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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가장 먼저 시설의 문을 두드렸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시설 수용의 민낯
 
등록일 [ 2020년05월06일 16시13분 ]
 
 

1588749206_54592.jpg코로나19 사망자를 애도하는 얼굴 없는 영정사진 11개가 국가인권위원회 계단에 놓여있다. 그 앞에는 국화꽃 한 송이씩 놓여있다. 사진 박승원
 

2019년 12월, 아시아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는 불과 5개월 만에 전 세계를 장악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국경에 상관없이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이러스는 차별 없이 우리를 공격했지만,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차별적이었다. 

 

장애인은 코로나19에 취약한 집단 중 하나이다. 많은 국가에서 내놓은 코로나19 대응방안은 장애인의 삶과 건강에 대한 고려가 누락되었다. 대인서비스가 삶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적 요건인 장애인들은 자가격리와 물리적 거리두기의 시대에 비장애인보다 더 큰 피해를 겪어야 했다. 한정된 의료적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는 장애인의 생명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인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세계 각국에서, 장애인은 종종 치료 후순위로 밀려났다. 각국에서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내놓은 긴급조치와 예방조치, 코로나19에 관한 정보는 장애인이 접근가능한 형태로 제공되지 않았다. 길어진 격리조치는 여성, 특히 장애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증가로 이어졌다. 각국에서 시행하는 원격교육시스템은 장애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기에 불충분했다. 장애인에게 편중된 피해 사례들을 목도하며, 전 세계 장애계는 장애포괄적 재난대응 시스템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우리가 차별을 인지하는 현장에서도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잊혀진 사람들; 바로 시설 거주 장애인이다. 공간 과밀 및 개인공간 부재는 물론, 개인별 건강 관리나 위생 수칙 준수가 극히 어려운 인력 구조, 집단 활동 중심의 프로그램, 획일적 통제 등, 시설 형태는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슬프게도  북미, 유럽, 아시아 등 세계 전역의 거주시설, 그룹홈, 요양시설, 정신병원에서 발생한 수많은 실제 사례로 증명되었다. 

 

미국 뉴욕장애인권익옹호모임(New York Disability Advocates)의 조사에 따르면, 뉴욕시 및 인근 지역 내 그룹홈 및 이와 유사한 기관 거주자들은 전체 인구에 비해 코로나19에 감염될 확률은 5.34배, 감염으로 사망할 확률은 4.86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월 8일 기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요양원에서만 코로나19로 4,260명이 사망했고, 4월 7일 기준, 프랑스의 코로나19 사망자 1/3이 요양원에서 나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정신병원 내 병실에 한 병동에 20~30명가량이 수용되는 과밀화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점,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있는 점 등으로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대응에서 세계적으로 박수받고 있는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국제 표준 모델로도 거론되고 있을 만큼 빠르고 공격적이었지만, 시설거주 장애인을 위한 ‘드라이브 스루 검사’는 없었다. 시설 거주 장애인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부 대응에서 배제되었다. 마치 지역사회에서 떠밀려나 시설로 들어갔던 것처럼.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은 가장 먼저 시설의 문을 두드렸다. 한국의 첫 코로나19 사망자는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에서 나왔다. 20년간 장기입원 중이었던 그의 사망 당시 몸무게는 42kg. 사망자가 나고 나서야 한국 사회는 해당 정신병동 입원환자 102명 중 101명이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 이 중 7명이 사망했다. 청도대남병원의 코로나19 치사율은 7%, 한국 전체 치사율 2.27%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한국정부는 시설거주 장애인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았으나, 이는 ‘예방적 코호트격리’, 즉 무책임한 집단격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카탈리나 데반다스 유엔 장애인권리 특별조사위원(UN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atalina Devandas)이 우려했듯, 시설 외부와 접촉이 제한된다면 “장애인은 시설 내에서 이뤄지는 학대나 방임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것”이다. (“Limiting their contact with loved ones leaves people with disabilities totally unprotected from any form of abuse or neglect in institutions.”)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와 고민을 던졌다. 이 문제를 간과한다면, 인류는 앞으로 도래할 수많은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 또다시 빠지고 말 것이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이 사회의 많은 문제 중 하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격리의 시대, 우리는 역설적으로 사회적 연결의 소중함을 깊이 각인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사회적 격리가 왜 비장애인에게는 비상적 상황에서, 아주 제한적으로 요구되는 반면, 장애인에게는 평생에 거쳐 당연한 것으로 강요되어야 하는지. 돌봄과 복지의 외피를 쓴 강요된 사회적 격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우리는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2020년 4월 현재 전 세계 181개국이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는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장애인이 이러한 권리를 완전히 향유하고 지역사회로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위해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정부에 있음을 명시했다. 

 

국제사회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그저 듣기 좋은 말을 남기기 위해 만들고, 또 비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이제는 각국 정부가 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걸음을 떼야 할 때이다. 우리는 2030년까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이 선언이 공허한 울림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시설의 벽을 부숴야 한다. ‘정상의 범주’를 가르고 구분 짓는 사회를 구축해온 오랜 역사를 끝낼 중대한 기로 앞에 우리는 서 있다. 

 

한국장애포럼은 한국 정부를 포함한 모든 정부에 탈시설 정책 이행을 촉구한다. 우리는 많은 국내외 동료들과의 소통을 통해 거주시설 문제가 마치 코로나19처럼, 국경을 불문하고 같은 양상으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와 구분된 시설 담장 안에서 학대당하고, 방치되고, 강제노동을 하고, 죽어 나갔다. 아주 오랫동안, 장애인은 사회에 진정으로 소속되지 못했고,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 오랜 격리와 배제의 역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시설을 폐쇄하고, 주거, 소득, 활동지원, 이동지원 등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완전히 통합되어 사회 구성원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배제와 폭력이 아닌, 통합과 존엄을 향한 중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제는 시대착오적 관행을 끝내고 말 아닌 실천으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갈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한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간사 beminor@beminor.com

기사원문 :  https://beminor.com/detail.php?number=14637&thread=04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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