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32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01년 8월23일 저녁 나는 노들장애인야학의 문을 두드렸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때였고, 경쟁으로 인해 매우 황폐해진 상태였다. 장애인의 ‘장’자도 몰랐지만 왠지 거기에 가면 좋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스무살 남짓한 남자 교사가 나를 맞이했다. 야학에 대한 설명을 마친 그는 며칠 뒤에 집회가 있으니 나오라고 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했지만 짐짓 태연한 척 물었다. “구호가 뭔가요?” “버스를 타자 입니다.” 나는 풉, 하고 웃었다. 뭔가에 대한 패러디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전혀 웃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챘다. 자세를 고쳐 앉아 물었다. “버스를 왜 타죠?” “장애인은 탈 수 없으니까요.” 나는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그럼… 지하철 타면 되잖아요.” 그는 가르쳐야 할 게 아주 많은 사람이 들어왔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구호를 들은 날이었다. 허공에 붕 뜬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누군가는 탈 수 없다는 그 버스를 타고서였다. 집회엔 가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이상한 학교에 계속 갈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며칠 후 그날의 집회를 영상으로 보았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백명도 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쇠사슬로 서로의 몸과 휠체어를 묶어 8-1번 버스를 에워싸고 있었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이동권을 보장하라!” 그들이 바깥에서 외치는 동안 버스 안에서는 휠체어를 탄 한 남자가 자신의 손목과 버스의 운전대에 수갑을 채우고선 버스가 움직일 수 없도록 막고 있었다. 기어이 버스를 함께 타겠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을 수백 명의 비장애인 경찰들이 체포하기 시작했다.

 

충격적이었고 몹시 가슴이 뛰었다. 그 순간 내가 장애인에 대해 가졌던 어떤 관념들이 와장창 깨지는 것을 느꼈다. 며칠 후 야학에 갔다가 영상 속에서 수갑을 차고 시위하던 그 장애인을 만났다. “노들야학 교장 박경석입니다.” 그의 두툼한 손이 내 손을 잡던 순간, 내 안에서 또 뭔가가 무너졌다. 휠체어를 탄 교장이라니, 불법 시위를 주도하는 교장이라니. 세계에 대한 이해가 급격히 바뀌는 나날이었다. 나는 바다를 한 번도 못 봤다는 사람, 언니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신입 교사 교육을 받았다. 그때 내 손엔 장애인의 이동권 실태를 알려주는 자료집이 들려 있었지만, 정말로 나를 가르친 건 팔할이 우리가 동그랗게 둘러앉은 그 관계였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해 겨울 임용시험이 있던 날, 시험장이 아니라 야학으로 갔다. 나는 그렇게 아무도 이기지 않은 채로 교사가 되었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건 장애인의 열악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들 옆에 서자 세계가 온통 문제투성이로 보여서 나는 정말로 충격받았다. 내가 타고 온 버스도, 지하철도, 내가 다닌 학교도 모두 문제였다. 나는 마치 중력이 다른 행성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말하자면 그건 경쟁하는 세계에서 연대하는 세계로, 적응하는 세계에서 저항하는 세계로, 냉소나 냉담보다는 희망을 더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공동체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중에 가장 좋은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중력이 다른 세계에선 다른 근육과 다른 감각을 쓰면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 노들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다르게’ 관계 맺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말했다. 차별이 사라져서 노들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 말에 힘껏 저항하고 싶었다. 노들과 같은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이 좋은 사회라고 말할 때, 노들은 그저 차별받은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러나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 같은 구호는 수십년간 집 안에 갇혀 살아온 사람이 외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버스란 그저 해가 뜨고 달이 지는 풍경의 일부일 뿐 자신이 탈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저항하는 인간들이 ‘발명’해낸 말이다. 그 저항이란 해와 달의 질서에 맞서는 일처럼 아득한 것이지만 그 어려운 일을 기어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의 마지막에 누군가 살아남아야 한다면 바로 그들이 아닌가.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건 좋은 사회의 증거가 아니라 그 사회의 수명이 다했다는 징조인 것이다.

 

 

홍은전 ㅣ 작가·인권기록활동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8414.html#csidx3ada4dd694eccf084f57e46bbeea580 onebyone.gif?action_id=3ada4dd694eccf084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 [KBS 뉴스] “장애아동은 어디서 노나요?”…놀이터에 못 매다는 ‘휠체어 그네’ 노들센터 2019.09.17 360
33 [한겨레]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노들센터 2019.12.02 351
32 [경향신문]_[법률 프리즘]감염병 비상, 장애인을 위한 매뉴얼은 없다 노들센터 2020.02.07 250
31 [전장연] 기쁜 소식을 알립니다. 노들센터 2020.02.28 242
30 [서울신문-기고] 코로나19와 장애인 / 김필순 사무국장 노들센터 2020.03.05 248
29 [경향신문] [NGO발언대]‘2m 거리’ 둘 수 없는 사람 노들센터 2020.03.10 252
28 [비마이너]중증장애인에게 코로나19 감염보다 더 두려운 것 노들센터 2020.03.10 226
27 [한겨레]“절대 차별한 적 없다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차별 행동” 노들센터 2020.03.11 551
26 [한겨레] “정치인이 ‘소수자 인권’ 발언 용기내면 변화 공간 생긴다” 노들센터 2020.03.18 243
25 [비마이너]"우리는 한 명 걸리면 다 죽어" 코로나19 속 쪽방 주민들 노들센터 2020.03.18 258
24 [비마이너]코로나19로 시작된 대학 온라인 강의, 학습권 침해받는 ‘농학생들’ 노들센터 2020.03.23 261
23 [한겨레] “정신장애인 낙인, 사회적 관계 맺을수록 줄어들어” 노들센터 2020.03.26 463
22 [뉴스풀]코호트 격리를 겪으며 노들센터 2020.03.27 320
21 [노동과 세계]“코로나19 위기, ‘기업부도’ 막겠다가 아닌 ‘고용보장’이 우선” 노들센터 2020.04.01 306
20 [인권운동사랑방] 코로나19와 애도의 부재 노들센터 2020.04.09 306
19 [kbs]“피 흘린 채 밥 먹었다”…형제복지원의 참상 노들센터 2020.04.28 316
18 [비마이너]서울 중랑구 특수학교, 2024년에 개교 노들센터 2020.04.30 343
17 [서울신문] 코로나19 K-방역 훌륭하다는데···장애인 위한 가이드라인은 왜 없나요 노들센터 2020.05.12 555
16 [일다]“나 어떡해” 발달장애인의 험난한 자립 도전을 함께하는 이들 노들센터 2020.06.04 397
» [한겨레][세상읽기] 차별이 저항이 되기까지 노들센터 2020.06.10 32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Nex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