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7월 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서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2022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청와대
2017년 3월 22일,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하던 그 순간 우리가 바란 미래가 성큼 다가온 듯했다. 대통령 당선 이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의 광화문 농성장을 찾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앞으로 한국 사회 복지가 지향해야 하는 바이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도달하고자 하며,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023, 아래 2차 종합계획)’에 완전 폐지 계획을 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 2차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계획 반영을 약속했다. 이 두 가지 약속에 대한 신뢰의 표현으로 우리는 1842일간 유지해 온 광화문 농성장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이 글은 그 3년에 관한 것이다.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을 찾아 3대 적폐 폐지를 약속하고 함께 웃고 있다.
약속 이행을 요구해 온 지난한 날들
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방안 마련을 위한) 민관협의체
약속을 받아냈다고 곧장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대통령의 약속은 생계급여까지였다’는 박능후 장관의 말이 공분을 샀지만, 말장난 같은 줄다리기는 합의 직후부터 있었다.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는 첫 회의부터 보건복지부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민관협의체 이름에 명시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부양의무자기준 개선이나 완화 등 다른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방안 마련을 위한’ 민관협의체」로 이름을 합의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 이후에도 복지부는 민관협의체에는 법적 권한이 없으므로, 이곳에서 논의나 조율,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단계적 폐지’의 핵심은 ‘단계’에 있지 ‘폐지’에 있지 않다거나, ‘일부폐지도 완전폐지의 한 종류’라는 등 비상식적인 말도 지속됐다. 대통령의 공약, 장관의 약속은 무엇이었나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속적으로 민관협의체 개최를 요구하고 의견서를 전달하고, 우려와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등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한 걸음이라도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민관협의체에 참여하는 위원 일부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와 총괄생계소위원회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회의가 더 소홀히 개최되었다. 개최 요구에도 불구하고 회의는 각 해 단 한 차례씩만 열렸다. 민관협의체를 구성한 것은 성과이되, 농성 종료 이후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힘은 결국 폐지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조직된 힘에 있었다.
② 가난한 이들의 죽음과 2019년 청와대 앞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농성
2017년 국민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관련 공약 과제로 2018년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장애인과 노인 등 일부 인구적 특성에 속하는 부양의무자에게 부양의무자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2017년 발표된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도 이와 대동소이한 내용이 담겼다.
2018년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앞두고 민관협의체에서 가장 주요하게 논의한 내용 중 하나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과정에서 제도의 후퇴를 야기하지 않는 것, 조건 없는 폐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완전하게 시작하지 않았지만 당시에 했던 제기들로 별도가구 특례자들에 대한 주거급여 지급을 확보했고, 내년부터 수급가구의 따로 사는 20대 청년 가구는 분리된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18년 10월,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된 후 남은 것은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이었다.
2019년에는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 연일 뉴스를 채웠다. 관악구에서 한 씨 모자가 사망한 지 두 달 만에 발견되었고, 강서구에서는 부양의무자에 의한 가족 살해와 부양의무자의 자살이, 인천에서는 일가족과 친구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빈곤에 빠졌을 때 국가보다 가족을 먼저 찾으라는 사회 앞에서 서로 나눌 것 없는 가족들은 함께 죽음을 택하거나 서로를 살해했다. 2019년 9월,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복지 위기가구 발굴대책 보완조치’를 내놓으며 엉뚱하게도 “‘제2차 종합계획에 생계급여에서 단계적 폐지 계획을 담을 것이라고 발표”하겠다는 후퇴한 계획을 발표했다. 2019년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 청와대 앞에서 우리는 다시 농성에 돌입했다. 큰 성과 없이 12월 19일 두 달간의 농성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 있는 가족 동상에 검은 천을 씌우고, 근조리본을 다는 것으로 부양의무자기준과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국가에 항의했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복지제도의 시효가 만료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부양의무자기준을 붙들고 있는 관료들뿐이다.
③ 2020년, 공약 이행 실패 선언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기의 침체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기간을 다시 앞당겼다. 문재인 정부는 7월 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서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2022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고소득, 고재산 이유로 ‘연 소득 1억 원, 재산 9억 원 이상’을 가진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기 때문에 엄격히 볼 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라고 볼 수 없지만 그간의 더딤에 비하면 확실히 진전한 계획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2020년 중생보위에서 2차 종합계획안을 의결하는 문제였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아니더라도 의료급여 개선은 더뎠다. 2020년부터 적용된 기본재산액 인상이나 부양의무자 간주부양비 완화 적용을 회피하는 등 의료급여에서만큼은 제도개선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복지부의 의지가 보일 지경이었다. 2차 종합계획안 내에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내용은 1차 때 이미 예고한 대로 ‘2022년까지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이 속한 부양의무자 가구에 한해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한다’는 것에 그쳤다. 우리는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등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다’는 단 한 문장이라도 2차 계획안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청원을 거듭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생보위 위원들의 주장으로 회의 결과에 부대의견을 남기는 것으로 회의는 종료했다.
회의 종료 후 이어진 기자브리핑에서 박능후 장관은 “대통령이 언급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생계급여까지였다”는 공약의 재해석까지 내놓았다. 박능후 장관의 이런 발언은 사실이 아니거니와, 1842일 농성을 마무리하며 맺었던 약속과 상반되는 결과임과 동시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라는 복지 패러다임 전환의 이정표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계획을 수립한다는 언급조차 넣을 수 없다는 보건복지부의 완강한 입장에는 빈곤문제에 대한 의아한 시각이 포착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유로 ①건강보험이 있기 때문에 다른 급여와 달리 의료급여는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②의료급여가 아니더라도 차상위의료급여, 본인부담 경감제도 등 다양한 복지제도가 있다는 점을 든다.
