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NGO발언대]‘2m 거리’ 둘 수 없는 사람

by 노들센터 posted Mar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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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하는 장애인이 격리기간 동안 함께 지낼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처한 어려움은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한 것만이 아니었다. ‘자가격리 대상자 생활수칙’에 따르면 자가격리자는 외출을 금지하고 최대한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해야 한다. 가족이나 동거인이 있을 경우 화장실과 세면대는 가급적 따로 사용하고, 불가피한 접촉 시 2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NGO발언대]‘2m 거리’ 둘 수 없는 사람

그가 살고 있는 작은 원룸은 화장실과 세면대가 하나일 뿐만 아니라 활동지원사와 본인의 거리를 2m로 유지할 수 없는 크기다. 그는 질병관리본부의 자가격리 지침을 지킬 수 없다.

독립된 공간, 별도의 화장실과 세면대, 타인과의 거리 2m 확보. 벽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옆방 사람과의 거리도 2m가 되지 않을 고시원과 평균 넓이 1.25평의 쪽방은 십수명이 하나의 화장실과 부엌을 사용한다. 자가격리를 한들 생활수칙을 지킬 도리가 없다. 한방에서 여섯 명이 생활한 청도 대남병원의 감염률이 98%에 이르고, 사망자가 8명이나 발생한 것은 사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밀양 요양병원에서,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청도 대남병원을 보았다.

이처럼 코로나19가 미친 여파는 불평등한 세계를 꼭 닮았다. 세상은 재택근무나 휴식이 생계에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아이를 맡길 네트워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모든 것이 멈춘 김에 쉬어 가자는 사람과 복지관이나 공중시설이 문을 닫자 갈 곳이 없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이 두 조각난 세계는 재산, 소득 수준과 대략 일치한다. 타인과의 2m 내 밀접한 접촉을 거부할 수 없거나, 타인과 2m씩이나 떨어져서는 일자리는 물론 생존을 잃고 마는 사람들이 바로 이 세계의 변방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워진 사람들을 돕겠다는 추가경정예산도 ‘2m’를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 예산의 대부분은 신용카드 환급 등 돈을 쓸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간접적인 혜택이거나 건물주나 사업주를 돕는 것이다. 직접 지원은 500만명에게 지역상품권을 지급하는 계획에 그친다. 기초생활수급자, 아동수당 대상자, 노인 일자리 참여자에 국한된 이 대책은 지금 당장 소득이 중단된 사람들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회복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게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할 때다. 코로나19가 지난 이후를 함께 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겪은 재난의 결과는 더 깊은 불평등과 좌절로 나타날 것이다. 2m가 없는 사람, 그들을 우선하라. 

<김윤영 |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기사 원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082048025&code=990100&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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