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이 군형법 92조의6(추행죄)를 위반했다는 사유로 동성애자 군인을 줄줄이 색출해 처벌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가 복수의 동성애자 군인으로부터 제보 받은 내용에 따르면, 육군 중앙수사단은 소셜네트워크(SNS) 상에 현역 군인이 동성간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게재한 것을 확인하고 지난 2월부터 동성애자 군인을 찾아내는 수사를 진행했다. 군인권센터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이러한 수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가 파악한 중앙수사단의 수사 대상은 40~50여 명이며, 이중 20~30여 명이 군형법 92조의6으로 입건될 예정이다. 군형법 92조의6은 동성 군인간 합의에 의한 성행위(항문성교 및 기타 추행)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성소수자와 인권단체는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범죄화하는 조항이라고 비판해 왔다.
수사 과정도 반인권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중앙수사단은 동성애자 군인의 휴대폰을 강제로 빼앗아 분석하고,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에서 또 다른 동성애자 군인을 지목하도록 강요하는 식으로 동성애자 군인들을 색출해냈다. 동성애자 군인들이 진술을 거부하면 동성애자임을 밝히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수사를 마친 동성애자 군인들에게도 수사관들은 동성간 성행위를 시인하는 진술서를 수차례 요구했다. 군인권센터는 중앙수사단이 게이들이 이용하는 데이트 앱에 위장 잠입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한 정황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중앙수사단은 수사 과정에서 동성애자 군인들의 사적인 성생활을 추궁하며 동성애자 군인들에게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줬다. 수사관들은 수사를 받은 군인들이 동성애자라고 지목한 다른 군인과의 성관계 여부, 성관계 체위, 사정 위치, 콘돔 사용 여부 등을 심문했다. 야동 취향, 민간인과 성행위 횟수, 첫 경험 시기 등 수사와 상관없는 성경험도 캐물었다. 한 수사관은 “이번 일을 계기로 성정체성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다”는 등 성소수자 차별적인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육군은 군 복무 중이라 도주, 증거 인멸 우려가 없는 동성애자 군인에게 13일 오전 9시경 체포 영장을 발부하는 등 동성애자 군인의 정당한 방어권을 침해하기도 했다.
국방부의 ‘부대관리훈령’은 동성애자 병사의 평등 취급, 동성애자 식별 활동 금지, 동성애자 병사에 대한 사생활 관련 질문 금지, 동성애자 입증 취지의 관련 자료 등 제출 요구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수사단은 수사 과정에서 이러한 훈령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두고 군인권센터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단지 피해자들이 동성애자란 이유로 군형법 92조6을 적용하기 위해 성관계 사실을 자백하게 만든 것”이라며 “육군의 수사는 통상적 수사를 넘어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수사의 목적이 동성애자 색출에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라고 꼬집었다.
군인권센터는 “현행 법률상 동성애자가 군인이 될 수 없도록 금지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으며, 이들이 군의 기강이나 지휘체계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끼친 사실도 없다”라며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나라를 지켜온 부하들을 두려움에 떨며 죄인 취급을 받게 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은 더 이상 육군을 지휘할 자격이 없다”라고 규탄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번 사건에 대해 비팃 문타폰 유엔 성소수자 인권 특별 조사관의 방문 조사를 공식 요청하고, 유엔인권이사회에 긴급청원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육군 측은 13일 입장자료를 통해 동성애자 군인의 군형법 92조의6 위반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하며 “군은 군 기강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동성 성관계를 군형법상 '추행죄'로 처벌하고 있다. 앞으로도 육군은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기 위해 군기강 문란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의거해 처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군인권센터 등이 제기한 장 총장의 수사 지시, 강압적인 수사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갈홍식 기자 redspirits@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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