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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빼앗기고서 최종 남은 것 - 나의 몸, 나의 장애  
[기획] 2018년 4월 19일 오체투지, 그날을 말하다⑥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등록일 [ 2018년06월20일 18시25분 ]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안 했어요. 제가 너무 느려서 너무 지체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오체투지 하는 거 보면서 ‘힘들어도 나도 길걸’ 하다가 아니야, 이런 마음 가져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고. 2006년도에 내가 할 땐1) 잘 몰랐는데 이번엔 이렇게 보고 있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깝더라구요. 옆에서 지켜만 봐야 하는 게. 그래서 ‘길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너무 마음이 아프겠다. 휠체어에 앉아서 봐야만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그리고 아직 길 자신이 없는 사람들도 있으니깐 그들과 같이 있는 것도 필요하겠다, 생각했어요. 2006년도엔 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기기엔 너무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10년 전보다 몸의 장애가 심해졌어요. 그걸 인정하는 것도 나한테 필요한 거 같아요. 여러 생각이 교차하더라구요. 같이 기지 못한 미안함도 있죠. 

 

요즘 집에서 빨리 기면 숨이 차요. 기침 나고. 그게 좀 안 좋아요. 3, 4년 전쯤에 폐렴을 한번 앓았는데 그때 입원하고, 그다음부턴 숨이 좀 얕게 쉬어져요. 전엔 노래도 했는데 요즘은 노래를 못 해요. 바람 차가워지면 기침도 많이 나고. 목소리도 변했어요. 그전엔 목소리가 맑았는데 완전 탁한 목소리가 돼버렸어. 

 

병원에서 폐 검사, 기관지 검사했을 때 특별한 이상은 없는데, 허리가 휘어있으니 아무래도 장기가 한쪽으로 눌리기도 하고. 제가 장애는 소아마비인데 기형이 많이 왔어요. 허리 힘이 없으니깐 등뼈가 휘어버리면서 장기가 한쪽으로 몰리는데, 그러면서 신장도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고. 폐도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고. 젊었을 땐 몸에 크게 무리가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목소리도 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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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9일, 오체투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박김영희 대표가 눈물 짓고 있다.

 

여전한 현실에 화가 나 눈물 났다가, 그럼에도 우리는 싸우고 있으니까 

 

2006년도에 할 때는 굉장히 서글펐어요. 그런데 올해는 여러 사안에 대한 구체적 요구를 가지고, 2006년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훨씬 더 조직적으로 준비력 있게 하는 거 보니 우리 활동이 많이 조직화되고 저력을 갖게 됐구나, 성장했구나 싶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아직도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구요. 현실에 화가 나는 거죠. 12년 전에 한 거로 끝났어야 했는데. 저항은 해야 하는데 너무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한 거죠. 알죠. 아마 내가 죽어도 이런 저항은 계속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슬펐어. 이렇게 기거나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세상 만들고자 한 건데, 여전히 울고 있고 여전히 기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세상에 사는 게 슬프더라구요. 그런데 절망의 슬픔은 아니에요. 이렇게 구르고 기어서라도 표현할 수 있고, 우리가 뭘 원하는지 얘기할 수 있으니깐. 이게 우리의 언어죠. 몸으로 하는 언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더 절망이지.

 

이것저것 다 빼앗기고도 결국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 ‘나의 몸, 나의 장애’ 

 

