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 갈까 나 어떡해 나를 두고 떠나가면 그건 안돼”
다큐멘터리 영화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민아영 감독)은 탈시설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과 활동지원사가 함께 집 옥상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산울림의 노래 ‘나 어떡해’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필이면 “나 어떡해”라는 부분만 반복해서 부르는 이들은, 2016년 국내에서 손꼽히는 큰 시설 중 하나였지만 운영자의 비리와 횡령 심지어 입주민의 사망을 고의로 은폐, 조작한 일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었던 사회복지시설 대구시립희망원에서 40~50년을 살아온 중증·중복 발달장애인 9명과 그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는 활동가들이다. (참고 기사: ‘[타임라인] 대구시립희망원 투쟁, 그 1년의 시간’, 비마이너 2017년 6월 13일자)
희망원의 입소자 인권침해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대구의 장애인권운동단체들은 시설에 입주해 있던 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중증·중복 발달장애인들도 희망원 장애인거주시설 ‘시민마을’에서 탈시설 후 자립 생활을 시작했다.
‘탈시설-자립’을 했다는 결말은 언뜻 이야기의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의 ‘탈시설-자립’은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의사소통 무능력자’들의 탈시설-자립 도전기
사회자가 관객들에게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누군가는 영화의 시작인 ‘나 어떡해’를 부르는 장면을 꼽았다. 탈시설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모두에게 정말 ‘나 어떡해’라는 심정이 들 상황 같아 보여서 절묘했다는 거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었다. 이 9명의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은 희망원 시설생활 당시 ‘의사소통 무능력자’로 분류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탈시설이라는 선택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희망원 시민마을이 폐쇄될 때 대구시에서 입주자들을 상대로 탈시설 욕구 조사를 했지만, 이들은 ‘당신은 자립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어떤 답변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어요.”
이선희 팀장은 “그렇기에 대구시는 이들의 (자립에 대한 욕구를) 확인할 수 없다며 다른 시설로 보내려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저희가 얘기를 했어요. 이분들이 여기에 살고 싶은지 시설에 살고 싶은지, 어떠한 표현도 하지 않으셨고 오랫동안 시설생활로 인해 다른 경험을 할 수 없었는데 어떻게 의사를 표시하시겠냐, 그러니까 이분들이 시설생활 말고 지역사회 경험을 하고서 그 경험을 통해 이분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기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죠.”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 그게 정말 ‘자립’일까?
자립지원 시범사업이 시작되었지만 ‘탈시설-자립’은 당사자에게도, 활동가와 지원사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홉 분들은 적게는 40년, 보편적으로 50년을 시설에서 살았고, 시설을 벗어난 적이 없는 분들이에요. 그런데 지역사회로 나오는 탈시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잖아요. 저희도 예전에 발달장애인 탈시설을 지원하는 일은 있었지만 중복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지원하는 일은 처음이었거든요.”
부담이 컸다는 이선희 팀장은 “참고할 수 있는 게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고 했다. 더구나 이분들은 시설에서 ‘의사소통 무능력자’로 분류되던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누리는 것들도 (이분들에겐) 힘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병원에 가서 의료 지원을 받을 때, 은행에 가서 내 명의 통장을 만들 때도 문제가 되고요. 관공서에서 일반적으로 떼는 서류 같은 것도 안 해주는 거에요.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니까요. 그래서 후견인 선임도 해야 했는데 이것도 한번 신청하면 4-5개월 정도 걸리고요. 정말 갑작스럽게 응급실에 가야 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어요.”
시설에서 ‘의사소통 무능력자’였기 때문에 삶에 관한 기록도 없었다. “그냥 이 사람의 도전행동은 이렇게 대처해야 한다, 건강이 어디어디 안 좋으니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 등” 문제 발생 시 대처하는 방법만 나와있을 뿐이었다.
“시설 밖에서의 삶이 그 안에서의 삶보다 낫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에요. (시설 밖으로) 나와서 아프면 어떻게 하나, 아픈 걸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이 많았죠. 그런 고민을 안고 지원 준비를 하다 보니 안전과 건강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당사자들이 지역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건지, 안전한 보호 체계를 만들고 있는 건지.”
