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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 없는 몸이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리다
[기획] 2018년 4월 19일 오체투지, 그날을 말하다②
박길연 민들레장애인야학 대표
 
등록일 [ 2018년05월31일 17시46분 ]

 

제가 류머티즘 최중증이에요. 발끝에서 손가락끝, 그냥 있어도 통증이 와요. 관절이 다 마모되어서 전 관절이 없어요. 발목, 무릎, 손가락, 발가락, 고관절 다. 허리는 협착했다가 디스크까지 같이 있고. 딱딱한 바닥에 앉아있지 못해요. 그래서 류머티즘 관절염은 ‘부자병’이라고 하잖아요.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정도의 스트레칭만 해야지 관절 움직이는 일 하면 안 돼요.

 

집에선 방바닥 미끄러우니 방석 위에서 허리 조금만 움직여도 밀려요. 그런데 아스팔트 바닥은 밀리지도 않고, 제가 팔에 장애랑 통증이 있고, 게다가 욕창까지 있으니. 허리도 휘어져 있고. 다리도 굽어져 있는 몸이에요. 제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 자세(박길연 대표는 발밑에 높은 발판을 받쳐 무릎을 최대한 굽힌 채 앉아있다)가 다리를 펼 수 있는 최대치에요. 다리가 안 펴지니깐 발판을 설치해놨는데, 그 아래로는 다리가 안 내려가요.

 

내가 휠체어에 앉아있을 때하고 미끄러운 바닥에 앉아있을 때, 아스팔트에 앉아있을 때, 나의 행동반경은 굉장히 달라요. 아스팔트를 긴다는 것은 내가 내 몸에 대해 많은 걸 포기하고 내려가는 거죠. 최선을 다해야하는 상황이었죠. 그날은 정말 죽기 살기로 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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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9일, 오체투지 도중 쉬고 있는 박길연 민들레장애인야학 대표
 

- 기어가고 싶었다, 조금이라고 가고 싶었다

 

2009년도에 예원시설(과거 인권침해가 일어난 장애인거주시설) 때문에 농성하면서 긴 적 있어요. 한 시간 기었는데 1미터도 못갔더라구요. 그때 내가 정말 할 수 없는 것은 아스팔트에서 기는 거다, 이건 앞으로 죽어도 안 해야지. 정말 안 한다고 했었어요. 그래서 제발 오체투지만은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야길 듣고, 하… (한숨) 민들레(장애인야학) 동지들이 굉장히 중증장애인이잖아요. 그런 분들이 함께한다는데, 해야죠.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는 연습이라도 할까. 그런데 아스팔트에서 연습을 어떻게 해요.

 

사실 ‘어떻게 기지?’, ‘어떻게 내 몸을 최대한 안 보이게 하지?’ 고민했는데 방법이 없더라구요. 집에선 어쩔 수 없이 내가 살기 위해 기지만, 공개적으로 나의 어떤 몸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주시하는 것이 좋지는 않죠.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제가 집에서 나올 때 제일 두려운 게 타인의 시선인데, 약간 몸의 다름이 보이면 그에 대해 시선이 가잖아요. 내가 그렇게 바닥에 엎어졌을 때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게 싫은 거죠.
 
또 누구든지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피하고 싶지, 부딪히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이건 내가 정말 하기 힘든 걸 선택해서 하는 거잖아요. 기어갈 때, 내 몸이 이렇게 안 움직이는 걸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 크죠. 너무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렇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쨌든 땅바닥에 내려와선 열심히 바둥거렸어요. 길려고 바둥거리다가 고개 들어 앞을 보는데 다른 동지들은 굉장히 떨어져서 앞서가더라구요. 왼쪽으로 고개 돌리니 명호, 은아 동지가 바둥거리고 있어요. 그리고 박경석 대표 굴러가는 거 보고, 명호, 은아 동지 보면서, 나를 생각하면서, 눈물이 많이 나더라구요. 챙피한 줄도 모르고 울었어요. 너무 서글펐고 화도 났고. 동지들이 우리 곁을 떠나지(죽지) 않는 이상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선글라스 안에서 소리 내어 통곡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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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연 민들레장애인야학 대표
 

오체투지 전에 오른쪽 팔꿈치가 약간 부어오르는 증상이 있어서 움직이는데 통증이 많았어요. 주위에선 제 팔이 아픈 줄 아니깐 계속 포기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미 한 번 내려온 이상 포기할 수 없다, 오체투지 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 고민하고 내려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내려오는 게 장난이 아니었잖아요. 우리한텐 이유와 목적이 있었어요. 그거에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도록 끝까지 가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켜야 한다고, 그 생각만 났어요. 이형숙 동지가 팔에다 뭘 감고 있었나 봐요. 정 길거면 이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걸(휴대용 야외방석) 팔에 감았죠. 조금이라고 가고 싶었어요.