지금까지 활동해오면서 우린 정말 가진 게 없었어요. 빈손이었고, 우리에겐 장애 있는 몸뚱이밖에 없는 거죠. 아무리 요구해도 그들은 들어주지 않고, 그들에 대항할 수 있는 언어도 많지 않고. 투쟁을 할 때마다 경찰은 우리에게서 천막도 빼앗아 가고, 스티로폼도 빼앗아가고, 이불도 침낭도 빼앗아가고, 앰프도 빼앗아가고, 나중엔 길바닥에 우리 몸만 덩그렇게 남겨놔요. 다 뺏어간다고 하더라도 결국 내가 뺏기지 않을 것은 ‘장애’뿐 인 거예요. 그래서 그거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 같아요. 장애가 있는 몸의 저항, 그 몸짓.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밍기적 거리며 기어가면서 요구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투쟁의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기어갈 때, 바닥에 페인트칠한 곳이 얼마나 미끄럽고 하수구 냄새는 또 얼마나 지독한지. 속도가 빨리 안 나니 하수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몰라요. 걷는 사람들은 전혀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느끼죠. 그만큼 장애인의 삶의 위치가 이 사회에서 봤을 땐 정말 느리고 멈춰있는 거 같지만, 그 위치에서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있어요. 그런 것을 이야기해내는 것도 우리의 일이에요. 

 

사실 내 몸을 던져서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게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에요. 옷을 벗는 건 아니지만, 바닥에 내려앉았을 때 너무나 작고 초라해지는 내 모습을 내가 인정하고, 나약해진 나를 마주하는 것. 결국, 운동한다는 것은 그러한 나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내 처절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에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보여주고 싶어요 

 

내 몸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나이가 있어요. 그때 되면 사람들 앞에서 내 몸 움직이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아서 집에 손님 오면 화장실 가고 싶어도 손님 갈 때까지 한 자리에서 꼼짝않고 있어요. 내가 몸을 뭉개면서, 내 손으로 몸을 끌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거죠. 사촌 동생들이 우리 집에 오면 애들이 꼭 내 흉내를 내요. 그러면 작은 엄마나 친척들이 ‘하지 말라’고 야단치는데 ‘그건 해선 안 될 짓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내가 다른 몸이고 이게 부끄러운 거라는 걸 알게 됐던 거 같아요. 애들이 내 흉내 낼까 봐 애들 앞에선 움직이지 않던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우리가 왜 이렇게 오체투지 하는가, 정말 남한테 보이고 싶지 않던 내 모습인데. 휘어지고, 꼬이고, 길 때 뭔가 혐오스러운 거 같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진 않을 텐데. 지금도 꼬마들이 내 흉내를 내요. 지금은 ‘어때, 힘들지?’ 웃으면서 얘기하죠. 

 

활동보조지원, 이동권 등을 요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처절한 몸을 더 보여줘야 해요. 내가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더 알릴수록 내가 나를 더 드러내야 하고, 그 용기를 사회는 나한테 요구하고 있고. 휠체어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장애가 있는 내 몸의 처절함을 보여줘야 하는 것에 한편으로는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사람들한테 내 현실에 대해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보여주고 싶은, 양면적인 마음이 있어요. 외면하고 있는 것을 직시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내가 운동을 해야 하나? 이것도 운동인가? 물음도 들고. 그러면서도 이게 바로 장애라는 것. 그렇게 부끄럽고 챙피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걷는 모습과 내가 걷는 모습이 같아야 할 필요도 없는 건데. 내 장애가 부끄럽다고 여겨온 것은 그렇게 교육받아 왔고 사회가 인식시켜 왔기 때문이잖아요. 

 

엉덩이 한 번 옮기기 위해선 온몸의 마디마디를 움직여야 해요. 그래서 쪼금 옮겼는데, 남들이 1미터 갈 때 나는 10센티미터 가고, 남들이 2미터 갈 때 난 20센티미터 가고, 점점 더 갈수록 간격이 벌어져요. 이게 이 사회에서 나의 위치이구나, 이게 내 몸이구나. 이런 내 몸은 사실 부끄러운 것이 아니예요. ‘부끄럽도록’ 만들어져왔던 거죠. 

 

*각주

1)  2006년 4월 2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소속 장애인 활동가 50여명이 활동보조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 북단 4차선 중 3차선을 점거한 채 노들섬까지 약 500m를 6시간동안 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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