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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 준대도 안 돌아가" 시설을 나오니 희망이 보였다

서금순씨가 11월 25일 대구 중구의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시설 밖으로 나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노도현 기자

서금순씨가 11월 25일 대구 중구의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시설 밖으로 나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노도현 기자
2019.11.30 18:12 입력 2019.11.30 21: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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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보니까 모든 게 다 있잖아, 내 걸어댕길 때 그 모습하고 똑같은 거야.”

30년. 서금순씨(64)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지낸 시간이다. 33살이던 1988년 계단에서 떨어져 목뼈를 다쳤다. 반 년을 병원에서 지냈다. 부모는 계시지 않았고, 형제들은 자기 가정을 꾸리기에도 바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꼼짝없이 누워지내야 했다. 병원의 권유로 대구시립희망원에 들어갔다. 시설이 내 집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지난 7월 시설 밖으로 나왔다. ‘탈시설’을 원한 건 아니었다. 2016년 희망원 거주인들에 대한 인권유린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희망원 내 장애인 거주시설 ‘글라라의 집’은 ‘시민마을’로 이름을 바꿨고, 지난해 12월 31일 폐쇄 결정이 났다. 서씨는 그 무렵 처음 ‘자립’이라는 말을 들었다. 말이 자립이지 내쫓는 것 같았다.

서씨는 시민마을 폐쇄를 반대하는 데 앞장섰다. 뜻이 맞는 동료들과 대구시청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청 직원과도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청와대에도 탄원서를 넣었다. 이 야박한 세상에 누가 중증 장애인을 시설만큼 보살피겠나 싶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시설 밖의 삶이 전혀 딴 세상이라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이 좋은 걸 모르고 살았네

“우리 식구들이 ‘언니야, 나가보니 진짜 좋드라’ 이래도 그 사람들은 걸어댕기고 나는 누워서 생활하는 중증 장애인이야. 느그하고 나를 비교해선 안 된다. 희망원 직원들도 ‘이모야, 한번 나가봐라. 요즘은 전부 다 해주기 때문에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 나오는 것 자체가 엄청 무섭더라고. 끝까지 안 나온다고 버텼지요.”

함께 살던 식구들이 하나둘 떠나는 걸 지켜봤다. 어떤 이는 다른 시설로 가고, 어떤 이는 자립을 선택했다. 결국 큰 건물에 홀로 남았다. 단기 자립체험을 다녀온 뒤 마음을 바꿨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까무러치기로 나가보자. 어차피 갈 인생인데 나가서 살자고 마음먹었죠.” 시민마을 거주인 85명 중 34명이 자립의 길을 걷고 있다.

서씨는 대구 중구의 한 아파트에 산다.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운영하는 자립생활 체험홈이다.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 2명이 방을 하나씩 쓴다. 입주자들은 자립생활 프로그램(ILP)을 통해 금전관리 같은 일상생활 노하우를 익힌다. 서씨는 장애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24시간 활동지원을 받는다. 시설에 있을 땐 외출증을 끊어야만 밖에 나갈 수 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밤 9시면 자야 했다. 지금은 한밤중에 들어와도, 아침 11시까지 누워 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힘이 돼주시니까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이 없어요. 옛날 음식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활동지원사에게 ‘수제비 해묵읍시다’고 하면 해주시고, 콩나물 먹고 싶다고 하면 맛있게 무쳐주시고. 대명시장이나 서문시장에서 같이 장도 보고 얼마나 좋아요.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천금을 준대도 절대 안 가요.”

병원에 가면 종종 시설에 사는 동료들을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한번 나와보라’고 권유하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서씨는 “아직 용기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좋을 줄 누가 알았나. 알았으면 젊었을 때 벌써 튀어나왔죠. 이런 제도를 만들라 하면 진작에 폐쇄하고 일찍 끄집어내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노 싶어. 나와봐야 좋다는 걸 느끼지. 그저 눈으로 보고 말로 듣고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어릴 때부터 들어가 아무것도 모르고 숨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나. 그 사람들에게 이런 좋은 세상을 한번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라는 거지. 나보다 더 젊고 이쁠 적에 밖으로 나와가지고 이런 세상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나 같은 사람도 빵글빵글 웃으면서 이래 좋을 수가 없는데.”

