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란 열사는 2002년 3월26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6. 이혼한 남편과 함께 사는 아들(당시 9살)의 양육권을 되찾으려 모은 돈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이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최 열사는 응급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지만, 결국 한 달 뒤 세상을 떠났다.
1998년 이혼 뒤 서울 청계천에서 노점을 시작한 최 열사는 단속반과 싸워가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런 그에게 정부는 2001년 “수급권과 노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수급권을 포기하면 임대주택과 의료급여 등을 받을 수 없다. 최 열사는 노점을 포기하고 월 26만원의 생계급여를 받는 길을 택했다. 한 달을 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그러다 양육권을 위해 모아둔 쌈짓돈을 이유로 정부가 2002년 생계급여 지급 중단을 통보했을 때 그는 결국 삶의 의지를 잃었다.
숨지기 전 그는 투사였다. 2001년 12월 최저생계비 보장을 외치며 서울 명동성당에서 텐트농성을 벌였다. 그의 투쟁을 계기로 결성된 ‘민중생존권 쟁취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독소조항 폐지를 위한 연석회의’는 빈곤사회연대 발족의 계기가 됐다. 지금 이들이 가장 절실하게 외치는 것이 바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다. 최 열사가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올해 24살인 아들이 부양의무자가 되어 수급권이 박탈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부양의무제의 폐해를 알리는 투쟁을 계속했을 것이다.
부양의무제 폐지 운동에 동참하고 싶은 독자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 후원 캠페인에 참여하면 된다.
(후원함 주소 https://socialfunch.org/nobuyang)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