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장애인 교육권①] ‘야학’ 다닌다고 코로나19에서 두 번 배제된 성인 장애학생들

by 노들센터 posted Apr 18,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장애인 교육권①] ‘야학’ 다닌다고 코로나19에서 두 번 배제된 성인 장애학생들
교육부, ‘학령기’ 아니라는 이유로 장애인평생교육시설 방치 
학습 지원은커녕 방역 지원도 못 받아, 재난 발생에 드러난 민간위탁의 민낯
 
등록일 [ 2020년04월16일 18시02분 ]
 
 

1587026954_13777.jpg지난 3월 13일, 코로나19로 휴업 중인 서울시 종로구의 노들장애인야학에 야학 학생들이 방문해 교실 앞에 앉아있다. 이에 천성호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나와 코로나19 예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 이가연

 

서울에 위치한 학교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 노들장애인야학(아래 노들야학)에는 평균 50대 나이의 중증 성인 뇌병변·발달장애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그런데 최근 노들야학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인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4월 6일부터 17일까지 2주 동안 또다시 휴업을 연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벌써 코로나19로 인한 네 번째 휴업이다. 최근 코로나19가 잠잠해지자 20일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반별로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는 ‘임시 개학’을 계획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과 유·초·중·고등학교 및 특수학교의 개학이 미뤄지면서 교육부가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도 휴업을 권고하고 있다. 3월 2일부터 시작한 1차 휴업명령이 있은 뒤로 4월 3일까지 총 3차례에 걸친 휴업명령이 있었으며, 이후에는 학령기 학교의 대면수업일까지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도 휴업 연장을 권고했다. 사실상 무기한 휴업 연장이다. 

 

무료급식 먹던 장애학생들은 어디에?

  

감염의 두려움은 노들야학도 없는 것이 아니다. 시설이나 집에서 평생을 살다 늦은 나이에 탈시설해 세상에 나온 장애학생 중에는 기저질환자들이 특히 많다. 이런 까닭에 처음 야학에 1차 휴업명령이 내려졌을 때 노들야학은 장애학생들의 건강과 감염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휴업 연장 명령이 2달 가까이 계속되자 노들야학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학생들이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들야학은 2018년부터 야학 학생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 상당수가 부족한 기초생활수급비로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없어 굶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나 교육청으로부터 급식에 대한 어떠한 예산 지원도 받지 못해 개개인의 후원금으로 적자 상태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휴업이 계속되자 노들야학 교사들은 13일부터 가정방문을 통해 학생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학생들이 코로나19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방교육 및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휴업을 이유로 야학에 오지 말라고 해도, 코로나19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야학에 오는 생활패턴에 익숙해진 발달·정신장애 학생들 일부는 하루 종일 야학에 머물다 급식을 먹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간다. 성인 장애학생들에게 야학은 학습 공간일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삶의 장소로 의미한다. 그래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으로 ‘야학 문을 닫는다’는 것은 이들에겐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닫히는 것이다. 닫힌 문 너머에서 이들은 홀로 존재하게 된다. 
 

1587029718_58954.jpeg노들장애인야학은 지난 13일부터 학교 휴업으로 인해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야학 학생들에게 가정방문하여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에는 학생들에게 나눠줄 도시락이 정성껏 포장되어 있다. 사진제공 노들장애인야학
 

교육부, 각 지자체에 ‘방역’ 협조요청… 정부 차원의 방역·학습 예산은 없어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부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 대한 대처는 어떨까? 교육에 대한 고민은커녕 아주 기초적인 방역지원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교육부는 지난 3월 2일부터 3차례 휴업 명령을 내렸으며 4월 1일에는 학교 대면교육이 시작하는 날까지 휴업 연장을 권고했다. 교육부는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러한 휴업 연장은 권고일 뿐, 만일 ‘긴급돌봄’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교육부의 ‘장애인평생학습시설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라고 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교육부가 3월에 1차 휴업명령을 내린 뒤 약 한 달이 지나서야 나왔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서 모든 학생과 강사·직원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방역물품 등을 비치해야 한다고 고지하고 있다. 또한 주 1회 이상 전문방역소독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방역 지원 여부는 가이드라인에 안내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정부 예산 지원은 따로 마련된 것이 없다. 따라서 각 자치단체 교육청뿐만 아니라 시, 도 단위로 장애인평생학습시설에 필요한 방역 지원을 협조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지역별 방역 지원은 천차만별… 긴급돌봄 시작해도 ‘방역 지원 없다’는 경기도 

 

따라서 지자체 예산으로만 지원되기 때문에 방역 지원 여부는 지역별로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협조요청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방역에 필요한 마스크, 손세정제, 체온계 등을 구비할 수 있도록 총 1,100만 원의 예산을 ‘안전한 개학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서울시의 학교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 4곳에 배분해 보냈다. 그러나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은 ‘민간기관’이기에 예산 지원만 가능하고 마스크와 같이 구하기 어려운 물품이나 방역서비스와 같은 직접지원은 받기 어렵다. 

