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이영양증 장애를 가진 이수찬(32) 씨가 옥천읍 제3 투표소(장야초등학교)에서 생애 첫 지역사회 투표를 했다. 양경모 옥천센터 활동가가 거상형 휠체어를 밀고, 김선희 옥천센터 활동가가 투표를 지원했다. 사진 박승원
“생각보다 할 만했다.”
생애 첫 직접투표를 한 중증장애인 이수찬(32) 씨가 투표소 밖으로 나와 내민 첫 마디였다. 그의 입가엔 미소가 어렴풋이 번지고 있었다.
수찬 씨는 온몸의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근이영양증 장애를 가지고 있다. 호흡근육도 약해지고 있어 24시간 가까이 산소호흡기를 착용할 정도다. 그가 마지막으로 외출한 기억은 걷지 못하기 시작한 9살 무렵부터다. 그 뒤로는 내내 집에서 누워지냈다. 오랜 시간, 집안에 고립되어 지내며 ‘나 같은 사람도 존재 이유가 있을까’, 그 물음이 그를 사무치게 괴롭혔다.
그는 몹시 집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마침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두 달가량 앞두고 있던 지난 2월, 수찬 씨는 첫 외출로 지역사회 투표를 하기로 했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옥천센터) 측에 이러한 의사를 전했다.
종일 산소호흡기를 차야 하는 이수찬 씨. 코와 이마 부분이 압박을 받아 피부가 짓무르는 바람에 반창고를 붙일 정도다. 외출 준비를 하고자 잠시 산소호흡기를 떼고 활동지원사 부축을 받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이다. 사진 박승원
- 옥천선관위의 ‘편의지원 거부’에 인권위 진정하고 1인시위까지 했지만…
하지만 수찬 씨가 투표소로 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참정권을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2월 14일, 수찬 씨와 옥천센터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옥천군선거관리위원회(아래 옥천선관위)에 호흡기 장치가 있는 구급차와 의료진 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옥천선관위는 “예산이 없어 응급차량 지원이 어려우니 거소투표를 하라”는 답변만 반복할 뿐이었다.
선거일이 다가올 때까지도 옥천선관위의 태도가 바뀌지 않자, 지난 3일 수찬 씨는 장애계의 도움을 받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긴급구제 진정을 했다. 선거 하루 전까지 옥천센터 활동가들은 옥천선관위 앞에서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이어가기도 했다.
장애인 활동가들이 수찬 씨와 투표소로 가려고 집 앞으로 찾아왔다. 인권위 조사관(맨 오른쪽)도 함께했다. 인권위 조사관은 당사자 장애 정도 등 현장을 확인하러 왔다. 사진 박승원
수찬 씨가 옥천센터에서 준비한 휠체어 탑승장치가 있는 특장차량에 올라 투표소로 이동하고 있다. 그 뒤로 응급차량이 쫓아오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 편의제공 대신 메꾼 장애인 활동가들... “장애인도 사회참여 의지 있어”
옥천선관위는 선거 당일까지도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투표를 지원하기 위한 어떠한 소통도 없었다. 그래도 수찬 씨는 꼭 투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찬 씨는 “내가 투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도 사회참여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결국, 수찬 씨는 15일 오후 직접 대여한 거상형 휠체어에 올라 옥천센터가 지원한 차를 타고 옥천읍 제3 투표소(장야초등학교)로 이동했다. 수찬 씨는 ‘의료지원이 안 되면 없이라도 투표하겠다’라고 말했지만, 옥천센터는 따로 비용을 들여 사설 응급차량도 불렀다.
의료진과 응급차량 준비 비용은 얼마나 들었을까. 임경미 옥천센터 소장은 “국민 한 사람 투표권 지키는데 두 시간에 20만 원이면 충분했다”라면서 “선관위는 그 돈이 아까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발뺌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수찬 씨가 옥천읍 제3 투표소(장야초등학교) 입구로 들어가는 모습. 사진 박승원
투표하기 전에 수찬 씨가 신분증을 제시하고, 지장을 찍고 있다. 사진 박승원
투표하기 전에 수찬 씨가 신분증을 제시하고, 지장을 찍고 있다. 사진 박승원
수찬 씨가 기표소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 “학교, 참 오랜만이다”
투표소에 도착한 수찬 씨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학교’였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 그만두어야 했다. 수찬 씨는 “걷지 못하게 되고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학교에 다니기 어려워졌다. 당시 어머니 혼자 모든 걸 감당하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그런 수찬 씨가 22년 만에 초등학교에 돌아온 셈이다.
수찬 씨가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왔다. 투표소는 1층 2학년 3반에 마련되어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면서 수찬 씨도 다른 유권자처럼 신분증을 제시하고, 지장을 찍었다. 지역사회에 자신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투표는 옥천센터 김선희·양경모 활동가가 옆에서 도왔다.
투표를 마친 뒤 장야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선관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수찬 씨를 중심으로 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박승원
기자회견이 끝나고 어머니 최선미(65) 씨가 수찬 씨에게 “투표하느라 고생했어. 몸은 괜찮아?”라고 묻고 있다. 수찬 씨는 대답 대신 활짝 웃어 보였다. 사진 박승원
- 평생 못할 줄 알았던 현장투표, “누구나 현장투표할 수 있도록 참정권 보장해야”
투표를 마친 뒤 장야초등학교 앞에서는 선관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 자리에 옥천센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을 비롯한 9개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수찬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찬 씨는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던 지난 시간이 오늘에야 비로소 해결된 것 같았다. 평생 해결 못 할 줄 알았는데 많은 분이 도와준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투표할 수 있었다”라면서 “선관위는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수진 옥천센터 활동가는 중도장애인이다. 그는 “비장애인일 때는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장애인이 되고 나서는 투쟁해야 쟁취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라면서 “왜 유독 장애인에게는 ‘부재자 투표’를 권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활동가는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자가 부재자 투표를 하면 사람들은 ‘저 표가 과연 장애인 당사자 의지로 투표한 것일까’라면서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재가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이 투표할 때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런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고자 우리는 마땅히 현장투표를 선택한다. 오늘 일을 계기로 장애인 참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선관위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은 “올해부터는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됐다. 그런데 선관위는 청소년에게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라고 꼬집었다. 이어서 “청소년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좋은 교육방식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표를 마친 수찬 씨가 장애인 활동가들과 함께 장야초등학교 정문으로 이동하는 모습. 수찬 씨 옆으로 연분홍색 철쭉이 활짝 피어있다. 사진 박승원
- 20여 년 만의 첫 외출, 짧은 산책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수찬 씨 위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수찬 씨는 차량에 오르지 않고 산책하며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수찬 씨 집은 투표소에서 250m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있다. 수찬 씨가 지나는 거리거리마다 철쭉과 하얗게 털이 난 민들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20년 만의 외출이 짧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물었지만, 수찬 씨는 “아쉽지는 않았다”라고 단숨에 말했다. 첫 지역사회 투표라는 고개 하나를 넘긴 수찬 씨는 세 사람의 지원을 받아 다시 침대 위에 올랐다.
수찬 씨는 “종종 일상이나 취미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라면서 “외출이 자유롭지 않기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할 계획이다. 옥천센터에 활동가 일지를 쓰고 있다. 앞으로 활동가로서 차별에 맞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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