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프리즘]교통약자의 시각으로 시설 안전관리를
2018.12.24ㅣ주간경향 1307호
시각장애인이 전철 승강장에서 추락해 다친 경우에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시각장애인인 나는 거의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지하철은 버스와 달리 점자보도가 잘 되어 있고, 승하차 위치가 일정해서 편하다. 스크린도어가 생긴 다음부터는 보통 스크린도어를 따라 걸으며 승차 위치를 찾는다. 스크린도어 출입문 옆에는 ‘사당 방면 2-3’과 같이 점자 안내가 붙어 있어 내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내부 구조와 동선을 익힌 지하철역은 혼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 방배역 승강장에서 시각장애인 1명이 선로로 떨어져 다쳤다. 방배역은 당시 스크린도어 교체공사 중이었는데, 그는 스크린도어가 없는 것을 모른 채 점자보도를 따라 승강장 선로 쪽으로 걸어가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크린도어를 활용해 이동하는 나로서는 참 섬뜩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시각장애인이 전철 승강장에서 추락해 다친 경우에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 손해배상 소송을 한 적이 있다. 원고는 출근시간에 양주 덕정역에서 인천행 열차를 타려고 했다. 원고는 개찰구를 지날 때 인천행 열차가 진입한다는 안내방송을 들었다. 원고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 승강장에 도착했다. 그때 마침 열차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원고는 열차 쪽으로 몸을 옮겨 발을 내디뎠지만, 발은 허공을 갈랐다. 출입문을 연 것은 반대편 소요산행 열차였던 것이다. 원고는 선로 바닥에 떨어졌고, 필사적으로 승강장 밑 안전지대로 몸을 굴렸다. 인천행 열차는 멈췄는지 원고 있는 곳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다. 원고는 고관절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덕정역은 인근에 안마수련원이 있어서 시각장애인이 많이 이용하는 역이었다. 이 사고 3개월 전에도 시각장애인이 추락해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덕정역을 관리하는 한국철도공사는 이 사건은 전적으로 원고의 부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승강장 관리자에게도 30%의 과실이 있다고 했다. 법원은 승강장 관리자인 피고에게 여객 추락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적어도 덕정역의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대에는 안전요원을 상시 배치하고, 열차가 승강장에 완전히 도착한 다음 도착한 열차의 행선지와 출입문 열림에 관하여 안내방송하거나 직원을 통하여 안내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덕정역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없는 점, 열차의 도착 소음만으로는 시각장애인이 어느 선로에 열차가 도착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수도 있는 점, 덕정역에서 비슷한 시각에 인천행 열차와 소요산행 열차가 도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점, 시각장애인들이 덕정역을 이용하는 빈도가 비교적 높고, 시각장애인의 추락사고가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그리고 역무원과 공익요원이 사고 현장에 출동할 때 들것을 지참하지 않고, 원고를 부축하여 원고로 하여금 50m가량 걷게 한 것은 적절한 응급조치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법원은 열차의 도착 여부를 지팡이 등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선로 쪽으로 발을 내디딘 원고의 과실이 더 크다고 보았다. 안전사고의 책임은 일단 개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상황에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다중이용시설의 관리자이다. 시각장애인과 같은 교통약자가 많이 이용하는 시설의 관리자는 교통약자의 시각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안전요원을 배치하거나 소리로 위험상황을 안내하는 것 등이다. 결국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인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무분별한 인원 감축도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 김재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시각장애인인 나는 거의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지하철은 버스와 달리 점자보도가 잘 되어 있고, 승하차 위치가 일정해서 편하다. 스크린도어가 생긴 다음부터는 보통 스크린도어를 따라 걸으며 승차 위치를 찾는다. 스크린도어 출입문 옆에는 ‘사당 방면 2-3’과 같이 점자 안내가 붙어 있어 내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내부 구조와 동선을 익힌 지하철역은 혼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 방배역 승강장에서 시각장애인 1명이 선로로 떨어져 다쳤다. 방배역은 당시 스크린도어 교체공사 중이었는데, 그는 스크린도어가 없는 것을 모른 채 점자보도를 따라 승강장 선로 쪽으로 걸어가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크린도어를 활용해 이동하는 나로서는 참 섬뜩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서울지하철 2호선 시청역./연합뉴스
그럼 시각장애인이 전철 승강장에서 추락해 다친 경우에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 손해배상 소송을 한 적이 있다. 원고는 출근시간에 양주 덕정역에서 인천행 열차를 타려고 했다. 원고는 개찰구를 지날 때 인천행 열차가 진입한다는 안내방송을 들었다. 원고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 승강장에 도착했다. 그때 마침 열차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원고는 열차 쪽으로 몸을 옮겨 발을 내디뎠지만, 발은 허공을 갈랐다. 출입문을 연 것은 반대편 소요산행 열차였던 것이다. 원고는 선로 바닥에 떨어졌고, 필사적으로 승강장 밑 안전지대로 몸을 굴렸다. 인천행 열차는 멈췄는지 원고 있는 곳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다. 원고는 고관절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래도 법원은 열차의 도착 여부를 지팡이 등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선로 쪽으로 발을 내디딘 원고의 과실이 더 크다고 보았다. 안전사고의 책임은 일단 개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상황에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다중이용시설의 관리자이다. 시각장애인과 같은 교통약자가 많이 이용하는 시설의 관리자는 교통약자의 시각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안전요원을 배치하거나 소리로 위험상황을 안내하는 것 등이다. 결국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인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무분별한 인원 감축도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 김재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