 

인천에 있는 민들레장애인야학의 박길연 교장은 “인천시교육청에서 3월에 마스크를 지원한 것 말고는 ‘개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런 연락이 온 게 없다”라며 “(야학이라는 공간 특성상) 개학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방역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교장은 “장애학생들이 지금껏 평생 시설이나 집안에 갇혀 살았는데 코로나19 이후로 또다시 ‘갇힌 삶’을 살고 있어 많이 힘들어한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대해 인천시교육청에 문의하자 교육청 관계자는 “추경 편성이 완료되어 개학을 전후로 각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 방역 소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대구는 어떨까? 대구의 질라라비 장애인야학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연장되고, 교육부의 휴업 권고가 연장되면서 개학이 미뤄지고 있다. 황보경 질라라비 장애인야학 사무국장은 “학령기가 아닌 평생교육시설이다 보니 휴업 권고 외에는 방역이나 학습지원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한 황 사무국장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보호자 중심의 학령기 장애인을 중심으로 안내될 뿐, 보호자 없이 야학에 다니는 성인 장애학생에 대한 내용이 미비해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있다”라며 “민간단체이다 보니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화재 및 지진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정부 지원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구조에 있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경기도에 있는 김포장애인야학은 현재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휴업을 하면서도, 휴업으로 인해 방치되고 있는 야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긴급돌봄 프로그램을 6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최소한의 방역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조은별 김포장애인야학 사무국장은 “경기도교육청에서 긴급돌봄 시 수업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긴급돌봄을 시작하던 6일에는 경기도교육청, 김포시 교육지원청, 경기도청에서 야학에 점검을 나왔다”면서 “방역 지원에 관해 묻자 긴급돌봄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방역 예산은 편성할 수 없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긴급돌봄과 관련한 예산은 현재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1587027737_32975.png지난 1일, 교육부 특수교육정책과가 배포한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장애인평생교육시설 협조 요청 및 가이드라인 안내’ 공문. 공문에는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 학교의 대면수업일까지 휴업 연장을 권고하고 있다.

 

재난 발생하자 민간에 의존하는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지원체계, 미비점 드러나 

 

흔히 성인에게 평생교육은 ‘교양’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성인 장애인’은 다르다. 학령기 의무교육에서 배제된 이들이 성인이 되어 배움을 채울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평생교육이며, 발달장애인에겐 ‘발달의 퇴행’을 막는 주요 장치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7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 중 54.4%가 중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국민 전체 평생교육 참여율인 36.8%보다 월등히 적은 0.2%에 불과하다(장애인평생교육 중장기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2019). 

 

게다가 앞서 지적했듯, 장애인야학은 학습 공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사는 성인 장애인들에게는 일상을 채우는 삶의 장소로 존재한다. 하지만 장애인평생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은 공부조차 제대로 지원하기 버거울 정도로 열악하다. 2018년 특수교육 대상 학생 1인당 평균 특수교육비는 연간 3,039만 8천 원이지만, 장애인 1인당 평생교육비는 연간 2,287원에 불과하다. ‘교육 그 이상’을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학교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 대한 지원체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평생교육은 2017년 6월 장애인특수교육법에서 평생교육법으로 근거 규정이 이관되었다. 하지만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는 “현행 평생교육법은 시·도 차원의 평생교육 지원체계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고 예산 지원에 있어서도 시·도 교육감의 책무를 명시하지 않아 지원을 기피하거나 지방자치단체로 이전하려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라며 현 지원 체계를 지적한다. 책임 주체가 없으니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난에서 더더욱 방치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장야협은 ‘장애인평생교육 긴급재난지원 요구안’을 교육부에 전달한 상태다. 전장야협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장애학생에게는 또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라면서 △장애성인 학습자의 학습 공백에 대처하기 위한 가정 내 교재·교구·활동꺼리 제공 및 1:1 인력 지원 △안전한 개학을 위한 방역 및 전문인력 지원 등의 대책을 요구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당 요구안에 대해 “일반 평생교육시설보다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학령기 대상 학교에서는 온라인 강의를 통한 순차적 개강이 시작한 반면,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 대한 학습 지원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정규교육과정은 의무교육이나, 의무교육이 아닌 평생교육은 다를 수밖에 없다”라며 결국 책임을 회피했다. 

 

1587026553_67428.jpg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등 장애인단체들이 장애인평생교육 지원을 강화하고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가연


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기사원문 : https://beminor.com/detail.php?number=14573&thread=04r06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