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수급’ 낙인찍혀있는 활동지원서비스 노동자와 이용자들
올해 8월, 헌법재판소(아래 헌재)가 의문스러운 결정을 내놓았다. 김포경찰이 김포시로부터 시민 600명의 개인정보를 동의도 없이 전달받은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2016년, 김포경찰은 활동지원 부정수급을 조사한다며 김포시에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600명의 인적사항, 휴대전화번호, 계약일, 종료일, 계약 기간 등의 개인정보를 요청했다. 김포시는 사전동의는 물론 사후 고지도 없이 개인정보를 김포경찰에 제공했다.
당사자들은 이러한 행위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헌재는 개인정보를 김포경찰에 제공함으로써 얻게 되는 “실체적 진실 발견과 국가형벌권의 적정한 행사에 기여하고자 하는 공익이 매우 중대한 것”이므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들이 '범죄' 혐의를 받은 이유를 살펴보면, (1) 단말기 접촉 오류로 소급결제를 해서 (2) 장애인이 남성인데 활동지원사는 여성이라서 (3) 비 오는 날, 휠체어 이용자의 약을 사러 가기 위해 활동지원사가 자리를 떠나서 (4) 사회보장정보원의 전화를 받지 않아서 등이다.
중년 경력 단절 여성이 전체 노동자의 80%를 차지하고, 오류가 잦은 바우처 단말기를 이용해 근무시간을 기록해야 하며, 장애인의 접근성과 이동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이러한 사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활동지원사가 얼마나 될까.
장애인활동지원 제도는 지역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의 자립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나, 활동지원제도가 확장될수록 장애인 이용자와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의심’은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2011년 ‘차세대 전자바우처’를 장애인활동지원 영역에 최초로 도입한 이래 이를 감시도구로 활용하며 ‘부정수급’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부정수급'이라는 범죄 혐의는 노동자와 이용자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털면 털리는 우범지대'를 양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활동지원사노조(아래 지원사노조)는 월급제 등 바우처 방식 탈피를 주장하기도 한다.
한 활동지원사가 개인정보 사찰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가운데, 뒤편엔 현재의 바우처 형식에서 월급제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피켓이 있다.
- 최저임금에도 미달하는 포괄수가, 그러나 책임지지 않는 복지부
활동지원제도에서 국가가 만든 '우범지대'는 바우처제도 뿐만이 아니다. 활동지원 수가 문제 역시 오래되고 확실한 ‘범법의 영역’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수 없는 수가 구조는 이미 활동지원사와 장애인들이 오랫동안 지적해 왔다.
2018년 활동지원 수가는 시간당 1만760원. 포괄수가인 이 금액에서 4대 보험, 퇴직금, 주휴수당, 야근수당 등 각종 수가는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지, 복지부가 사업을 위탁한 중개기관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복지부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복지부가 제시하는 유일한 가이드라인은 '전체 수가의 75% 이상을 노동자에게 지급하라'는 것뿐이다.
2018년 수가의 75%는 8070원. 최저임금 7530원에 비하면 조금 높다. 그러나 주휴수당을 포함한 최저임금은 9036원이다. 이는 활동지원 단가 대비 84%인데, 여기서 다시 활동지원사의 퇴직 적립금, 사회보험료를 제외하면 수가의 단 1%만을 중개기관 운영비로 사용해야 한다. 활동지원기관 평가에서는 활동지원사 50명당 전담인력 1명을 두도록 하고 있으나 활동지원사 50명의 수가 1%로는 전담인력 역시 최저임금조차 받을 수 없다. 결국, 중개기관들은 복지부 지침에 따라 수가의 75%를 지급하며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신고하면 걸리는 건 중개기관일 뿐이지, 애초 최저임금에 미달한 수가를 쥐여준 정부는 수사망에서 제외된다. 활동지원제도는 올해 예산만 6900억 원, 내년엔 1조 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지만, 정부는 민간영역에 이를 온전히 위탁한 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가 문제는 내년에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동계는 수가 문제 해결을 위해 내년도 최소 적정 수가는 1만 4050원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최종 확정된 내년도 수가는 이보다 한참 낮은 1만 2960원이다. 이와 함께 올해 ‘활동지원사 휴게시간’ 문제가 불거지면서 ‘범법 지대’는 더욱 확장됐다.
