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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감수하며 불법 집회 여는 건, 무관심보단 욕먹는 게 낫기 때문”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전과 26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할 수 있는 방법 다 해도 장애인들 죽어가는 세상 안 변해
장애등급제의 실질적 폐지 위해선 정부 예산 책정 늘려야”

 

박경석 대표가 지난달 29일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농성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박경석 대표가 지난달 29일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농성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전과 26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58)가 달고 사는 꼬리표다. 그는 전과가 더 늘어날 처지에 놓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5일 박 대표에게 징역 14개월에 형 집행을 2년 유예하는 선고를 내렸다. 그는 전과와 달리 흉악범이 아니다. 전과는 장애인권운동을 하다 얻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떨어져 죽자 선로 위에 올라 항의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를 도입해달라며 버스에 쇠사슬을 묶고 버텼다. 

 

판사는 법정에서 “왜 이런 불법적인 방식을 택했느냐”고 묻곤 한다. 박 대표의 답은 명료하다. “국회의원을 찾아가고 토론회도 열었죠. 서명도 받아요. 합법적인 방식은 수없이 해오고 있어요. 그런데도 변화가 없어요. ‘왜 이렇게 하느냐’가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가’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선고는 박 대표가 2014년 장애인권운동 중 법을 어겼다며 기소된 7건에 대해 이뤄졌다. 6건이 유죄 판결이다. 항소한 박 대표를 최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장의 천막 안에서 만났다. 그는 실질적인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예산 확대를 위해 11일째 농성 중이다.

 

박 대표는 고속버스 이동권 투쟁이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판결을 받아 억울하다고 했다. 전장연 소속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200명은 2014년 4월20일 장애인의날에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장애인이 고속버스를 이용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이들은 고속버스표 200장을 산 뒤 버스에 오르려 했다. 경찰은 이를 미신고 집회라 보고 버스에 오르지 못하도록 막았다. 최루탄도 쐈다. 

 

박 대표가 말했다. “터미널 안은 집회 신고가 가능한 공간이 아니에요. 신고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신고를 안 했다고 불법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되죠. 정당하게 표도 구매했는데…. 우리가 버스를 못 타도록 막는 게 아니라 우리를 도와 태우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박 대표는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에 참여해 집시법 위반 판결을 받은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6년 8월15일 세월호 집회로 수만명이 운집해 도로가 점거됐을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 경찰은 박 대표를 채증해 재판에 넘겼다. 박 대표는 “그 도로를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데 수많은 시민 중에 저만 걸린 셈”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표적 수사’였다고 본다. 

 

2014년 4월13일 장애등급에 걸려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한 고 송국현씨 집에 화재가 발생했다. 다음날 전장연이 서울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센터에 몰려가 시위한 것도 미신고 집회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송씨가 국민연금공단에 찾아가 장애등급을 재심사해달라고 말한 뒤 며칠 뒤에 화마를 입었어요. 위급 상황에서 바로 대표자 면담을 요구하고 항의해야 했어요. 집회 신고가 나려면 48시간이 필요한데 기다린다는 게 말이 안되죠.” 

 

박 대표와 전장연의 투쟁 방식에 대해 시민들의 시선도 따뜻하지만은 않다. 지하철을 점거해 연착시키고 출퇴근 시간에 도로에서 통행을 막는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해왔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시민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죠”라며 겸연쩍어했다. 그런데도 투쟁 방식을 포기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하죠. 다른 방법들은 무관심하고 꿈쩍도 안 해요. 이렇게 하면 욕이라도 먹어요. 욕을 먹는 게 동정받는 것보다 나아요. 불쌍한 사람 취급하지 않고 동등하게 보는 거니까. 그런 뒤 솔직하게 우리 문제를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전장연은 5일 낮 12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출입문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휠체어를 탄 8명의 장애인들이 목을 사다리에 넣고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감은 채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을 반영하라”고 외쳤다. 

              

박 대표는 내년부터 단계적 폐지에 들어간 장애등급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되려면 예산을 확대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책정한 2019년도 장애인 관련 복지 예산은 전년 대비 약 5000억원 늘었는데, 박 대표는 자연증가분 수준으로 책정됐다고 지적한다. 박 대표는 “장애인의 실질적인 삶의 변화가 있으려면 예산 확대가 필수”라고 했다. 1988년 도입된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의학적 기준만으로 등급을 분류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비판받아왔다. 박 대표는 인터뷰를 마친 뒤 휠체어를 끌고 농성장의 푸른 천막 안으로 들어가 다시 자리를 지켰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051816001&code=940601#csidx4032cc89d5a953e9eb4529365a0b703 onebyone.gif?action_id=4032cc89d5a953e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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