지원자들의 방식대로, 떠먹여주는 것이 자립지원은 아니야
이러한 고민은 활동지원 서비스의 방식에 있어서도 이어졌다.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수적인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이다 보니 “활동지원사의 마인드가 어떤지에 따라서, 당사자의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영화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서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간 당사자가 벗어두었던 신발을 신으려다 잘 안되자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병원에 동행한 단체 활동가는 단호하게 ‘OO씨, 이건 혼자 하셔야 돼요.’ 라고 말한다. 이 경우 탈시설-자립의 의미가 무엇인지 상대적으로 잘 인지하고 있는 활동가와 달리, 활동지원사의 경우엔 쉽게 도와주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활동지원사 선생님들의 연배가 50대, 60대 정도거든요. 이분들이 보기에 당사자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거죠. ‘시설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겠노’라는 생각으로 다 해주는 거에요. 좀 흘리더라도 스스로 떠먹을 수 있는 분인데, 떠먹여 준다던가.”
이선희 팀장은 “이렇게 서비스를 받게 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안 하게 되고, 지원사에게 의존하는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활동지원사와 정기적인 면담”을 가졌다.
이선희 팀장은 또 “활동지원사의 원활한 업무분장을 위해 시간을 촘촘하게 구성해서 만든 업무분장표가 당사자의 삶을 패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털어놨다.
“활동지원 서비스가 잘 될 수 있도록 ‘이 시간에는 이 서비스를 하고, 이 시간에는 이 서비스를 하세요’라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생활이 패턴화되는 거에요. 그건 당사자가 배제된 활동지원 서비스였죠. 당사자가 서비스를 요청해서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마련한 일정표 대로 이분들이 움직이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이러한 깨달음은 ‘안전과 건강을 조심하는 자립 지원’의 방향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도록.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그것이 수용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지원을 해나가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선희 팀장의 말은 ‘안전’과 ‘자립’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함께 살아가야 할 지역사회는 여전히 차가워…
시설에 있던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왔다는 건, 장애단체 활동가나 활동지원사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과 공동체가 이들의 자립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선희 팀장은 주민들의 민원으로 고충을 겪었던 경험을 토로했다. “이웃 주민들의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며 민원을 계속 넣는 것”이었다.
또한 40-50년 동안 지내 온 공간을 나와서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과 살고 있는 당사자들의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들도 있다.
“이 아파트가 노후한 건물이다 보니 층간 소음도 심하거든요. 우리 입주민 중에서 이 집에 아직 적응을 못해 밤에 잠을 못 자는 분들이 있었어요. 잠을 못 자고 바닥을 두드리니까 층간 소음 민원이 들어오는 거죠.”
층간 소음은 분명 고충이지만,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민원을 넣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본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활동지원사들을 향해 ‘안전하게 시설에서 잘 살고 있는데 왜 데리고 나왔나, 이것도 학대 아니냐’는 말을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방음 장치도 마련하고, 당사자들과 직접 소통을 해보라고 말을 전하기도 하고, 최대한 반상회도 참가하려고 한다”고 말하는 이선희 팀장은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하니까, 서로 불편함이 있더라도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분들의 가족은 탈시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냐?”는 최현숙 구술생애작가의 질문에 이선희 팀장은 “한 분은 가족을 찾긴 했지만, 시설에 있던 당시 9명 모두 무연고자였다”고 답했다. 그러자 최현숙 작가는 “가족이 없어서 탈시설이 가능했던 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가족이 문제에요. 노인돌봄도 가족이 문제거든요. 요양시설에서 노인돌봄 하면서 노인 분들에게 ‘뭐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밖으로 놀러 나가다가 죽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해요. 스쿠터 같은 거 타고 돌아다니다가 죽고 싶다고. 근데 그렇게 못하는 거죠.”
가족이 탈시설을 원하지 않아서, 가족이 시설에 머물길 원해서. 희망원 시민마을 폐쇄 후에도 가족이 있는 장애인들은 탈시설을 선택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지만, 오히려 무연고자여서 탈시설-자립이 가능했다는 거다.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해방을 맞이했다는 게 아이러니 하지 않냐”고 물음을 던진 홍은전 구술기록활동가는 “‘의사소통 무능력자’라는 말의 무시무시함”에 대해서도 이렇게 꼬집었다.
“소통이라는 건 쌍방이 하는 거잖아요. 근데 의사소통 무능력자라고 분류해 버리는 건 한 사람한테만 책임이 있다고 뒤짚어 씌우는 거죠. 물어볼 능력이 있다는 걸 숨기고선 오히려 대답할 수 없는 능력으로 덮어버리는 거예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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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기자
기사 원문 : http://www.ildaro.com/8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