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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등한 놀이터를 위해무장애 통합놀이터, 놀이를 다시 상상하다
등록일 2020.10.28 22:21l최종 업데이트 2020.11.03 15:34l 홍서현 기자(seohyeon0930@snu.ac.kr)

 

  놀이터, 누군가에게는 그저 재밌는 모험의 세계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별을 상기시키는 상처다. 놀이터의 계단과 그네, 시소는 끊임없이 장애아동의 몸을 밀어내며 배제해왔다. 모든 아이를 포용하는 놀이터, 다 함께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가 필요하다.

 
사진1.JPG

 

무장애 통합놀이터의 새로운 상상
 
  우리나라 놀이터는 어딜 가나 비슷하게 생겼다. 계단과 미끄럼틀을 연결하는 커다란 조합놀이대는 필수다. 그 옆에 그네와 시소만 있으면 놀이터의 기본은 대강 갖춰진다. 놀이기구의 종류뿐만 아니라 크기와 생김새도 비슷하다. 어느 놀이터든 그네 안장은 작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은색 일자형 미끄럼틀이나 원통형 미끄럼틀, 앉아서 타는 시소도 마찬가지다.
 
  놀이터는 어디든 똑같지만 아이들의 몸은 모두 다르다. 휠체어를 타는 아이, 목발 등 보조기구를 사용해야 하는 아이, 뇌병변장애로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려워하는 아이,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를 지닌 아이. 정형화된 놀이기구는 아이들의 신체적 다양성을 포괄하지 못한다. 조경작업소 울 김연금 소장은 “놀이기구를 다양화해 아이들이 자신의 신체적 특성에 맞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장애 통합놀이터(통합놀이터)에는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아이들이 각자의 특성에 맞게 놀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놀이기구가 있다. 가령 서울 마들체육공원의 초록숲 놀이터에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고무바닥과 경사로가 설치돼있다. 경사로에 연결된 미끄럼틀은 폭이 넓어 아이와 보호자가 같이 탈 수 있다. 놀이터 바닥에 평평하게 깔린 트램펄린에는 턱이 없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다. 몸을 가누기 힘든 아이도 트램펄린에 누워 다른 아이들이 뛰는 반동을 느낄 수 있다. 회전무대도 바닥과 붙어있어 휠체어와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다. 회전무대 맞은편의 바구니 그네는 아이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다. 안장이 바구니처럼 넓고 오목해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여러 명이 그네를 같이 탈 수 있다. 누워서 타는 시소도 몸의 지탱이 필요한 아이가 놀기에 좋다.
 
사진2.JPG

▲초록숲 놀이터의 바구니 그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경계를 허물면 장애부모도 놀이터에 들어올 수 있다. 기존 놀이터는 휠체어의 접근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닥이 고무 재질이 아니라 모래인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휠체어를 타는 부모는 자녀가 노는 걸 바깥에서 지켜만 봐야 하고, 위험이 발생하면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 통합놀이터는 장애부모가 자녀의 놀이공간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필순 사무국장은 “통합놀이터는 장애인 양육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통합놀이터는 장애아동 전용 놀이터와 다르다.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 모두 놀 수 있는 ‘통합’놀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통합은 아동의 놀이 장벽을 없애면서도 모험심과 흥미를 자극할 때 이뤄질 수 있다. ‘통합놀이터 만들기 네트워크’는 무장애 통합놀이터 매뉴얼을 통해 놀이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재미, 호기심, 모험심’이라며 ‘어른이 봐도 재밌는 놀이터가 통합놀이터가 추구하는 목표’라고 설명했다.
 
  장애아동의 접근성이 높으면서도 재밌는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 처음부터 수월한 건 아니었다. 2000년대 후반 무장애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서울숲 ‘상상 거인의 나라’와 국회 어린이집 ‘애벌레의 꿈’ 모두 ‘재미’를 잡진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장애 통합놀이터 매뉴얼은 두 놀이터가 ‘비장애어린이의 흥미를 끌기엔 시설이 지나치게 단순(거인의 나라)’하며 ‘일반 놀이터에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그네 등 몇 개의 시설을 추가한 수준(애벌레의 꿈)’이라고 한계를 지적했다. 
 
