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by 노들센터 posted Dec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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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읽기]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기사입력2019.08.05. 오후 6:40  / 최종수정2019.08.05. 오후 7:00  

 

홍은전  작가·인권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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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기정(가명)의 어머니가 쓰러졌다. 85살의 어머니는 병원에 실려 갔다가 그길로 돌아오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마흔에 낳은 딸이 마흔다섯이 될 때까지 어머니는 단 하루도 이날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 이별을 하루라도 더 지연시키는 일. 버티고 버티던 어머니는 별안간 사라졌다. 덩그러니 혼자 남은 기정은 중증 발달장애인이었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어렵고, 혼자서는 밥을 먹고 씻고 화장실을 가는 일이 불가능했다. 기정이 먼 친척의 부축을 받으며 노들장애인야학을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그들은 가족이 없는 중증 발달장애인이 시설에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방법을 몰랐으므로 방법을 찾아보자며 노들은 기정의 상황을 서울시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접수시켰다. 2015년 시행된 발달장애인법에 의해 센터는 ‘개인별 지원계획’이란 것을 수립해야 했다. 5월, 기정이 사는 광희동, 중구, 서울시의 장애인복지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야학 교사가 말했다. “그 회의가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그들이 가져온 개인별 지원계획이란 다름 아닌 ‘시설 입소’였다. 문제는 서울시가 탈시설 정책의 일환으로 2016년부터 장애인시설의 신규 입소를 금지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들은 정신병원이나 비서울지역 장애인시설을 알아보는 중이라며 자신들의 노력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절망적이었던 것은 순진하고 무례한 공무원들의 태도였다. 기정에겐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국가 예산으로는 지원할 수 없으니 사비로 쓰도록 하라며, 친절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금액을 알려주더라는 것이었다. 그게 얼마냐고 내가 묻자 야학 교사가 대답했다. “한달에 500만원이 넘죠.” 나는 새삼 놀랐다. 그것은 늙은 어머니가 홀로 감당해온 노동의 무게이자 국가가 가족에게 떠맡긴 복지의 무게였다. 그 책임자들은 미안해하기는커녕 가족의 고통을 깎아내리며 말했다. “어머니가 간혹 때렸다고 하던데, 맞고 사는 것보단 시설에 들어가는 게 더 낫죠.”

 

그사이 기정은 천덕꾸러기처럼 이 보호시설에서 저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낯선 환경에 던져진 기정은 식사를 거부했고 잠을 자지 않았고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를 찾았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계속 강제로 먹어야 했다. 5월 말, 야학 교사가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기정은 식물인간처럼 무력했다. 음식을 삼키지도 못했고 엉덩이엔 욕창까지 생겨 있었다. 그대로 두었다간 죽거나 정신병원에 가게 될지 몰랐다.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어요.” 야학 교사가 말했다. ‘방법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 석달이 걸렸다. 그 말은 새삼스럽게 뼈아팠다. 방법이 있었다면 어떤 부모가 자식을 시설에 보냈을까. 방법이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어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기를 기도했을까.

 

6월, 방법이 없었으므로 노들은 기정의 손을 잡았다. 함께 살아보기로, 함께 싸워보기로, 그 불확실한 미래에 함께 휩쓸려보기로 한 것이다. 기정은 석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딸을 위해 만들어둔 누룽지와 매실액, 온갖 약재가 가득한 집에서 기정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노들은 대책위를 꾸렸다. 그리고 24시간 활동지원 계획을 수립했다. 여성 활동가 스무명이 조를 짜 기정의 낮과 밤을 함께 채웠다. 그리고 구청과 서울시에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요구하며 싸웠고 드디어 쟁취했다. 7월, 기정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2009년, 8명의 신체장애인이 시설을 뛰쳐나와 탈시설 권리를 요구하며 싸운 뒤 10년이 흘렀다. 그들이 온몸을 던져서 만든 길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었다. 2019년의 나는 2009년의 내가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에서 살아간다. 2019년의 최전선엔 기정이 있다. 처음 기정이 친척의 부축을 받고 찾아왔다던 그날처럼 나는 노들의 활동가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기정은 어떻게 살아야 돼요?” 폭풍을 함께 견뎌낸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말했다. “음~ 기정 언니는 일단 밥을 먹어야 해요.” 기정이 어서 건강을 회복하기를, 그리고 노들과 함께 이 사회의 수많은 ‘기정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기를 응원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4606.html#csidx8604041e8d00a8dae1e59894a59127b onebyone.gif?action_id=8604041e8d00a8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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