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장애인단체 대표, 서울 중부경찰서 화장실서 점거농성 벌인 까닭

by 노들센터 posted Nov 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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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7.11.01 14:14:00 수정 : 2017.11.01 22:27:39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중부경찰서 본관 1층 남자 화장실에서 ‘장애인 화장실인데도 정작 장애인들은 사용이 불가능하다’며 30분간 점거 농성을 벌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중부경찰서 본관 1층 남자 화장실에서 ‘장애인 화장실인데도 정작 장애인들은 사용이 불가능하다’며 30분간 점거 농성을 벌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장애인인권운동 단체 대표가 서울의 한 경찰서 화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경찰서장이 사과하면서 농성은 30분만에 끝났다. 장애인인권운동 단체 대표가 경찰서 화장실을 점거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57)는 지난달 31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중부경찰서 본관 1층 남자 화장실에서 30분간 점거 농성을 벌였다. 경찰서 1층 남·녀 화장실 모두 ‘장애인 화장실’이라는 표시가 붙어있었지만 화장실이 비좁아 휠체어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서 본관 1층 화장실은 직원들은 물론 경찰서를 찾은 민원인이나 조사를 받는 일반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박 대표는 이날 이마에 ‘화장실 농성’ 이라고 쓴 종이카드를 붙이고 화장실 안에서 “중부경찰서는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공공기관이지만, 정작 장애인들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며 “접근도 못하는 장애인용 화장실에 왜 장애인 마크를 붙였나. 서장이 직접 나와 해명하기 전까지 점거하겠다”고 외쳤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중부경찰서 본관 1층 남자 화장실에서 ‘장애인 화장실인데도 정작 장애인들은 사용이 불가능하다’며 30분간 점거 농성을 벌였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중부경찰서 본관 1층 남자 화장실에서 ‘장애인 화장실인데도 정작 장애인들은 사용이 불가능하다’며 30분간 점거 농성을 벌였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또 남자 화장실 출입구, 화장실 거울, 소변기 칸막이, 양변기 출입문, 손 건조기 등에 ‘중부경찰서 장애인용 화장실은 장애인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김광식 중부경찰서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8조를 위반했다’, ‘김광식 중부경찰서장은 장애인 편의증진법을 위반했다’ 등의 문구가 적힌 A4 용지 30여장을 붙였다. 

 

박 대표는 “저는 장애인 화장실 접근권 확보를 위한 농성 중입니다. 농성을 해야 하니까 집회시위법에 따라 여기서 집회시위신고를 하겠습니다. 신고용지를 가져오세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중부경찰서 정보과 직원 등이 나와 박 대표를 말렸다. 

취재기자가 실제로 중부경찰서 남자화장실을 확인한 결과 화장실 내부 통로 폭은 수동 휠체어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인 50~70㎝에 불과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이 소변기나 양변기를 이용하려면 화장실 안에서 휠체어를 돌려야 하는데 이 화장실은 휠체어 방향을 전환할만한 공간이 없다. 소변기에 설치된 보조 손잡이는 휠체어 이동을 방해했더. 양변기 칸은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이 작은데다 문은 여닫이였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장애인 화장실은 휠체어 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도록 통행로 폭을 1.2m 이상으로 확보해야 하고, 소변기 보조 손잡이 등이 휠체어 통행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법 시행 이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더라도 양변기 출입구는 미닫이로, 공간은 휠체어가 드나들수 있도록 1m×1.8m를 확보하도록 규정돼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中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中

앞서 박 대표는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집회를 주도했다가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26일까지 내야했던 벌금을 내지 못해 다음날 중부경찰서에 연행됐고 100만원을 마련한 뒤 풀려났다. 당시 박 대표는 장애인용 표시가 붙어있는 1층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들어갔지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점거 농성 전날인 지난 3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보건복지부에 전화해 휠체어 장애인들이 중부경찰서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며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중구청을 통해 해당 민원을 중부경찰서에 전달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난 10월 31일 오후4시 서울 중구 중부경찰서 본관 1층 남자 화장실에서 30분간 점거 농성을 벌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화장실 점거 농성을 시작한지 20분 뒤, 김광식 경찰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 서장은 “이용에 불편을 드려 사과드린다. 화장실 출입문은 오늘 아침에 공사 견적을 뽑았다. 출입구를 장애인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고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김 서장의 해명을 듣고 점거농성을 마쳤다.

경찰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경찰서장이 개인적으로 사과한 것”이라며 “법 시행 이전에 만들어진 오래된 건물로,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할 의무는 없다. 장애인 마크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출입구 유리문이 밖으로 잡아당기게 돼 있어서 장애인들이 불편하니까 슬라이딩 문으로 바꾸는 내용의 공사 견적은 내기로 했다. 내년에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이라서 슬라이딩 문 공사 예산이 확보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찰청사처럼 중요한 공공기관의 경우, 노후 건물이더라도 법 시행 2년 이후인 2000년부터는 장애인 화장실을 갖춰야 한다. 다만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등 불가능한 경우라면 예외 대상”이라며 “중부경찰서는 오래된 건물이다보니까 공사 등이 어려워 예외 적용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이 경우에라도 양변기 칸 만큼은 공간을 넓히고 미닫이 문으로 만들어야 한다. 강행 규정은 아니라서 법률 위반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통로는 넓히고, 양변기 칸은 넓히는게 옳다”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경찰서 등 공공기관 건물을 대상으로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공공기관에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하는 일은 장애인들에게는 일상적인 문제인데도 정작 공공기관들은 돈 문제로만 판단한다. 법이 시행된지 20년이 다 돼가는 데도 예외 적용을 들며 전혀 이행할 생각이 없다. 장애인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더 앞서가야할 공공기관, 경찰서가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 어느 누가 법을 지키려 하겠냐”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다른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도 법률 위반 여부를 조사한 후 화장실 점거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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