 

정동은 성동센터 사무국장은 “어제 잠을 잘 못 자겠더라고요"라며 웃었다. 농성장에는 성동센터의 친구들 영정이 많다. 故 김주영 씨는 성동센터와 오래 함께한 활동가였고, 故 송국현 씨가 시설에서 나온 후 자립생활 지원을 위해 애썼던 곳도 성동센터였다. 故 박준혁 씨는 성동센터에서 활동보조를 하고 난 후에도 사이가 좋아 사람들이 성동센터 소속 활동가로 알 정도였고 故 박홍구 소장은 성동센터 운영위원이었다. 정 국장은 “친한 사람들의 영정이 늘어갈수록 농성장이 애틋했죠. 이제는 이렇게 짐을 다 빼고 뭐가 많이 없어진 걸 보니까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여기에 이래저래 뭔가, 많이 담겨 있나 봐요.”

 

짐이 모두 빠진 농성장 안에서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왼쪽), 박경석 광화문공동행동 공동대표(가운데),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오른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후 3:30 연대단체들의 농성장 방문

 

농성장으로 떡 배달이 왔다. 민주노총에서 보내온 선물이다. 떡에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 인권의 뿌리를 단단히 내린 광화문 농성 5년, 그리고 전장연 10년! 정말 고맙습니다. 찹쌀같이 연대해서 떡, 하니 이기자!”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농성장을 찾은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이 떡을 받아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우, 떡이 아직도 따뜻하네. 뜨끈뜨끈한 연대의 정이 느껴지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행동하는성소수자연대,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연대단체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축하와 존경의 말이 오간다. ‘포토존'에서의 사진도 빼놓지 않는다. 농성장이 북적북적하다.

 

사람들이 포토존 주변에 몰려 한창 북적이고 있을 무렵,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텅 빈 농성장 안에 앉아있다. 방금 전 농성장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끼 안주머니에 넣는다.

 

세월호 농성장을 방문해 분향소에서 추모하고 있는 사람들.


세월호 농성장을 방문해 분향소에서 추모하고 있는 사람들.
 

오후 4:00 세월호 농성장 방문

 

광화문 농성장 사람들이 세월호 농성장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휠체어들이 올라가느라 엘리베이터 대기 줄이 늘어섰다. 땅 위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이 큰 숨을 들이 쉬며 줄지어 세월호 농성장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아 분향소 앞에서 세 번에 걸쳐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월호 서명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성연 씨는 “기쁜 마음으로 축하한다"라고 전했다. “광화문역을 지나올 때마다 지하 농성장을 보며 ‘정말 징하게 열심히, 오랫동안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비록 완전한 승리는 아니라고 하시지만, 여기까지 국가의 응답을 끌어낸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힘이었습니다. 세월호 농성장과 함께해주셨던 여러분의 연대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또 저희도 계속해서 연대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세월호 농성장의 축하에 박수와 ‘잊지 않겠다'라는 격려로 화답했다.

 

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

 

오후 6:00 농성장을 향한 뜨거운 안녕, 문화제의 시작

 

뉘엿뉘엿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하자작업장학교 페스테자의 공연으로 광화문 농성장 5주년/전장연 10주년 문화제의 막이 올랐다. 광화문 농성장 공동대표단이 무대에 올라 감사 인사를 한다.

 

“1842일, 우리는 손 꼭 잡고 달려왔습니다. 광화문 공동행동에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힘으로 일구어낸 일입니다. 하루하루를 채운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 광화문 농성장에 함께 했던 영정 한 분 한 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과 함께 꾸었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겠습니다. 슬픔에 꺾이지 않고, 분노에 무너지지 않은 것은 손잡아준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화문 농성장을 바라보고 연대해 준 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5년간 투쟁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지만, 우리의 승리는 세상의 모든 일상을 바꿀 것입니다. 농성은 끝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5년의 성과를 딛고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손을 잡읍시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기준, 장애인수용시설 완전 폐지를 위해 함께 투쟁합시다.”

 

감사 인사에 이어 지난 5년간의 투쟁을 담은 영상이 나온다. 여기저기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광화문 농성장의 일상과 뜨거웠던 투쟁을 기획하고 이끌어온 집행위원들이 무대 위로 올라간다. 구구절절한 말은 없다. 몸을 크게 굽혀 인사하는 이들의 머리 위로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진다.

 

오늘 데뷔하는 ‘미스터 어깨꿈’의 공연이 시작됐다. 미스터 어깨꿈의 본명은 박경석이다. “어깨꿈은 ‘어차피 깨진 꿈'의 줄임말이에요. 음악 활동가로서의 제 정체성을 표현하는 이름이에요. 장애인 되기 전에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꿈이었는데 장애인 되고 나서 그 꿈이 깨져버렸다는 의미예요. 꿈이 깨진 다음에는 ‘다 같이 잘 사는'게 꿈이 됐고, 그 꿈을 이루려니 투쟁해야 하데요.” 데뷔무대가 무척 긴장되는지 미스터 어깨꿈의 목소리가 떨린다. 이어지는 고백, “농성장이 끝나니까 제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네요.”

 

고백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박 대표만의 고백은 아니라는 걸. “시원섭섭하다"며 웃어 보였지만, 이 거대한 투쟁의 역사를 잘 정리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너무나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한 사람이 “아, 정말 기분 이상하다"라며 눈물을 글썽이자 옆에 있던 다른 이가 어깨를 감싼다. 그 역시 눈물 고인 채다. 세 시간이 훌쩍 넘는 문화제 내내, 사람들은 기꺼이 광장 바닥에 앉아있다. 광화문 농성장과의 이별을 가능한 한 뜨겁게, 가능한 한 정성 들이고 싶은 마음 탓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역시 알고 있다. 농성은 끝나지만 싸움은 계속된다는 것을. 한 공간에 정주하는 투쟁이 끝났으니, 이제는 온 방향으로 움직이는 투쟁이 시작될 거라는 것을.

광화문 공동행동 집행위원들이 무대 위에서 인사하고 있는 모습


박경석 대표(가운데)와 한명의 집행위원(오른쪽)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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