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26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할 수 있는 방법 다 해도 장애인들 죽어가는 세상 안 변해
장애등급제의 실질적 폐지 위해선 정부 예산 책정 늘려야”
전과 26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58)가 달고 사는 꼬리표다. 그는 전과가 더 늘어날 처지에 놓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5일 박 대표에게 징역 14개월에 형 집행을 2년 유예하는 선고를 내렸다. 그는 전과와 달리 흉악범이 아니다. 전과는 장애인권운동을 하다 얻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떨어져 죽자 선로 위에 올라 항의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를 도입해달라며 버스에 쇠사슬을 묶고 버텼다.
판사는 법정에서 “왜 이런 불법적인 방식을 택했느냐”고 묻곤 한다. 박 대표의 답은 명료하다. “국회의원을 찾아가고 토론회도 열었죠. 서명도 받아요. 합법적인 방식은 수없이 해오고 있어요. 그런데도 변화가 없어요. ‘왜 이렇게 하느냐’가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가’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선고는 박 대표가 2014년 장애인권운동 중 법을 어겼다며 기소된 7건에 대해 이뤄졌다. 6건이 유죄 판결이다. 항소한 박 대표를 최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장의 천막 안에서 만났다. 그는 실질적인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예산 확대를 위해 11일째 농성 중이다.
박 대표는 고속버스 이동권 투쟁이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판결을 받아 억울하다고 했다. 전장연 소속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200명은 2014년 4월20일 장애인의날에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장애인이 고속버스를 이용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이들은 고속버스표 200장을 산 뒤 버스에 오르려 했다. 경찰은 이를 미신고 집회라 보고 버스에 오르지 못하도록 막았다. 최루탄도 쐈다.
박 대표가 말했다. “터미널 안은 집회 신고가 가능한 공간이 아니에요. 신고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신고를 안 했다고 불법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되죠. 정당하게 표도 구매했는데…. 우리가 버스를 못 타도록 막는 게 아니라 우리를 도와 태우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박 대표는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에 참여해 집시법 위반 판결을 받은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6년 8월15일 세월호 집회로 수만명이 운집해 도로가 점거됐을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 경찰은 박 대표를 채증해 재판에 넘겼다. 박 대표는 “그 도로를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데 수많은 시민 중에 저만 걸린 셈”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표적 수사’였다고 본다.
2014년 4월13일 장애등급에 걸려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한 고 송국현씨 집에 화재가 발생했다. 다음날 전장연이 서울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센터에 몰려가 시위한 것도 미신고 집회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송씨가 국민연금공단에 찾아가 장애등급을 재심사해달라고 말한 뒤 며칠 뒤에 화마를 입었어요. 위급 상황에서 바로 대표자 면담을 요구하고 항의해야 했어요. 집회 신고가 나려면 48시간이 필요한데 기다린다는 게 말이 안되죠.”
박 대표와 전장연의 투쟁 방식에 대해 시민들의 시선도 따뜻하지만은 않다. 지하철을 점거해 연착시키고 출퇴근 시간에 도로에서 통행을 막는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해왔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시민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죠”라며 겸연쩍어했다. 그런데도 투쟁 방식을 포기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하죠. 다른 방법들은 무관심하고 꿈쩍도 안 해요. 이렇게 하면 욕이라도 먹어요. 욕을 먹는 게 동정받는 것보다 나아요. 불쌍한 사람 취급하지 않고 동등하게 보는 거니까. 그런 뒤 솔직하게 우리 문제를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전장연은 5일 낮 12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출입문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휠체어를 탄 8명의 장애인들이 목을 사다리에 넣고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감은 채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을 반영하라”고 외쳤다.
박 대표는 내년부터 단계적 폐지에 들어간 장애등급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되려면 예산을 확대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책정한 2019년도 장애인 관련 복지 예산은 전년 대비 약 5000억원 늘었는데, 박 대표는 자연증가분 수준으로 책정됐다고 지적한다. 박 대표는 “장애인의 실질적인 삶의 변화가 있으려면 예산 확대가 필수”라고 했다. 1988년 도입된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의학적 기준만으로 등급을 분류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비판받아왔다. 박 대표는 인터뷰를 마친 뒤 휠체어를 끌고 농성장의 푸른 천막 안으로 들어가 다시 자리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