- 휴게시간 도입으로 더 확장된 범법지대… 정부는 대책도 없이 ‘알아서 적응해야’
올해 2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활동지원사 등 사회복지사업이 기존의 특례업종에서 제외됨에 따라, 7월 1일부터 활동지원사 역시 ‘4시간 근무 시 30분, 8시간 근무 시 1시간’의 휴게시간을 갖게 되었다. 기존에는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한 경우, 월 최대 노동시간 초과 근무 및 휴게시간 제공 형태에 대한 협의가 가능했으나,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휴게시간 제공은 ‘4시간에 30분, 8시간에 1시간’으로만 가능해졌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에 대한 ‘1대1 대인서비스’라는 활동지원 업무 특성상 이는 현장에서 지켜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중증장애인, 특히 근육장애인은 단 1분의 돌봄 공백만으로도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활동지원사 또한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면 휴게시간은 사실상 임금 삭감 조치다.
지난 4월,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을 고려한 근로기준법 적용으로 활동지원사가 ‘쉴 권리’를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중증장애인을 지원하다 보면, 이용자와 밥을 먹거나 샤워를 하거나 이동하는 중에 8시간 노동이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이 와중에 기계적으로 1시간 휴식을 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면 일하는 중임에도 단말기를 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더구나 휴게장소가 따로 마련되지도 않으니 이용자와 같은 공간에 계속 있는 이상, 의무 휴게시간은 사실상 무급 노동만 강제하는 꼴이 된다. 이용자와 노동자가 함께 이동하던 중, 8시간이 지나면 노동자는 법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이용자 입장에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휴게시간 도중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 활동지원사에게 응급조치를 요청하는 장애인 이용자를 우리는 ‘위법한 사용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선명하게 예견되는 부조리에 활동지원 서비스 이용자는 물론 노동자도 복지부에 현실적 대안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으나, 복지부는 교대근무, 1시간 단위 대체 인력 지원,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허용이라는 세 개의 대안만을 내놓았다. 대안이 모두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에 복지부는 “모든 이들에게 대안을 줄 순 없다. 최대한 현장에서 적응해 나가라”고만 답했다. 사실상 복지부도 이렇다 할 대책이 없는 것이다. 비판은 거세지고, 현실적 대안은 없는 상황 속에서 복지부는 6개월간 ‘계도기간’을 가진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 현장에서는 휴게시간 저축제부터 특례업종 회귀까지 다양한 의견이 혼란스럽게 엉켰으나 결국엔 어떠한 답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12월 31일, 계도기간은 종료를 앞두고 있다.
바우처제도, 포괄수가제, 그리고 2019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휴게시간 의무 제공까지. 법을 준수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지 않고, 법을 지키라고만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은 아니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정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준수하라는 지침만을 내려보내는 것 이상의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될 대로 돼라’는 정부의 무관심과 무책임은 장애인과 노동자들의 삶만 갉아먹고 있다.
정부가 알면서도 방임하고 확장하는 이 범법의 영역에서 ‘범죄자’ 딱지를 두려워하고 몸을 사려야 하는 이들은 결국 80%가 저임금 노동시장에 내몰린 경력단절 중년여성이며 한 달 평균 월급이 110만 원인 활동지원사, 그리고 바로 이 제도를 만들기 위해, 집과 시설에 갇혀 살지 않고자 죽을힘을 다해 투쟁했던 장애인들이다. 2019년에는 이 무책임으로 인한 불안이 끝날 수 있을까. 정부는 ‘국가형벌권’만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준법 역시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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