하지만 서씨는 불안하다. 내년 3월 만 65세가 되면 장애인 지원에서 노인 장기요양보호 대상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활동지원 급여가 대폭 감소해 활동지원 시간도 줄어든다. 서씨에겐 요양원으로 들어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요새 65세에 가면 아가씨라. 나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시설 폐쇄시켜 나오라 했으면 우리를 살게 해줘야지. 나는 지금 아주 행복한데 이것도 잠깐인 것 같아서 걱정이라.” 서씨는 또 거리로 나간다고 했다. 65세가 지나도 지금처럼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조민정씨는 자립을 준비하는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조민정씨는 자립을 준비하는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우리 이제 떳떳하게 살아요

지적·뇌병변 장애를 가진 조민정씨(41)에겐 진짜 ‘내 집’이 생겼다. 지난해 7월 희망원에서 나온 뒤 체험홈을 거쳐 대구 달서구의 15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로 이사했다. 중학생 때 교통사고를 당한 뒤 희망원에서 14년가량 살았다. 조씨도 처음부터 탈시설을 원한 건 아니었다. 시설은 답답한 곳일 뿐이었지만, 시설 밖으로 나가면 해코지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립생활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직접 집 계약을 했다. 손수 방도 꾸몄다. 서랍·식탁·옷장은 물론 화장대와 그 위에 놓인 화려한 스탠드도 직접 골랐다. “스탠드는 가구점 사장님이 공짜로 주셨어요. ‘사장님~’ 하고 말만 잘하면 돼요(웃음).”

조씨는 사고 후유증으로 단기기억을 잊을 때가 많다. 기도삽관 때문에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다. 그가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활동보조 이모가 도와주고 하니까 불편한 거 없어서, 시설에서는 시키는 거, 딱 정해주는 게 없어서 좋아요. 나오길 잘한 것 같아요. 왜 진작 안 나왔나 싶어요. 다시 시설에 가라면 죽어도 못 가요.”

조씨 집에 도착하기 전, 코디네이터는 “민정씨는 정말 유쾌한 사람”이라고 귀띔했다. 조씨는 오랜만에 만난 코디네이터에게 “자주 봐서 지겹다”며 농담을 던졌다. ‘동안이세요’라는 말에도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라고 받아쳤다.

그가 가장 활짝 웃는 순간은 남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였다. 시설에서 나와 가장 행복할 때가 남자친구와 자유롭게 통화할 때라고 했다. 체험홈에 머물 때 여러 행사에 나가면서 알게 됐다고 한다. 오빠와 동생으로 지내다 가을 무렵 연인이 됐다. “남이 님이 됐네.” 코디네이터의 말에 조씨가 큭큭 댄다. 시설에서는 휴대폰도 없고 외출도 자주 할 수 없었다. 연애는 생각도 못 했다. 지금은 눈치보지 않고 달콤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데이트를 한다. 주로 반월당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침대 위에 있는 ‘에비츄’ 인형은 남자친구 집에서 데려왔다.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시설에 있을 때보다 옷장이 화려해졌다. 시장 안에 단골 옷가게도 생겼다. 생계비를 아껴 액세서리도 사곤 한다. 최근에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일도 구했다. 상점에 장애인이 들어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 턱을 없애도록 요구하는 일이다.

가끔은 혼자 있는 게 외롭기도 하다. 체험홈에 좀 더 있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집이 있다는 게 든든하다. 기억을 더듬거리던 조씨가 이 한마디는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장애를 가져도 너무 실망하지 마라. 떳떳하게 다 이야기하고 잘 살아라. 용기를 가져라.”

