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정책 요구안 전달한 지 3개월, 세종시는 ‘묵묵부답’
세종시 장애인 정책 거의 없어… 장애계 “요구 수용 때까지 싸울 것”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세종장차연)가 장애인 정책 요구안 수용을 거부한 이춘희 세종시장을 규탄하며 투쟁을 선포했다.

세종장차연은 지난 3월 26일,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7대 정책 요구안’을 세종시에 전달했다. 요구안에는 △이동권 △평생교육 권리 △탈시설 권리 △자립생활 권리 △최중증장애인 노동권 △건강권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정책 요구안을 전달한 지 3개월이 돼 가는데 이춘희 세종시장은 아무런 답변이 없다. 세종시는 되레 “다른 장애인 단체와 협의해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세종장차연은 18일 오후 2시, 세종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춘희 시장의 반인권적 태도를 규탄하고 장애인 정책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세종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활동가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세종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활동가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세종시 저상버스 8%, 평생교육 예산 0원, 탈시설 장애인 7명

세종시 장애인 정책은 처참한 수준이다. 먼저 이동권을 살펴보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탑승 가능한 저상버스 도입률이 약 8%밖에 안 된다.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 약 28%와 비교해 한참 뒤처진다. 제3차 국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7~2021)에서 정한 특별·광역시 목표치 42%에도 현저히 못 미친다.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콜택시 ‘누리콜’ 수도 17대로 너무 적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28조에 따라 특별교통수단 운행대수는 중증장애인 150명당 1대다. 작년을 기준으로 세종시 중증장애인 인구는 4,525명이다. 누리콜이 최소 31대는 운행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법정 운행대수보다 부족해 24시간 운영, 즉시콜도 안 되는 상황이다.

세종시 장애인은 교육받기도 힘들다. 올해 세종시 장애인 평생교육 예산은 0원이다. 독서문화진흥 등 평생교육 예산은 약 18억 8,000만 원이 책정됐지만 이 중 장애인 평생교육 관련 예산은 전무하다. 또한 세종시민 중 장애인은 약 1만 2,000명인데, 장애인 평생교육 시설은 1곳뿐이다.

탈시설 장애인 수도 전국에서 가장 적다. 작년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6년 동안 전국에서 2,989명의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시작했다(체험홈, 공동생활가정 제외). 같은 기간 세종시에서 탈시설한 장애인은 단 7명뿐이다.

7명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세종시에는 탈시설 관련 정책 자체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세종시청에 탈시설 전담부서가 없고 자립생활 주택이나 체험홈 사업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탈시설 장애인을 지원하는 탈시설 정착금 제도, 활동지원서비스 추가급여 등도 전무하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세종시의 지원 없이 자력으로 탈시설 하더라도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아예 없는 상황이다.

한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세종시청 앞에 서 있다. 정문을 수십 명의 경찰이 방패를 들고 막아섰다. 활동가가 든 피켓에는 ‘이춘희 세종시장은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7대 정책 요구안을 수용하라! 장애인 권리 보장하랬더니 대표성 시비 걸고 갈등 유발하는 오만한 세종시는 장애인 차별 철폐 정책 요구안을 수용하라!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고 적혀 있다. 사진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한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세종시청 앞에 서 있다. 정문을 수십 명의 경찰이 방패를 들고 막아섰다. 활동가가 든 피켓에는 ‘이춘희 세종시장은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7대 정책 요구안을 수용하라! 장애인 권리 보장하랬더니 대표성 시비 걸고 갈등 유발하는 오만한 세종시는 장애인 차별 철폐 정책 요구안을 수용하라!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고 적혀 있다. 사진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장애계 “장애인 정책 요구, 수용될 때까지 투쟁할 것”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은 기자회견에서 장애인 인권을 외면하는 세종시와 이춘희 시장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세종시민이자 휠체어 이용자인 문경희 세종보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얼마 전 저상버스를 타면서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문 소장은 “지방에 갈 일이 있어 아침 일찍 B2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출퇴근 시간에는 안 탔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애인도 아침에 출근하려고 버스 타는 건데 비장애인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버스 타야 하나”라며 “요구안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훈 세종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도 “1시간을 기다려 저상버스가 오더라도 버스정류장 턱이 높아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버스를 탈 수가 없다. 또한 누리콜을 이용하려면 이틀 전에 예약해야 한다. 아파서 병원에 가려고 해도 이틀 후에 아파야 한다”며 “세종시 장애인의 자유로운 일상은 침해됐다. 당연한 권리인 이동권을 세종시가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활동가들은 기자회견을 끝낸 후 B1버스를 점거했다. 경찰 수십 명 앞으로 임경미 대표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활동가들은 기자회견을 끝낸 후 B1버스를 점거했다. 경찰 수십 명 앞으로 임경미 대표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임경미 충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는 세종시가 장애인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한국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 비장애인이 이 교육을 못 받게 하면 처벌받는다. 하지만 장애인은 학교에 못 다니는 사람이 10.4%, 초등학교까지만 다닌 사람이 27.3%다(2017년 기준)”라며 “이춘희 시장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그럴 거면 그 자리에 있어선 안 된다”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저상버스 100% 도입 △누리콜 200% 도입 △장애인 평생교육 시설 신규 설치 △탈시설 정착금 지원 △장애인 지원주택 도입 △거주시설 폐쇄 △활동지원서비스 추가지원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100개 △장애인 주치의 제도 강화 △발달장애인 낮 활동지원 강화 등을 세종시에 다시 한번 촉구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세종시가 장애인 정책 요구안을 수용할 때까지 1인 시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문경희 소장이 B1버스 점거한 후 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피켓에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전면개정, 지방정부 예산 책임전가 폐지, 특별교통수단 지역 차별철폐’라고 적혀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문경희 소장이 B1버스 점거한 후 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피켓에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전면개정, 지방정부 예산 책임전가 폐지, 특별교통수단 지역 차별철폐’라고 적혀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