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고속·시외버스 편의시설 재정지원, 법령 개정 등 주문
“현재 운행 중인 버스 개조로 휠체어 탑승 설비 장착 가능”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 지난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고속버스를 점거한 모습.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탑승 가능한 고속·시외버스가 없어 이들의 이동권이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휠체어 승강 설비 지원, 관계 법령 개정 등 국가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7일 결정문을 통해 국회의장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고속·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 설비 등 이동편의시설 설치 시, 재정을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는 고속·시외버스 이동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관계 법령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고속·시외버스 이용 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배제당하는 상황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한 국가적 의무를 저버린 사안이라며 지난해 9월 직권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지난해 10월 1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운행 중인 고속버스 1905대, 시외버스 7669대 중 휠체어 승강 설비 등 적정한 이동편의시설이 갖춰진 버스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버스운송사업자들은 경영난이 심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 없이는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버스를 도입·운영하는 건 어려우며, 대도시 외 지방도로는 과속방지턱 난립 등으로 저상버스 운행이 어렵다고 해명했다.
국토부는 고속 주행에 대한 안전성 확보 문제, 이에 적합한 교통수단 미개발과 더불어 재정 여건 등으로 시․군에서 저상버스 도입계획이 없기에 국가 역시 재정지원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러한 기술적 문제해결을 위한 시범사업 예산 16억 원이 지난해 국회에서 반영되지 않은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휠체어 이용자의 탑승을 위해 반드시 저상버스로 이를 한정할 필요가 없다며 반박했다. 인권위는 현재 운행 중인 고속·시외버스를 일부 개조하여 휠체어 탑승설비를 장착하고,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모두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경우, 버스 운전자 등 타인에게 업히거나 안겨서 버스에 탑승하게 될 때 계단을 오르는 과정에서 양쪽 모두 다칠 수 있는 점, 장애여성은 부득이한 신체 접촉으로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호주, 영국, 미국 등에서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고속·시외버스 접근성 강화를 위해 관계 법령에서 단계적으로 휠체어 탑승설비를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휠체어 승강 설비 등 이동편의시설 100%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참고 사례로 제시했다.
이에 인권위는 국가가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 「장애인복지법」 등에 규정된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관계 기관에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법적, 제도적 대책 마련을 권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는 지난해와 올해 초 고속버스터미널을 점거하며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촉구해온 바 있다. 더불어 장애인 등 교통약자 당사자들은 지난해 3월 시외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올해 4월, 법원의 화해 권고에 양측 모두 이의 신청을 제기하면서 소송은 장기화할 우려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