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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몸이 자본주의를 거부한다, 이것은 장애인들의 파업이다
[기획] 2018년 4월 19일 오체투지, 그날을 말하다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정창조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등록일 [ 2018년06월18일 11시35분 ]

 

그날 기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굴러서 갔다. 구를 수조차 없는 사람들은 납작 엎드려 있었는데 비장애인 활동가 서너 명이 그의 상체와 하체를 옮기며 ‘굴렸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그 마지막에 남은 이었다. 박 대표는 척수장애로 혼자의 힘으로만 굴러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날, 서너 명의 활동가들이 그를 ‘굴렸고’, 그는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구르면서 나아갔다. 그의 활동지원사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인 정창조 씨는 활동가들과 함께 자신의 이용자인 박 대표를 ‘굴렸다.’ 서로의 팔의 힘에 의지해 상체를 움직인 후, 그가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를 옮기면 한 바퀴를 구르는 게 됐다. 제일 선두에서 오체투지를 시작했던 박 대표는 어느덧 대열의 맨 끝에 위치해 있었다. 오체투지 다섯 번째 인터뷰는 오체투지 투쟁을 기획하고 그날 광화문 사거리에서 효자로 입구까지 구르면서 간 박경석 대표와 그를 ‘굴렸던’ 정창조 씨가 경험한 4월 19일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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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를 하는 박경석 대표(오른쪽)와 이를 조력하는 정창조 씨(왼쪽) ⓒ최인기
 

- 박경석 : 장애인들의 기어가기 투쟁은 예술 행위이자 파업이다

 

기어가기 투쟁은 한국에만 있던 게 아니라 일본에서 ‘푸른잔디회’1)가 휠체어에서 내려와 계단을 기어오르고 했던, 절실한 투쟁의 표현이었죠. 또 하나는 자신의 몸 자체가 자본주의의 속도를 거부한다는 강력한 표현이죠. 굉장히 예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기어가기 투쟁하는 것에 대해 장애인 그 자신도 심리적 저항감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집회 안 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손 올리는 것(이른바 ‘팔뚝질’)도 저항감이 있잖아요. 그것을 자기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선 싫을 수도 있고, 자기 기호에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반드시 이루겠다’는 요구에 대한 절실함과 강력함이 있다면 방식의 선택과 관련해선 조금의 저항감이 있어도 뛰어넘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지, 하기 좋은 거, 쉬운 것만 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자기 신체를 내보이기 힘들어하는 문제가 있죠. 그런데 만약 내가 연극을 한다고 칩시다. 장애인이 연극할 때 자기 신체를 보여줌으로써 연극에서 추구하는 표현들을 실행하잖아요. 그거하고 이거하고 차이가 뭐에요? 누구는 인생이 하나의 연극이고 드라마라고 그러는데, 드라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그거라면 기꺼이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가 부담된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연극배우가 필요할 때 그런 연기를 하듯, 투쟁하는 사람은 그런 순간에 그런 투쟁을 선택 할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어떤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걸 선택한 거예요. 아예 모르는 사람들 기게 만든 게 아니거든. 그러면 이게 연극 공간에서 자기 몸을 던져 표현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연극하는 사람한테 ‘몸은 내밀한 건데 공적 공간에서 돈 받고 보여주는 것은 거부감이 있지 않으냐’ 질문한다면 그것은 ‘연극배우 왜 하냐’는 것과 똑같잖아요. 안 그래요? 난 이것에만 더 특별한 부담감과 저항감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오히려 최초의 그런 거부감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장애인의 표현과 관련해서 이중적인 태도를 많이 봐요. 연극한다고 하면 기어도 가고 다 해요. 몸이 얼마나 힘들겠어. 그런데 내가 연극하는 배우로서가 아니라 진짜 절실한 생존 문제 때문에 권력과 맞설 땐 안 그러거든요. 내가 힘 있으면 다른 방법을 쓰겠는데 그럴 힘도 없고 내가 가진 건 몸뚱아리밖에 없는데 어쩌겠어요? 기기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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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 하는 박경석 대표 ⓒ최인기
 

