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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린 채 밥 먹었다”…형제복지원의 참상

입력 2020.04.27 (15:54)

 

 

“피 흘린 채 밥 먹었다”…형제복지원의 참상
"제식훈련 때 한 사람이라도 틀리면 밥을 늦게 먹고 몽둥이로 맞곤 했는데, 맞다가 죽은 사람도 직접 목격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 형제복지원에 들어간 피해자가 면접자에게 털어놓은 말입니다.

이 피해자는 "어떤 아저씨들은 맞아서 머리에 피가 흐르는 채로 밥을 먹기도 했다"며 학대를 생생하게 기억하며 절규했습니다.

군사 정권 시절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건으로 꼽히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1975년부터 12년 동안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확인된 것만 5백 명이 넘지만, 아직도 사인과 시신의 행방 등은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형제복지원 실태 첫 공식조사…"맞아서 죽거나 성폭행도 당해"

30년 넘게 어둠에 묻혀있던 형제복지원의 실상은 부산시가 동아대학교 연구팀에 맡긴 용역 조사결과에서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한 용역에서 연구팀은 형제복지원에 수용돼 생활한 경험이 있는 피해자 14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고, 이들 중 21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도 벌였습니다.

전문가 6명이 벌인 심층 인터뷰에서 피해자들은 형제복지원 수용 경위와 생활, 퇴소 이후의 삶까지 구체적으로 증언했습니다.

부산진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다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는 피해자는 끔찍한 기억을 털어놨습니다.

"여자들에게 브래지어를 지급하지 않았고, 생리대도 지급하지 않고 천만 4개씩 줬다"면서 "허벅지가 터지도록 매 맞고 정신병동에서 몇 개월 일했는데, 거기서 강간당하는 사람들과 낙태 수술도 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형제복지원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탈출해 아이까지 출산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는 입양됐다고 전했습니다.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형제복지원에서 탈출하기 위해 신임을 얻어 복지원 소대장이 됐다는 면접 참여자는 "자신의 손으로 생매장했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당시 글을 쓸 수 있었다면 기억이 선명했을 때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일들, 억울하게 생매장당한 사람들의 위치 등을 적어서 남겨놓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자신이 한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끔찍한 기억에 겨우 버텨"…형제복지원 피해는 현재 진행형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끔찍했던 학대의 충격으로 현재의 삶을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한 피해자는 "지금도 누가 뒤에서 덮칠까 봐 방문을 바라보며 잔다"며 "문을 닫으면 누군가 문 앞을 지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면접 참여자는 자신을 "불량품의 삶"이라고 표현하며 "내가 깨져버렸다"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후유증은 연구 결과로도 확인됐습니다.

설문조사를 한 피해자 149명 중 51.7%가 1회 이상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고 밝혔고, 피해자의 32.9%는 장애가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설문에 참여한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이 내전을 경험한 아프리카 북부 우간다의 지역사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부산시 차원에서 진행한 첫 공식 조사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국가 책임을 묻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계도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2년 넘게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인데도,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과거사법 통과는 요원합니다.

연구팀은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 온전한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손해배상이 필요하다"며 "피해자들의 치료와 심리 상담 등을 지원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황현규 기자true@kbs.co.kr

 

기사원문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3713&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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