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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HIV가 퍼지는 진짜 원인은 '혐오와 낙인'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 맞아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 문제점 논의
"감염자 낙인찍고 배제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 폐지해야"
 
등록일 [ 2018년12월01일 16시03분 ]
 
 

1543660189_16941.jpg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28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사람 한터에서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의 문제점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의 문제점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28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사람 한터에서 진행된 이번 토론회에서,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HIV/AIDS가 퍼지는 진짜 원인은 혐오와 차별"이라고 입을 모았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은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의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25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후천성면역결핍바이러스는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의 몸 안에 살면서 인체의 면역기능을 파괴하며 에이즈(AIDS)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198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HIV를 최초로 발견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적절한 치료법이 없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각국의 보건당국은 치료법 개발에 힘쓰는 한편, 대중 공포를 의식해 퀵 솔루션(puick solution)으로 의료적 격리는 물론 사회적 격리와 매개 행위에 대한 법률적 금지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1543660958_60461.jpg왼쪽부터 엄중식 가천대학교 길병원 감염내과 의사, 류민희 공익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
 

- 시대에 뒤떨어진 전파매개금지 조항보다는 빠르게 HIV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엄중식 가천대학교 길병원 감염내과 의사는 “이제 HIV는 조절할 수 있는 성매개 감염 바이러스 중 하나일 뿐”이라면서 “HIV 감염 진단과 치료에 대한 의학 발전에 따라 정책과 법령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엄 의사는 “최근 HIV 감염에 대한 진단과 치료 발달을 보면 매우 간단한 약물 복용으로 정상적인 면역 체계를 유지할 수 있고 혈액을 비롯한 여러 체액에서 HIV를 충분히 억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전파매개금지 조항보다는 고위험군에 대한 HIV 감염을 조기에 진단하고 빠르게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효과적인 전파예방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민희 공익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전파매개금지조항이 부당한 것을 넘어 법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2008년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을 개정하면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감염의 예방조치 없이 행하는 성행위’ 조항이 삭제됐다. 하지만 류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은 개정하기 전 삭제 조항과 동일한 법 해석과 적용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 남아있는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을 '콘돔 없는 성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해석해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류 변호사는 “유엔에이즈(UNAIDS) 등 전문기구들은 책임주의에 맞지 않는 침해를 막기 위해 더는 광범위하게 형사법을 사용하지 않기를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의로 타인을 감염시키려 한 행위가 아니라면 처벌을 요구할 만큼 해악을 끼친다고 보지 않고, 위험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에 유엔에이즈 등 전문기구들은 감염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위험성’은 현재 최선의 과학적 의료적 증거에 기반해 판단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 HIV감염자가 죽는 원인은 감염 자체가 아니라 혐오와 낙인때문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HIV감염자가 죽는 원인은 감염 자체가 아니라 혐오와 낙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낙인은 감염자가 스스로 자기 상태를 드러내지 못하게 만든다”며 “HIV 낙인 지표 조사에서 20%가 넘는 감염인이 ‘친구나 가족등에게 자신의 상태를 밝히지 않는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HIV 감염자 200명을 대상으로 올해 초에 시행한 조사를 보면 치료약을 먹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치료약을 먹지 않는 이유로 46% 응답자는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라고 답했다.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76% 응답자는 ‘아는 사람 만날까 봐’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전파매개금지조항은 한국사회가 HIV 감염인을 대하는 태도를 명백히 보여준다”며 “감염 사실을 낙인찍는 것은 한국 의학이 지난 40년 동안 거둬온 성과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무엇보다 HIV 감염을 퍼뜨리는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 공동 기획단이 수행한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2016~2017)’에 따르면 한국 HIV 감염인이 매우 높은 수준의 내적 낙인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HIV 감염 사실로 느낀 감정에 대한 질문에서 ‘나를 탓’한 사람은 10명 중 7~8명에 이르렀다. ‘자살 충동’을 느낀 응답자는 10명 중 3~4명꼴이었다.

 

내적 낙인의 경험이 직접 차별 경험보다 우세하게 나타나는 양상은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여줬다. 특히 한국과 독일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에이즈 유병률이 매우 낮고, 항바이러스 치료가 보편화 되어 있다. 두 나라 HIV 감염인이 내적 낙인을 느낀 경험을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크다. 한국의 응답자는 독일의 응답자보다 ‘죄책감’과 ‘벌을 받아야 한다고 느낌’을 세 배 높게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책감’ 역시 두 배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윤가브리엘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는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에 참여한 104명의 감염인뿐 아니라 힐링캠프, 밥상모임 등에서 만난 감염인도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을 탓하는 감염인은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는 경우도 많다”라며 “그 죄책감에는 ‘문란하게 논 죄’와 ‘누군가에게 전파할 수 있다는 죄의식’이 함께한다”고 말했다.

 

그도 이런 낙인을 더욱 강화하는 원인 중 하나가 감염인을 ‘전파매개자’로 규정하는 법 조항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몇 년 전부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을 악용해 고소와 처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라며 “이 조항은 성적문란자라는 낙인에 전파매개자, 심지어 범죄자까지 만드는 조항”이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감염인의 인권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543660206_33313.jpg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발언하는 모습
 

- 규정하기 어려운 ‘전파매개행위’ 실효성 의심… 권리 말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해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예방・관리와 그 감염인의 보호・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건강의 보호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법의 존재 자체가 질병에 대한 낙인 효과를 가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류 활동가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 말하는 ‘전파매개행위’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려운 점을 꼬집었다. “당사자가 감염 여부를 알고 있었는지,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었는지, 전염을 막는 조처를 했는지, 고의성이 있었는지 등에 따라 같은 행위도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행위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금지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했다. 결국 “이 조항의 본질은 감염인을 사람이 아니라 바이러스 전파매개체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비감염인의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라며 “감염을 범죄화하고 감염인을 배제하는 정책 기조가 서로 질병을 알아가고 대처하는데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더 많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더 높은 건강을 가능하게 한다”며 “국가는 감염인에게 의무만 지우지 말고 감염인이 권리를 더 많이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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