지금 정부와 민관협의체가 진행되고 있는데 대화는 해놓고 아무것도 못 얻으면 얼마나 속이 뒤집히겠어요. 대화를 통해 전진할 수 있는 계기는 만들어야지. 민관협의체라는 논의의 형식만을 갖춰버린 것에서 끝나버리는 게 더 화나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갈 수 있는 지점들을 얼마나 더 많이 확보할 것인가, 를 싸우는 지점이고 오체투지는 그에 대한 전술적 투쟁이었죠. 예산 확보,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제대로 된 상, 부양의무자 기준이 이후에 어떻게 폐지될 건가 등. 그런데 사실 그 변곡점은 오히려 패럴림픽 때 효과가 있었어요. 그때 긴다고 하니 장관 나오고 그랬잖아요. 청와대 앞에선 교통체증밖에 더 되나?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포기할 수 없는 투쟁으로 가는 게 더 효과 있지, 바로 성과가 나와서 정리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전 왜 기었냐고요? 기는 거나 굴리는 거나 그건 유형의 문제지 기고 굴려 가는 것도 투쟁이잖아요. 같이 하자고 제안했고 이제야 마음껏 같이 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는데, 그걸 또 피할 순 없잖아요. 피할 수 없는 투쟁과 선택이 있을 때 이를 선택 할 수 있다는 것, 그 투쟁에 힘이 있다는 게 더 중요하고 행복한 거 아니겠습니까? 이건 노동자의 파업이에요. 세상의 속도를 멈추게 하는 위력적인 투쟁이지.

 

- 정창조 : 장애인의 신체가 도시 한복판을 점유하자 자본주의의 시간이 멈추었다 

 

처음엔 계속 말렸어요. 하지 말라고. 이 사람이 하면 정말 다칠 거 같다, 너무 불안해서 하지 말라고 권했는데 분위기 보니 그럴 분위기가 아닌 거죠. 이 사람은 사람들 조직하면서 이 투쟁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최대한 안 다치게, 다칠만한 온갖 곳에 보호대를 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자.

 

사실은 되게 잘 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닌 거야. 내 손 잡고 상체 굴러가면 하체는 그대로 있어. 다리도 같이 옮겨줘야 해. 처음엔 나도 익숙지 않고, 교장쌤(박경석 대표는 노들야학 교장이다)도 익숙지 않으니깐 제일 앞에서 출발했는데 제일 뒤처졌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되게 중증이구나. 나의 이용자인데 잘 몰랐구나. 처음에 나는 정말 이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안 되겠다, 라는 사명감밖에 없었어요. 나한텐 굴러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이 사람 굴러가겠다고 하면은 나는 오늘은 무조건 이 사람 안 다치게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런 생각이 사라지더라구요.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신체와 나의 신체가 맞물려서 움직일 수 있을까, 점점 그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평소 휠체어가 우리 둘을 묶어주는 매개잖아요. 휠체어도 몸의 일부라고 이야기하지만, 휠체어가 없으니 정말 달랐어요. ‘한 바퀴 굴린다, 청와대까지 기어간다’는 작은 목표가 있고, ‘장애해방’이라는 큰 목표가 있는데 그렇게 작은 목표부터 큰 목표까지, 그 목표를 향해서 교장쌤과 몸 대 몸으로 이렇게 많이 움직여본 건 처음 같아요. ‘동지(同志)’가 ‘뜻을 함께한다’는 의미잖아요. 뜻은 굉장히 의식적이고 정신적인 거로 생각하는데, 정신적인 것과 몸이 일원화되어 투쟁을 전개했을 때, 굉장히 강한 상호연결감이 느껴졌어요. 마지막에 효자로 입구까지 왔을 때, ‘우리가 엄청난 걸 해냈구나’하는 환희가 밀려왔죠. 이런 표현은 하기 싫지만, ‘정상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기엔 굉장히 불쌍한 형태의 저항이지만 이 사람들 스스로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굉장히 큰 성취감을 안겨주는 거고, 스스로한테는 비장한 저항이잖아요.

 

서울 한복판을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장애인의 속도만이 허용되는 시간으로 막아버렸어요. 차도 못 지나갔고. 그 과정에서 자기 신체를 저항의 방식으로 드러냄으로써 자본주의적 시간성을 막아버렸는데, 그 자체로 얼마나 상징적이고 저항적인 사건이었는가. 더구나 한 개인이 아니라 77명의 장애인이 동일 목표를 가지고서, 하지만 다양한 몸짓으로, 다양하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그런 식으로 기었던 것 자체가 굉장히 가슴 뜨거운 혁명적 감정을 분출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저도 처음엔 ‘교장쌤이 이렇게 중증이었구나, 다치면 안 돼’만 고민하다가 나중엔 이건 정말 중요한 저항이다 싶었던 거죠.

