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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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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더 이상 개발할 땅이 없는 서울시가 지하세계 개발에 나섰다. 지하도로는 그 신호탄이다. 작년 10월 내가 사는 동네(영등포구 양평동)에 터널의 매연을 뿜어내는 굴뚝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회의에 참석했다가 처음 지하도로의 존재를 알았다. ‘지하도로’라기에 흔한 지하보도 수준을 상상했으나 완전한 오산이었다. 서부간선도로는 지하 50m, 제물포터널은 지하 80m 아래에 뚫리고 있다. 인구 천만의 대도시 땅속에 10㎞의 긴 터널을 뚫는 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란다. 두 터널이 교차하는 이 지역엔 세 개의 매연 굴뚝이 들어설 예정이다.

 

주민들은 발파로 인한 소음과 진동, 분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아파트 집집마다 전등이 흔들리고 문이 덜컹거리는데도 서울시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한다. 3월, 주민 비상대책위원회에 들어갔다. 생업이 따로 있는 주민 대여섯이 일요일마다 모여 회의를 하고 나면 한숨이 난다. 공사를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고, 싸워야 할 대상이 거대한 건설자본이란 사실도 두렵다. 1조원의 국책사업이 피해지역 주민들만의 문제로 비치는 것도 억울한데, 설상가상으로 주민들의 관심마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상심하고 있던 때에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이 쓴 대한민국 재난연대기 <재난을 묻다>를 펼쳤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이야기! 재난이 나에게 말했다. 피해 입은 자가 아니라면 누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싸움을 시작할 것인가.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는 설계 단계부터 예비되었다. 단체장의 치적을 위해 공사 기간이 축소되고, 비용 절감을 위해 화재에 취약한 전동차가 도입되며, 운영비 절감을 위해 1인 승무원제가 결정된다. 화재는 우연이지만 참사는 필연이다. 전동차는 불쏘시개가 되어 순식간에 유독가스를 배출하는데 승무원은 혼자서 운전하랴 교신하랴 정신이 없다. 그날 아침 9시50분, 대구지하철 1호선 1080호에 타고 있던 무고한 시민 192명이 불에 타 희생되었지만, 현장 종사자 몇 사람만 처벌되었을 뿐 이 모든 참사를 설계한 진짜 책임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2013년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의 생존자는 자신들에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이유가 ‘복종’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틀간의 제식훈련으로 ‘생각하기’를 멈추었을 때, 교관은 학생들에게 ‘바다로 일보 전진’을 반복해 명령했다. 바닷물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학생들은 애써 두려움을 누르며 발걸음을 떼었다. 그때 파도가 쳤다. 열여덟살의 고등학생 다섯명이 희생되었다. 캠프는 3차 하청업체였고, 교관들은 자격도 경력도 없는 임시직이었다. 진상규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던 유가족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부패의 사슬 앞에 끝내 주저앉았다. “잊어야 살겠더라.” 그들은 그렇게 재난을 묻었다.

 

저 재난들이 말한다. 너무 늦었다고 질문을 포기하거나 축소시킬 때, 우리는 재난을 향해 ‘일보 전진’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재난이 묻는다. 지하도로는 꼭 필요한가. 자동차는 마구 찍어내면서, 도로는 마구 뚫어대면서, 교통량은 언제 줄이겠다는 것인가. 자동차를 줄이려면 자동차를 규제하면 된다. 지하도로를 뚫으면 환기구든 출입로든 매연은 뿜어져 나올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분명 사고가 난다. 지하 80m 아래 도로가 사고에 취약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나. 아니, 우리는 그것을 감히 상상할 수나 있는가. 대답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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