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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역 리프트 추락사고 1년 "오늘 내가 죽을 수도..."

[현장] 참사 1년 추모제에서 장애인 탄 리프트 고장으로 멈춰

김시연(staright)
등록 2018.10.19 17:09수정 2018.10.1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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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서울지하철 5호선 신길역에서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하려던 조재범 장애인자립센터‘판’ 활동가가 휠체어 리프트 이용 중 고장 나 고립돼 있다. ⓒ 김시연


"오늘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휠체어 장애인인 조재범 장애인자립센터 '판' 활동가는 19일 아찔한 경험을 했다.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지하철 5호선 신길역에서 조씨를 태운 휠체어 리프트가 운행 도중 계속 덜컹거리더니 도착 지점을 불과 10cm 정도 남겨놓고 아예 멈춰버린 것이다.

바로 직전에 다른 장애인이 이용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리프트가 멈추자 역무원들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결국 조씨는 깎아지른 듯한 12m 높이 계단 위에서 전동휠체어와 리프트에 의지한 채 5분 남짓 불안에 떨어야 했다.

신길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 1년 추모제에서 장애인 탄 리프트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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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0일 신길역 휠체어 리프트 사고 당시 모습. 한영덕씨가 호출버튼을 누르기 위해 계단을 등지고 있다.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제공

 공교롭게 1년 전 바로 이곳에선 한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장애인들이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 휠체어 리프트를 '살인 리프트'라고 부르는 이유다. 조씨 역시 이날 오전 이곳에서 열린 고 한경덕씨 추락 참사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하려고 어쩔 수 없이 그 리프트에 자신의 목숨까지 맡겨야 했다.

조씨는 "리프트가 쿨렁쿨렁 소리를 내며 올라오다 결국 멈춰서 오늘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옆에 있는 역무원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박원순 서울시장이 휠체어 리프트 체험을 약속했는데, 오늘 이 리프트를 탔다면 바로 없애라고 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1년 전 한 장애인의 목숨을 앗아간 신길역 휠체어 리프트는 지금도 건재했다. 계단 바로 위에 있던 호출 버튼 위치가 좀 더 바깥쪽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고 한영덕씨는 지난해 10월 20일 이곳에서 리프트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휠체어와 함께 계단 아래로 추락했고, 98일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 지난 1월 25일 결국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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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서울지하철5호선 신길역에서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고 한경덕씨는 지난해 10월 20일 분향소 옆으로 보이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고 호출 버튼을 누르다 계단 아래로 추락해 결국 3개월여만에 숨졌다. ⓒ 김시연


1년 전 한씨가 이용하려던 휠체어 리프트 바로 위에는 이날 분향소가 차려졌다. 한씨뿐 아니라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리프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장애인 '희생자'들을 기리는 분향소였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유가족들은 한씨의 사망 이후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를 상대로 손해배상과 차별구제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지하철역 휠체어 리프트를 100% 승강기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하며 '휠체어 장애인 지하철 타기' 등 각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박경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이날 "박원순 시장은 지난 2015년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에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1역사에 1동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선언('장애인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했지만 서울교통공사는 16개 역사는 못 하겠다고 한다"면서 "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는지, 협의하자면서 이후 연락조차 없다"고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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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서울 지하철 5호선 신길역에서 열린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장애인들이 리프트 희생자에게 헌화하고 애도하고 있다. ⓒ 김시연



'1역 1동선'이란 휠체어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들이 주변 도움 없이 지상과 대합실, 승강장 등을 승강기를 이용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서울교통공사는 현재 서울지하철 역사 90% 이상이 '1역 1동선'이고 계속 늘려가겠다고 밝혔지만, 마천역, 구산역을 비롯해 5,6,7,8호선 16개 역사는 환기실 저촉, 지상 보도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승강기 설치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죽음의 리프트 방치하는 건 장애인 차별, 모두 승강기로 교체해야"

이날 추모제에 모인 휠체어 장애인 20여 명을 불안하게 한 건 리프트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휠체어 장애인 지하철 타기' 등 장애인 이동권 캠페인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시민의 불편한 시선도 넘어야할 벽이었다(관련기사: "나가! XXX아" 장애인들이 욕먹을 각오하고 전철 탄 까닭).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지난 몇 달간 리프트 불안정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다른 시민들에게 불편하게 뭐하는 짓이냐'는 것이었다, 이런 행사가 아니면 일상에서 보지 못하던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행위 자체가 불편했던 건 아니었을까"라면서 "우리는 리프트 안전성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장애인을 낯선 존재로 계속 분리된 공간에 두는 것, 그래서 장애인은 동등한 권리가 있는 시민이 아니라 그냥 장애인으로만 낙인되는 것, 더 나아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동과 안전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씨는 "모든 시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국가가 차별과 배제의 공간으로 리프트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면서 "우리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 서울시는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거듭 외쳤다.

이날 고장 사고 한 시간 뒤 리프트 AS업체 직원들이 출동했지만, 고장 원인을 찾을 동안 휠체어 리프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사이 멈춘 리프트는 희생자를 기리는 분향소로 변했고 "엘리베이터 100% 설치하라", "살인기계 리프트 철거하라" 등 구호가 적힌 종이들로 도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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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19일 서울지하철 5호선 신길역에서 열린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 1주기 추모제에서 휠체어 리프트 위에 만든 분향소를 지켜보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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