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정치인이 ‘소수자 인권’ 발언 용기내면 변화 공간 생긴다”

by 노들센터 posted Mar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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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은 함께살기법] ② 성소수자 차별
대담 ║ 김승섭 고려대 교수-리 배짓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교수
 

보수는 ‘혐오’하고 진보는 ‘침묵’
“그게 정치의 본성 아닐까
그래도 누군간 ‘인권’ 발언하기 마련”

막연한 공포가 차별 강화 경향 있어
“‘동성혼 인정땐 사회적 비용’ 주장
데이터 따져보니 되레 경제적 효과”

한국 성소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네트워크 확보·사회운동 참여를
‘반동성애자는 나쁜 사람’ 규정 말고
그 뒤에서 작동하는 힘 분석해야”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지난해 10월23일 성소수자 차별을 연구하는 리 배짓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대담을 나누고 있다. 김승섭 제공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지난해 10월23일 성소수자 차별을 연구하는 리 배짓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대담을 나누고 있다. 김승섭 제공

 

차별은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다.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를 낙인 찍어 사회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된다. 군대와 대학에서 트랜스젠더를 밀어낸 일이 대표적이다. 사회역학자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지난해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며 만난 두 번째 석학은 레즈비언 당사자이자 성소수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연구해 온 리 배짓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다. 그는 같은 대학 암어스트 캠퍼스 ‘공공 정책과 행정 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고,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등의 책을 펴냈다. 배짓 교수는 혐오와 차별의 늪에서 허덕이는 한국의 성소수자들에게 “(반동성애자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 말고 그 뒤에서 작동하는 힘을 분석해야 한다. 지금은 ‘정치적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하는 일문일답.

 

 

김승섭: 한국에서 성인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2400여명을 상대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성소수자 중 부모에게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힌 사람은 20% 미만이었다. 한국의 많은 성소수자들은 그렇게 자신을 감추는 방법으로 혐오를 피한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연구팀이 지난 1년 동안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이 한국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보다 7배 많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난 차별하지 않는다. 다만 성소수자를 싫어할 수 있는 내 권리를 존중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존재 자체는 인정할테니 내가 있는 공간은 침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이게 현재 중요한 전선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어떤가?

 

리 배짓(이하 배짓): 젊은이들은 종교나 지지정당에 상관없이 성소수자를 더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변화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계속 ‘저항’한다. 예를 들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이 결혼할 때는 사진을 찍어주거나 케이크를 만들어주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런 거절이 합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사에게 진료를 거부를 당하거나 결혼식 사진작가에게 촬영을 거절당하는 것은 아픈 경험이다. 이런 경험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가 반복되면 사람의 몸을 해친다. 그게 바로 소수자 스트레스다.

 

김승섭: 미국에는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다. 흑인에게는 차별적인 행동하기 어렵지 않나?

 

배짓: 그렇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들이 엘지비티(LGBT)는 그렇게 대우해도 된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말과 행위를 규제하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법에 의해 규제받는 영역이 있다. 기업에서는 최저임금을 준수해야 하고 남녀에게 동등한 임금을 지불해야 하며 식당 부엌은 보건 규정에 따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차별 금지에 대한 원칙을 어떤 소수자까지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김승섭: 차별 금지 원칙을 세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법이다. 하지만 그 법을 만드는 정치인들은 오히려 소수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지지자 결집을 위해 성소수자 혐오를 이용한다. ‘진보’로 분류되는 한국의 여당 정치인들은 성소수자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승리 전략이라고 믿는다. ‘나중에’ 문제라는 것이다. 한쪽은 혐오로 지지를 호소하고 한쪽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배짓: 그게 정치의 본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인의 가장 큰 관심은 다시 당선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어떻게 해야 가장 많은 표를 얻을 수 있고 가장 적은 표를 잃을 것인지를 생각한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미국도 그랬다. 주마다 정치적 성향이 매우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성소수자 인권을) 밀어붙일 시점이 아니다”라고 했다. 특히 동성결혼 문제가 그랬다. 심지어 나도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시작하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다. 로버트 라이히 버클리대 교수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2002년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동성결혼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 기억에 민주당 주요 정치인 중 동성결혼 법제화 입장을 낸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뒤 내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 사람은 선거에서 떨어지겠다’였다. 하지만 그의 용기있는 발언 이후 공간이 열리고 변화가 일어났다. 조 바이든 부통령이 그리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뒤를 이었다. 누군가 시작하면 그 다음 사람은 조금 더 쉬워진다. 문제는 그게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지난해 10월23일 성소수자 차별을 연구하는 리 배짓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대담을 나눴다. 김승섭 제공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지난해 10월23일 성소수자 차별을 연구하는 리 배짓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대담을 나눴다. 김승섭 제공

 

김승섭: 막연한 공포나 우려, 선입견이 차별과 혐오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면에서 당신이 1995년 출판한 성적지향에 따른 임금차별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여준 연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까지 미국 사회에는 동성애자들은 부유한 전문직이기 때문에 국가가 돌볼 필요가 없다는 신화가 있다. 하지만 당신의 논문이 그것을 무너뜨렸다.

