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10시 30분,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판사 황영수)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은 희망원 내 장애인 거주시설 '글라라의 집' 거주인 이아무개 씨로, 거주인 A 씨에 대한 폭행치사 및 다른 두 명의 생활인에 대한 폭행과 상해 혐의로 재판정에 섰다.
지난 2010년 10월 14일 오전 여섯 시, 이 씨는 같은 방에서 지내던 A 씨가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윽박질렀다. A 씨는 이 씨의 바지를 부여잡았다. 이 씨는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 의족을 하고 있었다. 이 씨는 아침이라 의족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절단된 부분을 누군가 건드리는 게 싫었다. 하지만 A 씨가 바지를 붙잡고 놓지 않자 이 씨는 A 씨의 어깨를 밀쳐냈다. 그 바람에 A 씨는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부딪혔고, 이는 급성경막하뇌출혈로 이어졌다. 의식을 잃은 A 씨는 병원으로 호송되었지만 식물인간 상태로 입원해 있다가 결국 2011년 2월에 폐부종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이 씨는 이밖에도 2012년 9월에 또 다른 생활인 B 씨에게 배식을 하다 뜨거운 국물을 흘렸다며 국자로 머리를 쳐 상해를 입힌 혐의와 2015년 12월에 C 씨가 코를 심하게 곤다며 발로 머리를 찬 폭행 혐의도 받고 있다.
대구지방법원 입구
이 씨가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했으나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의 공방은 치열했다. 쟁점은 "A 씨에 대한 이 씨의 '폭행치사'가 법적으로 성립하는가" 였다. 변호인 측은 "피고인은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어떠한 벌이든 달게 받겠다고 했지만, 변호인이 봤을 때 A 씨에 대한 '폭행치사' 혐의는 법률적으로 다퉈볼 사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변호인 측은 이 씨가 A 씨의 어깨를 단순히 밀친 것만으로는 '폭행'이 구성되지 않는다고 보았고, 설령 폭행이 맞다 하더라도 이 씨가 자신의 행위로 인해 A 씨가 사망할 것을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검찰 측은 척추 측만증이 있는 A 씨의 키가 140cm에 불과했기에 한 눈에 보기에도 '병약한' 사람이었으므로 이 씨가 그를 세게 밀치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된 재판은 세 번의 휴정을 거쳐 오후 7시 10분이 되어서야 끝났지만, 배심원석에 앉은 시민 8명은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양 측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오늘 재판정에는 배심원 앞에 꼭 섰어야 할 존재가 없었다. 바로 '대구시립희망원'이다.
이 씨는 글라라의 집 1호실의 '호실장'이었다. 2010년 당시 글라라의 집에는 직원이 9명 뿐이었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자면 장애인 거주시설은 거주인 4.7명 당 생활재활교사가 있어야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그마저도 하절기 저녁 여섯 시, 동절기 다섯 시에 모두 퇴근 하고 나면 다른 거주인을 돌아보는 것이 온전히 '호실장'의 역할로 남았다. '1호실'에는 이 씨와 A 씨 외에도 지적장애 1급 생활인이 한 명 더 있었다. 나이는 이 씨가 가장 많았지만, 인지와 신체 능력이 가장 '나았'기 때문에 호실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호실장'이었던 이 씨는 늘 방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다른 호실원들의 청결을 신경써야 했다. A 씨는 희망원 기록에도 남아있듯이 고집이 세고 개인위생을 잘 감당하지 못했다. 지체장애가 있어 거동이 불편하기까지 했던 A 씨의 빨래는 물론 방 청소까지 고스란히 이 씨의 몫이었다. 이렇게 1년 9개월이 흘렀다. 이 씨가 B 씨를 폭행해 상해를 입힌 때는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배식을 할 때였다. 직원이 충분히 있었더라도, 그래서 역시 돌봄이 필요했던 이 씨가 직원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 씨는 다른 거주인과 충돌했을까. 시설이 정해준 공간에서 자야만 하는 거주인이 아니었더라면, 정해진 기상시간(오전 5시)에 일어날 필요가 없었더라면, 코를 심하게 골았던 C 씨와의 갈등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 씨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벌어진 일 앞에 '만약'도 무의미하다. 그러나 이 씨가 다른 거주인을 폭행 했던 배경에서 희망원을 지울 수는 없다. 이러한 지적은 변호인 측에서도 제기되었다. 변호인 측은 "사고 당시 65세였고, 본인도 몸이 불편해 돌봄이 필요한 이 씨가 오랫동안 다른 이들을 돌봐야 했다. 이는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애초부터 A 씨의 죽음에 대해, B와 C 씨의 피해에 대해, 그리고 이 씨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점에 대해 희망원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희망원은 구조가 아닌 장소적 배경으로 축소되었고, 모든 것은 이 씨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다.
이 씨는 1988년 희망원에 입소했다. 희망원에서 30년을 살았다. 희망원은 시설 거주인들을 '식구'라고 불렀다. 하지만 30년 된 '식구'가 희망원 내에서 벌인 일로 기소되었을 때, 희망원은 곁에 없었다. 희망원을 운영하는 천주교대구대교구가 전 원장 두 명을 비롯한 현직 임원을 위해 지원한 변호인단은 법무법인 '중원' 소속이다. 대구지방법원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포진한 대형 로펌이다. 그러나 오늘 이 씨 곁에 서있던 이들은 국선 변호사들이었다.
물론, 변호인단은 이 씨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같은 '희망원 식구'들 소송에서 임원과 거주인을 달리 대하는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태도는 정말 그가 희망원 '식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지 의구심을 자아냈다.
검찰 측은 이 씨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씨는 '우발적' 행위였다고 하나 장애가 중했고 언어장애가 있어 피해사실을 알리기도 어려웠던 A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점, A 씨의 사망을 알고 난 이후에도 B 씨와 C 씨를 폭행한 점, 무엇보다 외형적으로 병약해 작은 충격에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상식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구형 근거를 들었다.
판결이 내려졌다. 이 씨는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배심원단은 이 씨의 세 개 혐의 모두에 대해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판사는 "배심원단의 결정, 피해자가 사망한 무거운 사건이라는 점, 피해자가 피고인에 비해 체격적으로 취약했던 점"과 아울러 "피고인이 범행사실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진술했다는 점, 피해자 유가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 폭행 정도가 경미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 2년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징역 2년을 선고받는 이 씨의 등 뒤에도, 희망원 관계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재판 중 증거자료로 사용된 이 씨의 희망원 상담일지에는 "봄나들이를 갔을 때 '이렇게 나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하니까 굉장히 좋다. 종종 나오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임"이라는 기록이 있었다. 시설에서 허락할 때만 갈 수 있었던 나들이, 대가 없이 해야 했던 노동. 이 모든 자유를 삼십년간 그는 무엇과 맞바꿨는가. 그 재판정에 외로이 서기 위함이었나. 30년 희망원 생활 끝에 그가 손에 쥔 것은 2년 더 유예된 자유뿐이다. 그리고 이 씨는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도 담담했다. 그리고 희망원에서 구치소로, 여전히 구속된 몸을 유지하게 된 그에게 ‘살인자’라는 낙인이 더해졌을 뿐이다.
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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