  두 놀이터의 사례를 밑거름으로 2016년 서울어린이대공원에 꿈틀꿈틀 놀이터가 지어졌고, 이후 통합놀이터가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통합놀이터는 스무 곳가량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국의 놀이터가 총 7만 6천여 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지만, 각 지자체에서 통합놀이터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올해 4월 광주광역시 시민권익위원회는 놀이터를 새로 조성하거나 개보수를 할 때 통합놀이기구를 1종 이상 설치하고, 중장기적으로 광주의 대표적 통합놀이터를 조성하라는 등의 정책 권고를 내렸다. 이에 따라 광주시는 올해 추진하는 어린이공원 개선 사업에 권고사항을 반영하고 통합놀이터 조성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장애어린이도 어린이입니다
 
  장애아동이 이용할 수 있는 놀이기구가 여럿 마련되는 와중에도 유독 한 가지 기구는 설치되지 못하고 있다. 바로 휠체어 그네다. 휠체어 그네는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로 이용할 수 있고, 폭이 넓어 아이와 어른이 함께 탈 수 있다. 휠체어 그네는 모두가 폭넓게 이용할 수 있는 기구지만 놀이기구 안전인증 기준이 없어 놀이터에 설치되지 못한다. 놀이기구는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에 따른 안전인증을 받아야 놀이터에 설치될 수 있는데, 휠체어 그네는 안전인증 기준에 관련 항목조차 없다.
 
  안전인증 기준의 공백으로 휠체어 그네는 놀이터 옆에 설치되고 있다. 놀이터와 공간을 분리한 곳에 그네를 배치해 법적 문제를 피하는 방법이다.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 있는 휠체어 그네도 바로 옆의 놀이터와 울타리로 분리돼있다. 울타리에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휠체어 외 사용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붙어있고 입구는 빨간 줄로 막혀있다.
 
사진3.JPG

 

  놀이터와 휠체어 그네를 구분하는 조치는 또 다른 분리를 낳는다. 장애아동도 탈 수 있게 만든 기구가 장애아동만 탈 수 있는 기구가 돼버리는 문제다. 김필순 사무국장은 휠체어 그네가 ‘휠체어 전용그네’가 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원래 휠체어 그네는 장애와 상관없이 아동과 어른 모두 탈 수 있는 그네다. 지금은 휠체어를 타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그네가 됐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계속 분리되는 것이다.” 놀이터와 따로 떨어진 휠체어 그네에서는 모두가 같이 어울려 노는 통합놀이가 이뤄질 수 없다.
 
  휠체어 그네가 안전사고에 대한 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그네의 경우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그네에 부딪혀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잦다. 일반적으로 놀이터의 기구들은 모두 안전 검사를 거쳐 설치되므로 보험 가입에 문제가 없지만, 안전인증 기준이 없는 휠체어 그네는 보험 적용 대상이 되지 못한다. 안전사고의 부담이 크니 사업자는 쉽사리 휠체어 그네를 설치하기 어렵다.
 
  휠체어 그네를 안전인증 기준에 추가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안전인증 기준이 없는 새로운 놀이기구가 생기면 휠체어 그네와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김연금 소장은 “지금은 휠체어 그네의 문제만 발견됐지만, 다양한 놀이기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기준에 일일이 놀이기구를 추가하는 방법은 매우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진짜 문제는 장애아동의 놀이가 고려되지 않는 현행법에 있다. 김연금 소장은 “장애아동이 놀이터에서 논다는 전제 없이 안전인증 기준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어린이놀이기구 안전인증 기준에 관련 내용이 없어서 장애아동이 이용할 수 있는 놀이기구를 들여놓을 수 없다는 말은, ‘어린이’의 범주에 장애아동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마포장애인부모연대회원 A씨는 “놀이터는 신나는 곳이지만 (장애아동) 혼자서 가기엔 위험한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비장애아동의 필요에 맞게 만들어진 놀이터에서 장애아동이 안전하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놀이터에서 장애인이 배제돼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8년 ‘통합놀이터 법개정 추진단’이 결성됐다. 지난해 국회 정책토론회가 열린 데 이어 올해 8월 21일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개정안엔 ▲‘어린이’를 ‘장애 및 비장애 어린이’로 규정 ▲국가 등에 장애어린이가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놀이 환경을 조성할 책무 부여 ▲장애어린이의 이용에 적합한 어린이놀이기구 시설기준 마련 등의 내용이 담겼다.
 
