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시설폐쇄법’으로 장애인시설이 단 한곳도 없는 나라로 알려진 스웨덴. 스웨덴 정부는 어떻게 장애인 시설이 단 한 개도 없는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그 과정에서 사회적 반발은 없었을까.
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8 서울 인권 컨퍼런스’에서 리타 레나 칼슨 스웨덴 스톡홀름 자립생활협회 전문가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스웨덴의 오늘’을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답했다. 리타는 2002~2016년까지 스톡홀름 최초 장애 행정 감찰관으로 활동하는 등 오랜 시간 장애인분야에서 활동해왔다. 현재는 스톡홀름 자립생활협회에서 ‘장애 난민 환영’ 프로젝트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리타 레나 칼슨 스웨덴 스톡홀름 자립생활협회 전문가
- 정부 주도로 시설 폐쇄 적극 추진, 2000년에 모든 장애인시설 폐쇄
리타는 “스웨덴 시설 폐쇄 운동을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 정확한 인물은 알지 못한다. 주 정부에서 시설을 감찰하는 담당관이 1960년대에 당시 스웨덴 장애인시설을 방문했는데 이후 ‘장애인 시설은 사람으로서 살 수 없는 곳이다’며 시설의 열악함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스웨덴 보건사회부 장관이 시설 폐쇄를 이야기하게 되었고, 이후 차기 보건사회부 장관도 시설 폐쇄를 지지하면서 이후 입법화 과정을 거쳐 스웨덴의 시설 폐쇄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60년대 당시 시설에 수용된 사람은 1만 4000명가량 되었다.
시설 폐쇄를 법에 처음 명시한 것은 1967년 ‘장애인보호법’이다. 그러나 20년 동안 장애인을 서서히 시설에서 내보내서 사회에 통합시킨다는 다소 느슨한 이야기만을 담고 있을 뿐 시한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결국 시설 폐쇄 속도가 너무 더디다고 판단한 스웨덴 정부는 1994년 장애인보호법을 폐지하고 ‘2000년까지 시설을 폐쇄한다’고 명시한 ‘특정한 기능 장애인에 대한 지원 및 서비스 관련 법률(LSS)’을 제정한다. LSS법은 장애 또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 뇌손상이 있는 사람, 크고 영구적인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어서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이 있고 다양한 분야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권리를 다루고 있다. LSS법에 따라 지원받는 사람 중 80% 이상이 지적장애 또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LSS법만으로도 속도가 더뎌서 1997년에 이를 보안한 또 다른 법률을 제정했고, 이를 통해 시정부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2000년까지 모든 장애인은 사회로 복귀시키도록 해야 했다. 1997년 당시만 해도 여전히 52곳의 시설에 1000여 명의 지적장애인 수용되어 있었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시설 폐쇄가 가능했던 요소 중 하나는 스웨덴은 한국과 달리 민간시설이 아니라 정부 시설이었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은 이후 그룹홈에서 생활한다. 과거엔 시설에서 나오면 모두 그룹홈에 살았으나 현재는 신청을 해야 한다. 그룹홈은 주방과 욕실이 딸린 아파트 5~6채가 함께 있는 구조로, 직원들이 있긴 하나 1:1 돌봄은 받지 못한다. 그룹홈 직원들은 장애인의 빠른 적응을 돕고, 장애인의 개별 계획을 수립해서 지원한다. 그룹홈 주거비, 식비는 개개인이 부담하고 직원 월급은 시정부에서 지원한다. 스웨덴의 그룹홈은 ‘소규모화된 시설’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그룹홈과 달리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해주고 있다.
현재 스웨덴 그룹홈에 사는 장애아동은 천 명 가량 되며, 성인장애인은 2만 7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서비스는 낮 시간의 활동을 지원하는 주간활동서비스이며, 개인활동보조서비스도 2만 명가량이 이용하고 있다.
시설 폐쇄 전, 스웨덴 사회는 어떠했을까. 리타는 “관련 당국은 비용 걱정을 했고, 시설 직원들은 시설 폐쇄로 인한 실직을 가장 크게 걱정했다. 그룹홈이 있는 동네 주민들은 장애인이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컸는데 이에 대해선 별도의 교육을 진행했으며, 장애아 부모들도 걱정이 많았다.”고 전했다.
리타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은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을 못했기에 준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도록 더 많은 물리적 접근성을 지원하고 인식 제고를 하는 것이었다”며 여러 방면의 사회적 노력에 대해 말했다.
리타는 “스웨덴 역시 장애인을 환자라고 생각하며 의료적 지원만 받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애인은 환자가 아니라 동등한 시민이며, 장애인 또한 필요할 때만 의료지원을 받으면 되지, 격리 대상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시설 없이 살아온 스웨덴의 20년, 현재의 장애인은 그전 장애인 세대와 확연히 달라”
리타는 ‘시설에서 한평생을 산 사람들이 과연 사회 복귀가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스웨덴 사회에도 존재했으나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모두 시설에서 나오도록 했다며 하나의 일화를 소개했다.
“갓난아이 때부터 80세가 될 때까지 시설에서만 지내온 노인이 있다. 이런 사람을 사회로 ‘다시 쫓아내는 게’ 가혹한 거 아니냐, 시설에서 죽는 게 더 편안한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회로 복귀하기 전, 이 분이 이케아에 가서 가구 쇼핑을 직접 했다. 거실에 들어갈 가구, 부엌에 들어갈 가구를 직접 골랐다. 이사 갈 때 친구들과 가구 사는 것처럼. 탈시설 이후 그는 사람들을 초대해 커피 마시는 일상을 즐기고 있다. 제가 시설에 계실 때도 만나고, 그룹홈에도 계실 때도 방문했다. 이렇게 사회로 나와서 어떤 게 좋으세요? 물으니 자기 이름이 담긴 명패를 문에 달은 것, 80년 만에 처음으로 개인 공간을 갖게 된 것, 자기 우편함이 생긴 것이 좋다고 하셨다. 중증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시설에 남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절대 아니다. 탈시설시켜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성공적으로 사회에 복귀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어려움이 있으나 그들에겐 그 어려움을 극복할 능력 또한 있다.”
리타는 ‘탈시설 흐름’을 절대로 되돌려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시설 없이 살아온’ 스웨덴의 20년이 가져온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변화에 대해 말했다.
“탈시설해야 한다는 리더가 없다면 ‘재시설화’로 이어질 수 있다. 새로운 재시설화로 이어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스웨덴은 20년째 장애인 시설 없이 살아왔다. 장애인 중 20세가 된 장애인은 그전의 장애인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시설에서 단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장애인들, 비장애인들과 자라온 장애인들은 미래에 대해 새로운 꿈을 꾼다. 더 이상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기에 더 독립적이다. 부모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내 애는 내가 끝까지 돌봐야 하니깐 나는 절대 죽으면 안 돼, 했던 장애아 부모조차도 이제 사회에서 장애인을 돌봐주니 나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리타는 스웨덴 또한 천국은 아니라며 오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리타는 “스웨덴은 2009년부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따르고 있는데 최근 유엔에 제출했던 보고서를 바탕으로 30개 항목에 대해 장애인 서비스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받았다”면서 “이를 충족하기 위해 스웨덴도 여전히 많은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도 완벽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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