 

제가 너무 뒤처져 있었는데 대열은 맞춰서 가야 하니 사람들이 나를 드는 것에 대해서 저한테 계속 부탁을 하는 거예요.(뒤처진 몇몇 사람들은 중간에 담요로 들어서 옮겼다) 그런데 전 그 자체(사람들이 드는 것)도 너무 싫고 화가 났어요. 느리고 못가지만, 내가 갈 수 있는 데까지 피가 나고 살이 떨어져도 기어가겠다고 내려왔는데, 그것마저도 못하는 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듯 가야 하는 게 너무 화가 났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 주는 것도 싫었고. 그러나 제가 고집 피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굉장히 복잡했어요. ‘내가 왜 내려왔지?’라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

 

제가 지금은 앉아서 팔도 움직이지만, 십몇 년 전에는 아예 누워있는 와상장애인이었어요. 손 하나 까닥 못하고. 내 손으로 밥도 못 먹고 내 얼굴을 모기가 물어도 쫓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중증와상으로 살면서 경험했기에 활동보조서비스에 대해선 예민해요. 너무 필요도를 느끼니깐. 내가 (오체투지) 하다가, 아닌 말로 더 다쳐서, 더 장애인이 되더라도 활동보조제도가 있다면 그에 맞춰서 나는 또 살아갈 수 있으니깐. 이후에도 몸은 진행형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했어요. 그런 마음 아니었으면 포기했을 거고 안 내려갔을 거예요. 제가 되도 않게 덤비는 성격이잖아요. 

 

다음날 행진하다가 경찰한테 제압당하면서 지금 팔을 못 써요. 팔꿈치가 더 안 좋아졌죠. 깁스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후회는 없어요. 그렇게 힘들었지만, 그런 분노가 있고 서러움이 있었지만 내가 오체투지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렇게까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중증인지 몰랐다며 우신 분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통증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몸을 움직여서 덤비니깐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구요. 몇 년 전부터 외로울 때가 있어요. 나는 정말 너무 아픈데 그런 거 이야기하면 ‘에에-’ 그러는 거 있죠. 나는 아프다고 표현하는데. 그래서 한 2년 전부턴 이야기해요. 나도 아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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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 도중 사람들이 박길연 대표를 들어서 옮기고 있다. Ⓒ최인기
 

- “지켜보는 동지들 마음도 많이 힘들었을 거에요”

 

기어가는 게 중증장애인에겐 굉장히 힘든 수위의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기어가는 것은 속된 말로 쪽팔리는 거거든요. 나 같은 경우엔 휠체어 탔을 땐 힘 있어 보이고, 한편으로 이걸 무기로 봐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오체투지는) 내가 이걸 다 치우고 내가 갖고 있는 장애, 그 자체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거죠. 나는 그래요. 내가 그나마 보조받고 있던 보장구와 활동보조, 모두 제거하고 혼자서 투쟁하는 거잖아요.
 
만약 아스팔트 같은 곳에서 활동보조도 없고 보장구도 없다면 나는 살 수 있을까. 살 수 없죠. 그랬을 때 아득함, 참담함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휠체어 타니 솔직히 살 거 같더라구요. 날개 단 기분이었어요. 그만큼 휠체어 탄 삶에 익숙해 있었고, 활동보조랑 보장구 없던 삶이 굉장히 가슴 아프게 남아있는데 지금의 삶 때문에 잊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그래, 여기서 또 다른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지금의 삶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삶이 윤택해지겠구나.

 

최중증으로 살았던 나의 삶이 있었고, 활동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주위를 돌아보게 되면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게 됐죠. 그렇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알게 되면서 저항하며 가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국가가 책임질 수 있도록,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하지 않나.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복지도 가만히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만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그렇다면 하자. 불편함은 있지만 그래도 (밖에) 나올 수 있으니깐. 이렇게 하고 있잖아요.

 

오체투지를 기획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요. (그들과) 함께한 투쟁이었어요. 만약 제가 지켜보는 사람이었더라면 그 마음을 오랜 괴로움으로 가져갔을 거 같아요. 기는 게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지켜보는 사람들보다는 마음이 편했을 거 같다고 생각해요. 

 

다시 또 할 거냐고 묻는다면 당연한 거 왜 물어요, 라고 할 거 같아요. 우리가, 기획하는 동지들이 ‘해볼까’가 아니라 많은 고민 끝에 0.1%라도 결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해서 하는 거라면 당연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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