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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쓸모없던 내가, 장애운동으로 깨어났어요
[기획] 2018년 4월 19일 오체투지, 그날을 말하다③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등록일 [ 2018년06월08일 12시06분 ]

 


광화문 농성 접으면서부터 계속 이야기 나왔거든요. 기어가기 투쟁하자고. 평창 패럴림픽에서도 그런 이야기 했었잖아요.(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통합을 위한 권리 및 복지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패럴림픽 개회식 날 기어가기 투쟁을 하려 했으나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면담 성사로 미뤄졌다) 그래서 기긴 기어야겠다 생각했지만… 전에도 경기도청 앞에서 기고, 2012년도에 종각역 쪽에서도 긴 적 있어요. 그땐 2~30분 짧은 거리여서 간단했는데 이번에는 각오가 남달랐어요, 사실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성장 방문해서 농성 중단하고 민관협의체 꾸렸지만 진행 상황이 녹록진 않잖아요. 되게 실망스러운 부분도 많고, 실제로는 현장 투쟁에서 계속 목소리 내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에요. 시기적으로 봤을 때 420 때 오체투지는 꼭 해야 했던 거죠.

 

보통 비장애인 중심으로 오체투지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장애인이 긴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도 다른 거거든요. 이건 길 수 없는 사람들이 기는 거니깐. 박경석 대표님이 설날 때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번 기었잖아요. 그때 너무 속상하더라구요. 짧은 거리지만 대리석 바닥이 얼마나 차가워요. 대표님이 민관협의체에 총대 메고 들어가서 회의하고 있는데 누구보다 절실할 거에요. 말도 안 통하는 공무원들과 이야기하는 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대표님도 420 때 길 거라고 생각했고 한 사람이라도 더, 몸으로 우리의 절박함을 표현하는 게 말로 백 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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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9일,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 구걸하는 장애인, 그의 몸과 내 몸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요

 

제가 말초신경이 마비되어서, 경추랑 요추가 마비되다 보니 기는 건 젬병이에요. 팔도 다 안 올라가고.(두 팔을 들었을 때 손끝이 이마 정도밖에 안 온다) 어릴 때 공기도 못 했어요. 손을 접지를 못해서. 그래서 나 빼고 하고. 제가 팔 기능이 약해요. 오체투지 해보니 내가 정말 사용하지 못하는 게 많구나. 전동휠체어 탈 땐 문제 없었거든요. 이렇게 길 때가 없잖아요. 집에선 앉아서 엉덩이로 끌지. 땅에 엎드리니 왼쪽 팔은 의지하는 정도고 오른쪽 팔에 힘을 좀 더 주나 봐요. 그래서 오른쪽 팔이 완전 까져서 지금도 만지면 아파요. 하필 거기 아스팔트가 까칠까칠해서 시멘트에 긁혀서 상처가 오래갔어요. 제가 이 오른쪽 팔꿈치를 많이 쓰더라구요. 집에서 누웠다 일어설 때도 여길(오른쪽 팔꿈치로 땅을) 짚고 일어나고.

 

저는 박경석 대표님이 그렇게 굴러야 하는지 몰랐어요. 처음 봤어요. 몸은 괜찮은지 모르겠네. 욕창은 안 생겼나 몰라. 분명히 까였을 거야. 반 이상 지났을 때는 박경석 대표보다는 빨리 가야겠다. 그런 게 챙피하더라구요. 맨 꼴찌로 남은 게.(웃음) 저는 (250m 중) 150m는 들것에 들려 갔을 거예요.(뒤처진 몇몇 사람들은 중간에 담요로 들어서 옮겼다) 제가 체격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더 힘들었나 봐요. 내가 진짜 뚱뚱하구나.(웃음)

 

사실 제가 재작년부터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어요. 후유장애라고 하잖아요. 소아마비 장애 가진 사람은 갱년기, 40~50대 되면 기능이 확 떨어져요. 기계 녹스는 것처럼 사람 몸도 기능이 확 녹스는데 그러면서 장애가 더 심해지는 거예요. 갱년기에 후유장애까지, 스스로 고민이 많아요. 여기서 더 나빠지면 이제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아니야? 그나마 좀 할 수 있었는데. 그런 고민을 하는 시기죠.

 

요즘도 가끔 보이지만 전에 많았잖아요. 구걸하는 장애인. 그 사람들 보면 되게 외면 많이 했어요. 그의 몸과 내 몸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잖아요. 이 사회에선 ‘정상’에 맞지 않으면 잘라내고, 쓸모없는 몸으로 치부하잖아요. 사회가 그런 식으로 계속하니깐 당사자인 장애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럴 때 있어요. 어디 가서 짐을 날라, 그러면 내가 가면 피해잖아. 경조사 있을 때도 내가 가서 뭘하겠어? 쉽게 말해 나란 존재를 스스로가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 각인하는 거죠. 항상 내 몸이 정상이 아닌 건데, 더구나 그런 내 몸을 보여준다는 게 얼마나 쪽팔려. 그런 부담 때문에 사실 전에도 잘 안 길려고 했어요.

