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장애등급제 폐지 첫날, 장애인들은 기쁘지 않다

by 노들센터 posted Jul 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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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폐지 첫날, 장애인들은 기쁘지 않다
전장연 “한정된 예산으로 ‘예산 맞춤형 복지’ 우려”
서울지방조달청 앞 집회·행진…적절한 예산 확보 요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1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서울조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에 실질적인 예산마련과 정책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고 하지만 희망보다는 불안과 공포가 여전하다”며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지역사회 중심의 사회보장 정책이 변화해야 하고 예산도 제대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1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서울조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에 실질적인 예산마련과 정책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고 하지만 희망보다는 불안과 공포가 여전하다”며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지역사회 중심의 사회보장 정책이 변화해야 하고 예산도 제대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여러분, 오늘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는데 기쁘시죠?”(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아니요!”(집회 참가자들)

 

“우리가 요구한 폐지임에도 불구하고 마냥 기뻐할 수가 없네요.”(최용기 회장)

 

 

장애등급제 폐지 첫날이었지만, 환호는 없었다. 1988년 도입 뒤 31년 동안 국가의 대표적인 장애인 복지제도인 동시에 ‘차별’의 근원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제도가 1일부터 사라졌지만 장애인들의 얼굴에선 반가움 대신 불안과 우려가 읽혔다.

 

장애등급제는 장애 정도에 따라 1~6급으로 장애인을 나눈 뒤 등급별로 일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공급자 중심의 제도인 탓에 장애인 개개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대로 하지 못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등급에 따라 장애인의 생활을 돕는 활동보조인의 지원 시간이 정해지는데, 지원 시간이 부족해 장애인들이 홀로 지내다가 사고 등으로 목숨을 잃는 일도 잦았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이날부터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이제 ‘장애의 정도’가 심한 경우(기존 1~3급)와 심하지 않은 경우(기존 4~6급)로만 분류한다. 정부는 활동지원급여와 보조기기 교부, 거주시설 이용, 응급안전 등 4가지 서비스를 지원할 때 장애인들의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오히려 활동보조 시간 등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장애인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조달청 앞에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을 마련하라”며 집회를 열었다. 서울지방조달청 건물에는 정부 예산을 관할하는 기획재정부 서울사무소가 있다. 집회에는 휠체어에 탄 장애인 500여명을 포함해 총 1500여명(주최쪽 추산)이 참가했다.

 

전장연은 “31년 동안 공고하게 굳어져 있던 장애등급제라는 패러다임이 오늘 큰 변화를 맞이한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한정된 예산 속에서 장애인을 끼워 맞추는 ‘예산 맞춤형’ 복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1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서울조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에 실질적인 예산마련과 정책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고 하지만 희망보다는 불안과 공포가 여전하다”며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지역사회 중심의 사회보장 정책이 변화해야 하고 예산도 제대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1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서울조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에 실질적인 예산마련과 정책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고 하지만 희망보다는 불안과 공포가 여전하다”며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지역사회 중심의 사회보장 정책이 변화해야 하고 예산도 제대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예산이 문제다.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은 지난해 6907억원에서 올해 1조35억원으로 크게 늘었지만 서비스 단가 인상과 이용 대상자 확대 등이 주로 반영됐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개별 장애인들에게 지원되는 예산의 규모는 크게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전장연은 “현재 기획재정부와 논의 중인 내년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 인상률은 올해 인상률보다 더 적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 나온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 폐지 뒤 되레 활동지원 시간이 줄어들까 우려를 나타내는 배경이다.

 

서울에 사는 지체장애 1급 이아무개(57)씨는 현재 월 500시간 정도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다. 최근 다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가 더 힘들어진 이씨는 활동보조인이 오기 전에는 용변조차 해결하기 어렵다. 활동보조인이 없는 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늘 불안하다. 이씨는 “예산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면 결국 중증 장애인 제공 시간을 깎아 경증 장애인에게 줄 수밖에 없지 않겠냐”라고 우려했다. 박명애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역시 “1일부터 (정부가) 기존 등급제 대신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도입했지만 관련 예산은 마련하지 않았다”며 “(예산 증액 없는) 보건복지부의 장애등급제 폐지는 껍데기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지난달 12일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에 바탕을 둬 장애인 2520명의 활동보조 시간을 모의 평가해 본 결과 조사대상의 34.4%가 현재보다 지원 시간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이날 집회에서 “복지부와 기재부는 등급제 폐지를 홍보하면서도 예산은 없다고 하고 있다“며 “실제로 예산이 없다기보다는 (장애인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난 오후 2시부터 잠수교와 이촌역, 용산역, 삼각지역 등을 거쳐 서울역 광장까지 행진을 하며 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른 적절한 예산 확보 등을 요구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0048.html#csidxf5b9576d594e1ce9a800b00019b9fe2 onebyone.gif?action_id=f5b9576d594e1ce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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