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장애계가 정치권에 21대 입법과제 촉구에 다시 나섰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여한 장애여성 활동가가 쓴 마스크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이날 활동가들은 마스크에 저마다 염원이 담긴 입법과제 문구를 붙였다. 사진 박승원
장애계가 정치권에 ‘장애인의 권리보장에 관한 21대 입법과제(아래 21대 입법과제)’ 정책 협약을 재차 촉구하며 인간 띠 잇기 퍼포먼스를 펼쳤다.
최옥란 열사의 기일인 26일 오후 2시부터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은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와 미래통합당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정치권에 21대 입법과제를 촉구했다. 이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신체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2m 간격으로 서서 인간 띠 잇기를 선보였다. 420공투단은 “장애인의 권리보장에 관한 법 제·개정에 책임이 큰 정당이 책임감을 가져야 함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어 다시 일깨워주기 위해 모였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인간 띠 퍼포먼스를 준비하기 위해 줄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인간 띠 잇기 퍼포먼스를 하는 활동가들. 사진 박승원
- 최옥란 열사 18주기,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
장애계는 최옥란 열사의 기일인 3월 26일마다 한해의 투쟁 과제를 알리는 집회를 열어왔다. 최 열사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중증장애인으로, 빈민으로 태어나 37년간 고된 삶을 바꾸기 위한 투쟁을 벌이다 죽음을 선택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 지났지만,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외쳤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최옥란 열사 18주기를 맞았지만, 열사가 그토록 바랐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지금까지 폐지되지 않았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고 공언했지만 말뿐이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우리가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정치인들에게 우리가 제시하는 21대 입법과제가 얼마만큼 중요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하고 절실한 제안”이라며 “활동지원제도 65세 연령제한으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고 시설로 들어가는 장애인들이 너무 많다. 안타깝지만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불행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민석 경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장애인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대대적인 예산 확보를 담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주장했지만 장애등급제 폐지는 글자만 바뀐 수준이다”라며 “나는 65세가 되려면 38년이나 남았지만 만 65세까지 며칠, 몇백일 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이 순간이 지옥일지 상상도 할 수 없다. 만 65세 연령제한 폐지를 정치권에 끝까지 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준비한 띠가 엉킨 채 바닥에 놓여 있다. 2m마다 21대 입법과제가 적힌 손팻말을 표시해뒀다. 사진 박승원
- 정치권에 21대 입법과제 수없이 내밀었지만 ‘냉대뿐’… “오늘이 마지막”
이러한 장애인들의 바람을 담아 지난해 12월 3일 장애인차별철폐 2020 총선연대(아래 총선연대)는 출범식을 열고 21대 총선에 ‘입법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입법과제에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장애인탈시설지원법과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 △권리 중심-중증장애인 기준의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관계자에게 ‘장애인 권리보장에 관한 21대 입법과제 요구서’를 전달한 후 미래통합당사로 행진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코로나19 안전대책 2m 거리 유지’를 위해 행진 경로마다 줄을 들고 다니며 거리를 확보했다. 오른쪽부터 강정인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 권익옹호 활동가와 조재범 자립생활지원 팀장이다. 사진 박승원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관계자에게 ‘장애인 권리보장에 관한 21대 입법과제 요구서’를 전달한 활동가들은 미래통합당사로 행진했다. 사진 박승원
장애인들은 지난 세 달여간 각 정당에 21대 입법과제를 제시하고 정책협약 체결을 촉구했지만, 이에 응답한 곳은 정의당뿐이었다. 따라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총선 후보 등록이 마감되기 전날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에 정책 제안서를 다시 내밀 수밖에 없었고,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투쟁으로 맞서겠다고 강조했다.
“21대 입법과제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턱없이 모자란다. 장애인이 차별 없는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수백 가지의 법안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너무도 모르니, 시급한 문제를 21개로 추리고 추려서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답이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합법적, 민주적이라는 모든 절차를 거쳐 21대 입법과제를 정치권에 수없이 요구하고 전달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무지, 무관심, 무시로 일관해 왔다. 오늘 다시 양당에 21대 입법과제를 전달하지만 이러한 절차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으로 맞서겠다.”
이날 420공투단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에 ‘장애인 권리보장에 관한 21대 입법과제 요구서’를 다시 전달했다.
미래통합당사 앞에서 인간 띠 잇기 퍼포먼스를 하는 활동가들. 사진 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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