 

- 우리 삶은 아직도 이 바닥에서 헤어날 수 없구나

 

오체투지 시작할 땐, 빨리 기어서 ‘19일을 보내자’ 생각했어요. 그게 끝나야 19일이 끝나니깐. 문화제하고 자면 내일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조금 기다 보니 여러 생각이 나더라구요. 우리가 언제까지 기어야 하나, 나도 사실 (기어가는 모습) 보여주기 쪽팔린데, 모든 사람이 볼 거 아니에요. 화도 났다가 눈물도 났다가, 이렇게 했는데도 이거 안 바뀌면 진짜 열 받는 거다. 그러면서 갖은 생각들이 들더라구요. 우리가 진짜 5년 동안 농성했는데 대통령 만나야 해, 돈의 잣대로 이렇게 하는 건 말이 안 돼. 이거 천 번이라도 더 해야 해. 오기도 생기고.

 

아스팔트를 제일 많이 봤어요. 그렇게 아스팔트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었잖아요. 여기는 왜 이렇게 아스팔트가 까칠까칠해? 우리의 투쟁도 이렇게 거칠은 거구나, 우리는 이렇게 거칠을 수밖에 없구나. 우리의 삶이 이렇구나. 우리의 삶은 아직도 이 바닥에서 헤어날 수 없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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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숙 소장이 오체투지한 다음날인 20일,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며 경복궁역 앞 사거리를 막아서자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 “휠체어 때문에 그래”, 수시로 듣는 말

 

제가 장애가 있는데 평상시 생활할 때 보면은 사람들이 얕보잖아요. 현장에서 사람들이 또 우습게 볼까 봐.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경찰도 그렇고. 그래서 투쟁현장에서 더 날카롭게, 화내는 거 같아요.

 

출근할 때 9호선 급행 타는데, 아침 8, 9시에 9호선 급행은 정말 죽음이거든요. 탈 때마다 꼭 한 소리씩 들어요. 이 아침에 장애인이 왜 휠체어 탄 채 지하철 타냐, 휠체어석 있는데 왜 거기로 안 타냐는 거에요. 거기엔 이미 비장애인들이 서 있어서 탈 수도 없는데. 그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30대, 40대 초반 남성이에요.

 

내 휠체어가 안 보였을 수도 있지만, 꽉 차 있어도 무조건 사람들이 밀고 타요. 그런데 웃긴 게, 비장애인들로 꽉 차 있으면 더는 안 타. 승차할 수 없으면 그다음 차 타면 되는데 휠체어 때문에 못 탄다고 하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더라구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 안 했을 때는 ‘그래,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이걸 타느니 힘들어도 돌아서 가지.’ 항상 기본적으로 어릴 때부터 그런 게 깔려있으니 내가 쪽팔렸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저 사람한테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해? 사람들이 되게 많았거든요. 제가 “왜 내 탓을 하느냐, 9호선에 칸수 늘려달라고 해라” 소리쳤어요. 9호선이 6량짜리가 있고 4량짜리가 있어요. 4량짜리가 엄청 복잡해요. 사람들 인식이, 휠체어가 아니라 칸수를 문제 삼아야 하는데 절 문제 삼는 걸 보고 아직 멀었구나. 그래서 전장연 활동을 매력적으로 보는 거예요. 아마 이런 활동 안 했으면 쪽팔려, 재수 없어, 날 탓하니 기분 나쁘겠지만 (말은 못 했을 거예요).

 

“휠체어 때문에 그래.” 수시로 느끼죠. 무조건 장애인은 뒤로 가야 하고 밀려야 하고, 그게 여전해요. 사회는 ‘장애인 먼저’라고 하면서 그걸 ‘배려’라고 하는데 배려가 아니라, 자기네들이 차별하니까 그러는 거죠. 전 그걸 원하지 않아요. 똑같이, 지하철 탈 때 순서 좀 지키고. 장애인 무시하는 게 바탕에 아주 세세하게 깔려있어요. 거기에 저항하는 이야기 하면 아주 몰상식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이 사회가 언제쯤 바뀔까요. 사람들은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전 모르겠어요. 약자를 배려하는 척하는 것뿐이지, 실제로 그 안은 안 변해있더라구요. 30대 중반이면 되게 젊은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에게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게 저는 무섭고 소름 끼쳐요. 저런 사람은 언제 변할까.

 

그래서 전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장애인들이 계속 숨어만 살다 보니 장애인의 몸을 본 적이 없겠죠. ‘정상’이라는 비장애인 중심의 몸만 보고. 그렇지 않으면 혐오스럽게 보고. 그런 의미에서 오체투지도 큰 의미라고 봐요. 장애인이 어떤 몸으로 살고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보여야 하는데. 항상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진짜 열심히 해서 지금 조금이라도 변화시키지 않으면, 바꾸지 않으면 평생 못 바꾼다.

 

오체투지하고 그 날밤에 청와대 앞에서 잤잖아요. 너무 추운데 갈 데가 없어서 파출소 들어갔어요. 세시까지 앉아있다 나왔는데 몸이 너무 아픈 거야. 땅에 누울 수가 없어요. 몸이 땅에 닿으면 너무 아파. 똑바로 누워있으면 양쪽이 아프고 옆으로 누우면 그쪽이 너무 아프고. 어깨부터 다 얼얼하고.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그런데 다음날 잊어버리고 또 그렇게 경찰이랑 싸웠네. 깔깔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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