10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의 주최로 6명의 장애인들이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삭발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추경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대의원이 삭발을 하고 머리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라고 적힌 띠를 두르고 있다. 사진 이가연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쟁점
먼저 건강보험이 있기 때문에 의료급여는 다른 급여와 달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견줄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의료급여의 존재 근거 자체를 무너뜨린다. 만약 전국민 건강보험이 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의 건강한 삶을 보장한다면 애초에 의료급여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의료급여와 전국민 건강보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100만 명이 넘는 저소득 장기체납가구와 경제격차에 따른 의료 접근성 차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역시 모르지 않는다.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는 본인의 소득과 재산이 빈곤함에도 공공부조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고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송파 세 모녀는 지역 가입자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했지만 만성질환을 앓는 두 딸의 최근 의료기록은 없었다. 건강보험 유무나 질병 상태와 관계없이 돈이 없어서 병원의 문턱이 한없이 높은 빈곤층 입장에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다.
두 번째로 정부가 다른 대안으로 제시하는 차상위 의료급여, 본인부담 경감제도는 모든 의료급여, 건강보험 사각지대를 포괄하지 못한다. 차상위 의료급여는 부양의무자기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만성질환을 갖고 있거나 아동·청소년 등 특수한 집단에게만 적용된다. 복잡한 절차와 신청에 의해서만 신청할 수 있다. 본인부담 경감제도 역시 희귀난치질환, 만성질환, 아동·청소년으로 대상을 한정하고, 복잡한 신청 절차를 갖고 있다. 정부가 자랑하는 문재인케어의 본인부담상한제는 81만 원을 저소득층 하한선으로 두고 있어 80만 원을 하한선으로 두는 2종 의료급여와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도 충분하지 않다. 본인부담 상한제는 일단 80만 원 이상의 의료비 지출을 할 이유와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어떤 병에 걸릴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가? 질병의 치료수단이 비급여인지, 급여인지 선택할 수 있는가? 단순한 질병이나 의심증상, 노환으로 인한 다양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병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80만 원이 아니라 1만 원, 혹은 1천 원 때문이라는 사실을 정책 결정자들은 완전히 망각한듯하다. 아니면 1천 원조차 귀한 가난한 삶이라 하더라도 건강과 생명의 존엄성이 남들보다 덜하지 않다는 시민권의 기본원칙을 잊은 것은 아닌가.
우리가 이뤄낸 빛나는 변화, 앞으로 바꿔 갈 세상의 일상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목표는 단순하다. ‘1촌 내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의 소득이나 재산의 증명 없이 자신의 가난한 상황만으로도 공공부조 급여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겪게 되는 다양한 고통 중에서도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기본적 권리는 가족의 유무나 그들의 소득, 재산과 관계없이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의미이자 기초생활보장제도 제정의 의미이다.
더불어 부양의무자기준이 가난한 이들에게만 강요된 차별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 낯선 타인에게 자신의 가족관계를 설명하기를 강요받거나, 이들의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 본인의 권리를 침해당해선 안 된다. 유엔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위원회는 2011년 ‘빈곤의 형벌화 조치’에 대한 보고서를 채택하고, 공적부조에 접근하는데 과도한 프라이버시의 침해를 가하는 것 역시 형벌화조치의 일부라고 분류했다. 유독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복지제도를 작동시키는데 가장 보수적인 가족원리를 주문하는 것은 합당하지도 않거니와, 실패한 가족관계를 해명해야 하거나 위태로운 가족관계 안에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구체적인 차별이었다. 부양의무자기준이 가난한 이들에게 벌어진 차별이었다는 인식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중요한 근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족상황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며, 가족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며 지난 7월 23일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다시 한 번 농성에 돌입했다. 7일,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는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사진 강혜민
1842일의 농성, 대통령의 약속, 그리고 3년이 흘렀다. 공약 파기 규탄으로 우리의 싸움을 일단락했지만 이 시간은 단지 패배의 시간이 아니었다. 우리는 부양의무자기준을 일부 폐지해냈다.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했고, 생계급여에서도 큰 진전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필요성을 세상에 납득시켰다. 이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필요성과 방향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를 통해 주거급여 수급자가 51만 명 늘었다. 앞으로 생계급여 수급자도 늘어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룩해낸 빛나는 성과다.
지난해 인천에서 사망한 일가족은 이혼한 전 남편(아빠)이 부양의무자이기 때문에 주거급여만을 신청하고,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신청을 포기했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빈곤층의 죽음과 고통 앞에 우리의 성과를 자찬할 수 없다. 여전히 부양의무자기준때문에 시설이나 요양병원에 고립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슬픔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러나 텅 빈 슬픔으로 우리의 힘을 꺾지는 말자. 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분노도 여기까지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만들어 온 힘은 가난한 이들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우리의 선언과 투쟁이었다. 앞으로의 새로운 싸움을 기획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제안한다.
“투쟁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지만, 우리의 승리는 세상의 일상을 바꿀 것입니다”
- 1842일의 광화문농성 해단의 글 중
1842일의 싸움, 그리고 지난했던 3년의 시간. 빛나는 변화를 딛고 앞으로 나아갈 때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와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일상이 더 자유롭고 평등해지는 날까지 단결하기를 멈추지 말자.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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