고지훈씨는 “시설 안에서도 자립을 떠올려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도현 기자

고지훈씨는 “시설 안에서도 자립을 떠올려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도현 기자

밤거리에서 느낀 ‘살아 있음’

“미쳤습니까?”

고지훈씨(44)에게 괜한 질문을 던졌나보다. “다시 시설로 돌아가라고 하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하니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2015년 12월 15일은 그가 절대 잊지 못하는 날이다. 이날 1992년부터 24년 가까이 머문 희망원에서 나왔다. 등산길에 추락해 전신마비가 왔다. 누군가는 24시간 붙어 있어야 했다. 자신 때문에 가족들 인생을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시설입소를 선택했다.

“태어나서 시설이라는 건 처음 가봤죠. 세상에 이런 데가 있구나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어요. 아직도 기억해요. A동 2층 3호실이었어요. ‘봉봉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었는데,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에 두 손이 뒤로 묶여 구석에 있더라고요. 보호 차원이라고 하는데 그런 장면은 처음이었죠.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잖아요. 저도 조금씩 적응해갔습니다.”

희망원 사태가 불거지기 전 시설에서 나왔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이유였다. 탈시설을 준비하는 데만 3년 정도 걸렸다. 시설에선 자립 이야기를 반기지 않았다. “일단 누구 하나가 나가게 되면 다른 누가 또 나가게 될까봐. 어떻게 보면 시설에서는 거주인의 머릿수에 따라 지원받는 게 달라지니까 항상 비관적이었죠.” 지금은 사람센터가 운영하는 ‘자립생활 가정’에서 산다.

희망원 사태 이후 장애인 거주시설이 폐쇄되는 걸 보면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제가 그 안에서도 간부들에게 누누이 얘기했어요. ‘이건 아니다’라고요. 신체가 비교적 자유로운 장애인들이 이발소·요양실에서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한 달에 2만7000원에서 3만원대, 많으면 5만원 받았거든요. 하루 일당도 안 되는 돈이었죠. 간부들은 ‘돈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했어요. 돈이 없어 생기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어요. 저로서는 그런갑다 하고 넘어갈 수밖엔 없었죠.”

외출을 자주 하는 편이다. 반월당에서 영화도 보고 아이쇼핑도 즐긴다. 가장 최근에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를 봤다. “(시설에서 나온 뒤) 저녁시간에 나와봤어요. 그 시간에 차들도 막 다니고 사람들도 막 다니고. 그때서야 내가 세상에 나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밤거리의 기억을 떠올리는 고씨 표정이 밝아졌다.

‘꼭 해보고 싶었던 걸 이뤘느냐’고 물었더니 야식을 시켜먹은 이야기를 꺼낸다. TV 드라마에서 야식 먹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시설에선 침을 삼키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가 직접 전화해서 주문해보니까 치킨을 바로 집 앞까지 갖다주는 거예요. 너무 신기했어요.”

하지만 야식을 즐기진 못한다. 활동지원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13시간을 함께한 뒤 퇴근하면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몸에 감각도 없다보니 지원사가 없는 시간대에 실수라도 하면 그 시간이 너무 힘들어진다. 그래서 하루 한 끼, 점심만 먹을 때가 많다. 고씨는 “완전한 자립을 위해서는 24시간 활동보조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고씨에겐 뚜렷한 목표가 있다. 국민임대주택에서 완전하게 자립하는 것이다. 이미 계획도 다 세워놨다. “시설 안에 있으면서 분명히 느낀 건 조금만 잡아주면 얼마든지 나와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거였어요. 단지 시설에 살다보니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 자체를 모르는 거죠. 우리는 ‘시설병’이라고 말해요. ‘주는 밥만 먹고 하루하루 시간만 때우다 가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니까요. 자립 정보를 얻기 힘들어서 저한테 전화하는 분도 많아요. 시설 안에서도 자립을 떠올려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사원문 :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191130181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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