놀 권리, 당연해야 하는 권리
 
  개정안이 발의된 배경에는 장애아동의 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는 아동이 나이에 맞는 놀이에 참여하며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다. 또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7조는 장애아동이 다른 아동과 동등하게 모든 인권을 향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모든 아동은 장애 유무와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놀 권리를 완전히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장애아동은 놀이를 어떻게 경험할까. 자폐 증세를 동반한 지적장애 자녀를 둔 마포장애인부모연대 정미경 지회장은 아이가 어릴 때 매일 놀이터에 나가 놀면서도 주변의 시선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정 지회장은 “아이가 가끔 박수를 치거나 소리를 지르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더라. 그러면 더 놀고 싶어도 못 놀고 그냥 나오게 된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통합놀이터에서는 주변의 시선으로 인한 차별이 그나마 적다. 이곳이 무장애 놀이터라는 설명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정미경 지회장은 “통합놀이터라는 팻말이 붙어있으면 ‘나도 여길 이용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눈치를 덜 보게 된다”고 말했다. 신체적 어려움 때문에 통합놀이터에서만 놀 수 있는 지체장애 아동도 많다. A씨는 “함께 통합놀이터를 방문했던 아이들이 장애 때문에 놀이터를 많이 이용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사진4.JPG

▲서울어린이대공원 꿈틀꿈틀 놀이터에 긴 경사로가 설치돼있다.

 

  지금껏 장애아동의 놀 권리는 사회적으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김필순 사무국장은 “사회가 장애에 관심이 없으니 장애아동에도 관심이 없고, 장애아동의 놀 권리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장애인 인권단체 내에서도 놀 권리는 비교적 새롭게 등장한 단어다. 장애인연금이나 활동보조 서비스 등 생존과 직결된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김 사무국장은 조금씩 놀 권리가 공론화된다는 점에서 희망을 본다. 그는 “장애아동의 놀 권리를 얘기하는 건 장애인의 삶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통합놀이에서 통합사회로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개별 지방자치단체에 통합놀이터 조성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법 개정은 통합놀이터의 확산을 꾀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김필순 사무국장은 먼저 학교와 공공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부터 통합놀이터로 바꿔나갈 것을 제안한다. 공공이 바꿀 수 있는 놀이터부터 시작하자는 뜻이다.
 
  학교와 아파트 내에 통합놀이터가 생긴다는 건 놀이터가 그만큼 장애인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다는 의미다. 현재 통합놀이터가 몇 군데 없는 탓에 장애아동은 직접 놀이터에 찾아가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학교나 집 근처 놀이터가 통합놀이터로 탈바꿈한다면 멀리 갈 필요 없이 그저 일상에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바로 그 순간 통합놀이터가 ‘일반’ 놀이터가 되는 개념의 전환이 일어난다. 통합놀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사라질 때 비로소 통합놀이가 온전히 실현되는 역설이다.
 
  함께 어울려 놀 때 아이들은 비로소 서로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존중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놀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통합이 이뤄진다. 아이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정미경 지회장은 말한다. 아이들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일 수 있다. 김필순 사무국장은 더 큰 그림을 그린다. 그는 통합놀이를 통해 통합교육과 통합사회를 바라본다. 놀이터와 학교, 지역사회에 더 많은 장애인이 나오는 것, 그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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