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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배낭
“장애인이란 배낭을 메지 않은 사람이다
 
등록일 [ 2016년01월11일 20시55분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는 장애인에 대해 아주 이상한 말을 남겼다. “장애인(anaperous)이란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배낭(pera)을 메지 않은 사람이다.” 배낭 없는 사람이 장애인이라고? 무슨 기분 나쁜 아웃도어 제품 광고도 아니고, 왜 장애인을 규정하는 것이 배낭이란 말인가.
 

디오게네스의 말을 잘 뜯어보면 우리는 고대 그리스 사회도 장애인, 다시 말해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과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차별했음을 알 수 있다. ‘장애인’이라는 말에 부정적인 가치가 담겨 있었기에, 디오게네스는 그 말의 용법을 바꿈으로써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데아, 즉 이상에 관심이 많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상적 신체 기준에서 이탈한 장애인의 신체를 어떻게 보았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저 짧은 말에서 우리는 또한 디오게네스가 장애인에 대해 통념과는 다른 시각을 지녔음도 알 수 있다. 그는 ‘장애’를 신체적인 ‘손상’과 동일시하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를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들리지 않는 귀’나 ‘보이지 않는 눈’이 아니라 ‘배낭’이라고 했다. 왜 배낭이 문제인가. 배낭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는 철학자의 진리[진실]는 ‘진실한 삶’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배낭은 그런 ‘진실한 삶’의 상징이었다.
 

그는 작은 배낭만을 갖고서 길바닥에서 먹고 잤던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개라고 불렀고, 그도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그는 왜 개였는가. 우선, 그는 먹고 마시는 일부터 섹스까지 모든 것을 남들이 보는 길에서 했다. 개처럼 말이다. 그에 따르면 자연[본성]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자연적인 것이므로, 자연이 낳은 어떤 일,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우리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자연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도덕적, 법적 편견 때문에 생겨난다. 그러니 바꾸어야 할 것은 이런 편견들이지 자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스스로 ‘인류를 주인으로 모시는 개’로서 소개하기도 했다. 나쁜 적을 주인보다 먼저 알아채고 용감하게 짖으며 적을 물어뜯기도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왕에게 잡혔을 때 그는 ‘누구냐’는 왕의 물음에 “나는 네 끝없는 탐욕을 탐지한 정찰병”이라고 답했다. 그는 왕에게도 굴하지 않는 용감한, 인류의 정찰견 내지 경비견이었던 것이다. 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디오게네스는 ‘현실의 왕’을 ‘가짜왕’이라고 불렀다. 그런 왕들은 스스로 힘을 갖고 있지 않기에, 다시 말해서 진정한 주권자가 아니기에, 왕관을 쓰고 군대와 신하를 대동하고 다닌다. 비유컨대 그들은 황금이 아니므로 자신을 도금한다. 그런 도금을 이용해서 그들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들은 왕이라기보다는 ‘환상의 왕’ 내지 ‘왕의 환상’이다. 그렇다면 ‘진짜왕’은 누구인가. 디오게네스는 자신을 가리켰다. 삶의 주권자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는 군대와 재산, 신하 따위가 필요 없다고 했다. 힘은 군대나 돈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갈 수 있고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아는 그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주권자라는 것이다. 그의 배낭은 이런 주권적 삶의 상징이었다. 가짜왕은 왕관을 쓰지만 진짜왕은 배낭을 멘다.
 

죽은 사람의 미소는 살아있는데 산 사람의 걸음은 죽은 혼령처럼 흩어지는 아침 출근길. 광화문 농성장 지난 1198일의 아침 풍경. ⓒ고병권

 

 

배낭의 의미를 좀 더 따져보자. 우선, 배낭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삶, 자립적 삶을 나타낸다. 배낭을 멘다는 것은 왕이든 가족이든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예속된 채로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사는 삶을 상징한다. 둘째로, 배낭은 울타리 바깥에서의 삶을 나타낸다. 그것은 울타리와 벽이 둘린 곳(왕궁이든, 집이든, 시설이든)에서 나온 삶, 한마디로 길바닥에서의 삶을 상징한다. 길바닥은 추방된 자들의 공간이고 사회적 낙인을 받은 자들의 공간이며, 추위와 굶주림의 공간, 정신적 모욕과 모멸의 공간이다. 그런데 디오게네스는 이곳이야말로 자신을 주권자로 단련시키는 공간,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했다. 자신은 “추위와 두려움과 싸우고 갈증을 이겨내며, 채찍이나 칼, 불을 사용한다 해도 굴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배낭을 멘다는 것은 전사로서, 투사로서, 기꺼이 길바닥을 단련의 공간으로 감내한다는 뜻이다.
 

셋째, 배낭은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을 돌보는 이의 삶을 상징한다. 디오게네스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을 ‘인류를 주인으로 모시는 개’처럼 생각했던 인물이다. 길바닥에서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이유는 자기 역량을 길러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역량으로 전체 인류를 돌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는 광장과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편견과 악덕을 깨부수고, 억울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것이 ‘진짜왕’, 즉 배낭을 멘 자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디오게네스는 주권자에 대한 고대적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었다. 그가 떠올린 진정한 주권자란 자기 안에서 평안하고 고요하며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왕이나 현자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진정한 왕은 그런 고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배낭을 멘 채로 길바닥에서 투쟁하며 살아가는 투사였다. 자기 자신을 돌보며 인류를 돌보는 그런 투사 말이다.
 

이제 장애인에 대한 그의 규정을 다시 음미해보자. 그가 말한 ‘배낭이 없는 삶’이란 자립적이지 못한 삶, 누군가에게 예속된 채 살아야만 하는 삶, 자기 삶을 지배할 수 없는 삶, 자기 단련이 없는 삶, 타인을 돌볼 수 없는 삶, 무엇보다 주권자로서 투쟁할 수 없는 삶을 의미한다. 디오게네스가 중시한 것은 누군가에게 정신적 신체적 손상이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가 과연 주권자의 삶을 사는가였다. 따지고 보면 지금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의 투쟁 모두가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삶을 거부하고, 삶의 주권자가 되기 위한, 아니, 이미 자신이 삶의 주권자임을 선포하는 투쟁 아닌가.
 

지난 11월의 마지막 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장을 지키며 나는 확실히 느꼈다. 저 세종대왕 동상 너머에는 ‘왕의 환상’ 내지 ‘환상의 왕’이 살지만, 여기 농성장에는 진짜왕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진짜 왕궁에 초대를 받아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을….
 

* 글쓴이 : 고병권. 오랫동안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밥 먹고 공부해왔으며, 지난여름부터 무소속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철학교사로 지내왔고 최근에 잠시 휴직한 상태. 그동안 밀린 공부도 하고 이런저런 활동으로 자기 충전 중!


* 이 글은 노들바람(2015년 겨울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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