 

배짓: 미디어에서 동성애자들을 좋은 집에 사는 전문직 종사자로 묘사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차별받는 집단이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묘사를 반박할 데이터를 얻는 것이었다. 이런 연구에서는 대표성 있는 샘플을 얻는 게 중요하다. 당시 우연히 권위있는 ‘종합사회조사’(General Social Survey)에 성관계를 하는 상대의 성별을 묻는 질문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에이치아이브이(HIV) 감염 때문에 포함된 질문이었다. 그 데이터를 분석해 동성애자 남성이 이성애자 남성에 견줘 소득이 11~27%가량 낮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동성혼 법제화가 사회적 비용을 늘릴 것이라는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1990년대 초 정치인들에게 동성커플의 사회보장과 관련된 법을 제안할 때마다 정치인들은 항상 말했다. “추가로 비용이 들텐데 그걸 누가 부담할 것이냐”고. 그래서 그 비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실제로 얼마나 드는지 계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별로 차이가 있지만 내가 연구했던 거의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을 법제화하는 것은 작지만 이득이었다. 미국에서 소득세를 낼 때는 가족별 소득에 따라 세율이 계산된다.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는 경우 가족 합산이 이뤄지지 않아 세율이 낮게 매겨진다. 결혼을 할 때 평균적으로 지출하는 돈만 2만5천달러에서 3만달러 정도이고, 대부분 결혼 뒤 지출이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부가가치세 납부액도 늘어난다.

 

김승섭: 한국에서는 그런 데이터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표성있는 국가 설문조사에 성적지향에 대한 질문이 전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에 사는 성소수자의 숫자를 파악하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경제력뿐 아니라 건강을 연구하는 일 역시 매우 어렵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당신 역시 연구자로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인상적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당신이 성소수자의 인권이나 불평등만이 아니라 동성혼을 인정하는 것이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이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배짓: 성소수자 포용 정책이 고용주나 대기업에 이득이 된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데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단순히 부모나 교회에서 말한 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간관계와 이해관계,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각자의 태도가 결정된다. 따라서 더 다양한 주장과 근거를 가지고 있는 건 좋은 일이다.

 

김승섭: 나는 2015년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동성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군형법 위헌소송에서 반동성애 운동 진영의 전문가들이 작성한 200쪽이 넘는 문서에 대한 반론을 작성하는 역할을 했다. 그들의 거의 모든 주장은 미국 반동성애 운동의 20여년전 자료에서 왔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주장이 법정에서 과학의 외피를 갖춰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배짓: 한국에서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 같은 게 아직도 떠돌고 있는 건 유감이다. 미국에서는 동성결혼 소송에서 찬성 쪽과 반대쪽이 각자의 입장에서 연구한 결과를 모아 내놓은 적이 있었다. 판사들은 찬성 쪽을 더 신뢰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우파의 반동성애 진영 씽크탱크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 오래 지켜봤다. 그들의 행동을 보며 배운 점도 있다. 더 나은 내용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그 내용을 사람들과 나눌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두고 경쟁하지만 대중과의 소통은 다르다. 과학적으로 튼튼한 언어와 실제로 설득력 있는 언어는 다를 수 있다. 내 연구는 동성커플이 어떻게 차별을 받고 복지혜택을 빼앗겼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연구 결과는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나는 복지혜택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다”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에게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봤다. 그건 사랑이고 헌신이었다. 그래서 동성커플의 사랑과 헌신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려 애썼고 이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다.

 

김승섭: 학자란 사회에 빚지고 있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내가 어떤 문제에 뛰어드는 원인은 아닌 듯하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였을 때, 그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긴다. 당신이 성소수자 문제에 뛰어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배짓: 내가 레즈비언이고 이런 연구를 한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동성파트너에 대한 복지에 대해 코네티컷 주의회에서 전문가 증언을 할 때였다. 당시 질문자는 내가 레즈비언이고 동성파트너와 살고 있는지 묻고 싶은 것처럼 보였는데, 그걸 직접 묻지 않고 애매한 질문만 계속했다. 그때 누군가 “저 사람은 당신이 동성애자인지가 궁금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대답했다. 나는 동성파트너가 있다. 그러나 나는 코네티컷주에 살지 않고 이곳의 법이 바뀐다고 혜택을 보는 것은 없다. 내가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걸 원하지 않지만, 내가 레즈비언인 것이 이 일과 무관할 리 없다. 나는 많은 성소수자를 알고, 그들은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며, 세상이 그들을 더 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인 내가 이 연구를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한 가치를 추구하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이 보다 공정한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학계에 있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김승섭: 변화는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 인권 보장은 돌이킬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고 한 나라의 인권 수준을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자본과 권력을 가진 반동성애 보수 기독교인들과 그에 영합하는 정치인들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고 있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배짓: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있는 한국의 성소수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 (한참 침묵)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온전히 당신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을 늘려나가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심리학자인 내 친구 글렌다 러셀은 콜로라도에 사는데 그곳에선 1990년대 초 성소수자의 모든 시민권 보호조항을 박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성소수자들을 추방하는 법이 통과된 지역도 있었다. 훗날 연방법원에서 그 법이 뒤집혔지만 끔찍한 일이었다. 당시 콜로라도에서 살던 성소수자들은 앞마당에 그런 법들을 지지한다고 팻말을 걸어놓은 이웃들과 마주해야 했다. 러셀은 그때 ‘반동성애 정치 한가운데서 살아남기’라는 워크숍을 열었다. 그는 워크숍에서 3가지를 말했다. ‘자신을 지지하는 네트워크를 확보하라’, ‘사회운동에 참여해라’, 그리고 마지막은 ‘이 상황을 분석하라’였다. 저 사람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 말고 그 뒤에서 작동하는 힘을 분석해야 한다. 지금은 ‘정치적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연구 결과, 이런 태도를 가진 성소수자들이 그 시간을 더 잘 버티어 내고 건강하게 살아냈다. 여러분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정리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932859.html?fbclid=IwAR0Cx7RCjyZ9lZ-QOqCRdo7cIzFjTLybOrEwxy-y9I4o3lwa5ApN3aDDsmE#csidx20f27e86f5e2e86923b857214d7f2cf onebyone.gif?action_id=20f27e86f5e2e8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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