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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지껄 도서관,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책읽기의 즐거움

피치마켓 ‘발달장애인 독서교실’ 견문기
2016년08월04일 20시55분
 

왁자지껄한 도서관이 있다. 매주 일요일 서대문구에 위치한 이진아기념도서관의 지하 1층 다목적실에서는 책 읽는 소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로 가득하다. 도서관은 조용하게 ‘책을 읽는 곳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적잖이 당황할 수도 있겠다. 심지어 책을 읽을 수가 없다고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그 왁자지껄한 소리는 단순히 도서관 불청객들의 떠드는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소리는 바로 책을 읽고 옆에 앉은 멘토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발달장애인들의 목소리들이다.


지난 5월 중순부터 발달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드는 소셜벤처 피치마켓에서는 ‘발달장애인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13세에서 20세 초반 사이의 발달장애인 청소년들과 대학생 멘토들이 참여하는 이 독서교실은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일들이 일어난다.


회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피치마켓(PEACH MARKET)’은 정보 접근성의 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피치마켓은 정보가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서 질 좋은 재화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을 이르는 말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등록된 발달장애인은 약 20만 3천 명이며 경계선급 지적장애인의 수까지 합산하면 100만 명까지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 초중고에서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들이 통합교육을 받고 있으며 발달장애인은 눈에 띄든 띄지 않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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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마켓

그러나 발달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출간되는 책들의 대부분은 빈번하게 수식어를 사용하고 문장의 길이가 상당부분 길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하나의 신문 기사를 읽고 그 기사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10% 내외로 밝혀진 바 있다. 소위 문맹률 1%대를 자랑하고 있는 한국에서 이 수치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만한데 초중고, 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하나의 글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앞뒤 문맥을 유추하여 전체 맥락을 파악하거나 부차적인 정보 자원(이를테면 인터넷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을 통해 글을 이해한다. 반면, 비장애인들과 다른 인식체계를 갖고 있으며 정보 자원의 접근성이 낮은 발달장애인들은 인지능력 또는 학습능력이 낮아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곧 발달장애인들에게 독서의 기회 박탈로 이어진다.


피치마켓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발달장애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더 나아가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출판하고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9월 중순쯤에는 세 번째 책, 『알퐁스 도데 단편선』(가제)이 출간될 예정이며, 현재 독서교실에서는 이미 출간한 O. 헨리의 세 단편을 묶은 『O.헨리 이야기』를 읽고 있다.


현재 2기째 운영되고 있는 발달장애인 독서교실은 상당히 시끌벅적하다. 책을 읽는 소리, 이야기하는 소리 등등 눈을 감고 그 소리들을 듣다보면 마치 시장골목 한복판에 서 있는 듯 한 낯선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 독서의 역사에서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 낯선 풍경은 곧 낯익은 풍경으로 변한다. 불과 100여 년 전 조선에서는 책을 읽고 말하고 듣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한양 저자거리의 한 구석에서는 종종 소설을 읽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소리를 내어가며 대중들에게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을 가리켜 ‘전기수(傳奇叟)’라고 한다. 전기수는 글을 읽을 수 있는 문해력이 있어야 했으며 감정이입과 연기를 곁들여 책을 읽는다. 그밖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 맛깔 나는 묘사, 적재적소의 긴장과 이완, 눈물을 찔끔 흘리게 하는 내러티브……. 이것들이 전기수가 갖춰야할 기본 덕목이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한글이 창제되고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문자권력’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양반들은 한글을 부녀자들 또는 아이들이 자주 사용한다고 해서 ‘암클’이나 ‘아햇글’이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지배권력의 문자였던 한문을 계속 써왔다. 또한 민중에게도 한글은 그렇게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자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대부분 시간을 농사일이나 생계유지에 매달려야 하는 마당에서 따로 시간을 할애해 언문을 익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민중들이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저자거리에서 전기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민중들은 전기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때 주로 읽혔던 소설들로는 춘향전이나 흥부전과 같은 고소설 따위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소설들은 사람들에게 자주 읽혔는데, 흥미로운 점은 같은 이야기라도 때와 장소, 그리고 모여 있는 청중에 따라 내용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전기수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조선의 엔터테이너였다. 엔터테이너의 특성상 전기수는 청중의 반응을 늘 살필 수밖에 없었는데 어제 청중의 호응이 좋았던 대목이 오늘은 별 반응이 없다면 즉시 이야기의 강약을 조절하거나 내용까지도 서슴없이 바꾸었다.


이야기의 변용은 전기수만의 권한이 아니었다. 오히려 청중이 이야기를 이끄는 셈이었다. 청중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간간이 추임새, 이를테면 “아이고, 저 나쁜 변사또.”라든지, “맞아 맞아. 나도 저랬지.”라는 말들을 툭툭 던지고 전기수는 잽싸게 그 반응들을 파악해서 이야기를 바꿔나가는 것이다. 즉 전기수와 청중은 하나의 이야기만을 소비했던 것이 아니라 서로 호응을 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했던 것이다. 요컨대 조선시대 민중의 책읽기는 특정한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고 책을 통해 너와 나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소통의 장(場)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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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마켓
 

소리내어 읽기, 음독(音讀)은 오늘날에도 어린이들의 구연동화의 형태로 남아 있다. 한편으로 근대에는 도서관이 생겨나고 폐쇄된 공간에서 책을 읽는 행위인, 묵독(默讀)이 독서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음독(또는 공동체적 독서) = 교양 없는 행동’으로 굳어져갔다. 독서는 점점 개인의 행위로 좁혀졌고 문자권력이 달라붙었다. 사람들의 지적수준은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건 못하건 간에 어떤 책, 어떤 글을 읽고 있는가에 따라 유식자와 무식자가 판별되었다. 양적인 측면도 쓸데없이 중요해진다. 즉 독서행위가 강력한 ‘구별 짓기’로 기능하며 독서에서 얻어진 ‘앎’은 독자 혼자만의 ‘앎’으로 굳어진다. 오늘날은 문자의 권위에 눌려 책을 통해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힘들어졌으며 다량의 수사와 포장으로 별 것 아닌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달장애인들은 출판시장에서 간과되었으며 알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피치마켓의 발달장애인 독서교실은 상당한 주목을 끈다. 피치마켓은 한국 독서사에서 간과된 독서주체들을 다시 끌어들이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필자는 피치마켓 발달장애인 독서교실에서 공동체적 독서를 발견했다. 발달장애인들은 종종 책의 내용을 벗어난 질문을 던진다. 피치마켓 독서교실에서는 그 질문들을 환영한다. 왜냐하면 발달장애인들은 책을 오독한 것이 아니라 책을 기반으로 자신이 궁금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멘토들은 발달장애인들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본인의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들려준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독서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셈이다.

 
발달장애인들은 그저 “지적 능력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출판시장에서 배제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진짜 “지적 능력이 낮은” 것은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이 아니었을까? 하고 자문해볼 수 있다. 여타의 출판사들이 충분히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독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시도하지 않은 것은 그동안 소외되었던 독자들에 대한 무관심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또한 발달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독서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피치마켓의 앞으로의 행보도 궁금해진다.

 

홍성훈 (beminor@beminor.com)

 

*기사출처 : 비마이너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9991&thread=03r02r07

 

 

1454314120-80.jpg홍성훈의 난장판

뇌병변 1급 장애인. 서정주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열등감이었다'. 일반 초중고에서 비장애인 친구들과 공부했고 친구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왔으나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려고 한다. 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인정투쟁이 아닌 또 다른 논리로 소수자를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자 한다.

홍성훈 (beminor@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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