 

평소에 이 사회에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속도를 가진 사람들이 도로를 점거하니깐 공간의 시간성이 바뀌었어요. 광화문에서 효자로 입구까지는 ‘4분 거리’에요. 내비게이션에 치면 ‘4분’이라고 나와요. 이건 비장애인 중심으로 거리감이 형성된 건데 그 공간에 새로운 신체성들이 들어오면서 시간성이 바뀐 거죠. 그 순간 거기에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여기는 ‘두 시간 반’짜리가 되어야 해요. 사실 시계로 측정가능한 시간성은 인간이 고안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 시간은 절대적인 것, 자연적인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곤 해요. 그 시간성이 인간의 일상과 행동, 타자들과의 만남, 심지어 공간까지도 모두 통제하거든요.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이 도리어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배하는 거예요. 다수자의 기준에 맞춘 이 시간성이 일반적으로 전 사회에 적용되면서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대한 효율적 착취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구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비장애인들의 효율화된 시간처럼, 그리고 노동자들에 대한 절대화된 착취분의 시간처럼요. 노동자들의 파업이란 어떤 차원에서 보자면 이 시간성에 대한 반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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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조 씨가 오체투지하는 박경석 대표를 조력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도로를 점거하는 것, 거기에서 장애인의 속도로 기어가는 것 역시 파업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시간성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라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오체투지를 통해 급박하게 이루려는 목표들만큼이나, 이 행위 자체가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해요. 장애인들의 오체투지란 그 자체로 기존의 시간성을 넘어선 새로운 시간성을 재창조하는 행위거든요. 그때 어떤 외국인이 양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면서 응원하는데 그들 눈에도 우리가 불쌍하게 보이지 않는 거예요. 장애인들이 투쟁 조끼 입고, 피켓 들고 깃발 들고 기어가는 이 장면이, ‘기어가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장애인들과 전혀 달라 보였던 거죠.

 

한 투쟁이 기존 구조에 전면적으로 저항하려면 일단은 그 구조를 마비시키는 게 굉장히 중요한 투쟁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 투쟁이 유난히 자본주의의 시간성에 반하는 투쟁을 많이 하는 것은 자신들의 시간성이 통용되는 공간을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어서가 아닌가. 왜냐면, 지하철이나 버스 탈 때 내비게이션엔 30분이면 간다고 뜨는데 교장쌤과 가려면 최소한 1시간은 잡아야 해요. 그래서 이 시대가 가진 착취의 시간성, 차별의 시간성, 억압의 시간성이란 것을 이 사회에서 가장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시간성으로, 신체적인 불리함―물론 사회적 구조 때문에 그렇게 된 신체죠―을 가진 사람들의 시간성으로 바꿔보는 것은 이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 방식이라고, 큰 틀에서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어떤 한 공간의 시간성을 바꾼다는 의미에서 파업과 비슷해요. 파업도 그 착취의 시간을 멈추는 거잖아요. 개별 파업의 경우엔 자신의 착취분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면서 한 공장의 생산라인을 멈추는데, 총파업 단계에 오면 사회 전체를 바꾸기 위해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마비시키죠. 장애인의 투쟁도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그것을 전면적으로 바꿔보고 싶다’는 요구이기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개별 파업의 속성도 갖고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이건 혁명을 위한 총파업의 연습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오체투지 후 활동가들 스스로 성취감을 많이 느끼고 말할 수 없는 끈끈함이 생긴 거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또 오체투지할 정도로 강렬한 투쟁 의지를 갖고 있지만 평소엔 잘 드러나지 않던 사람들, 그 77명이 모두 주역이 된 거 같아서 굉장히 좋았어요. 조력자들까지 포함해서요.

 

* 각주

1) 푸른잔디회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활동한 급진적인 일본뇌성마비장애인단체로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는 버스를 점거하고, 휠체어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기어가는 투쟁, 나체 시위 등을 하여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우리의 신체성은 자본주의를 거부한다”면서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으로 바라보는 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비타협적인 노선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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